대학의 도시 타르투

2018. 7. 26. 09:00동유럽, 발트3국, 러시아 2017/에스토니아

그리스 신전처럼 생긴 건물이 보입니다.

이 건물은 바로 타르투의, 타르투에 의한 타르투를 위한 건물이 아니라

이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타르투 대학 본관 건물입니다.

탈린이 에스토니아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라 한다면 타르투는 교육과

문화의 도시라 해도 틀리지 않다고 합니다.

 

다만, 교통 여건상 탈린으로 많은 사람이 모이고 관광객이 모여들어 더 발달했지만...

교육부와 최고 법원이 수도 탈린이 아니고 이곳 타르투에 있답니다.

이 말은 탈린보다 얼마나 타르투가 교육의 중심지인지 알 수 있는 말이 아닌가요?

 

토메매기 언덕을 구경하고 천사의 다리 아래로 내려가 타르투 대학 본관 건물을 찾아갑니다.

그곳에 위의 사진에 보이는 간판 하나가 보입니다.

아마도 화약 저장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화약 저장고라고 하니 한번 보려고 들어갔습니다.

입구에 부서진 대포 두 문이 보이고 안으로 언덕을 절개해 축대를 쌓은 듯...

지금은 간이주점이나 식당으로 사용하는 것 같네요.

 

2층에는 화약통과 돌로 만든 대포알이 보이기는 하지만...

이곳에 왜 이런 시설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네요.

 

Guinness에 기록되어 있다는 말인가요?

 The Highest world pub Pussirohukelder라고 쓴 알림판이 불어있습니다.

겨우 해발 10.2m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Pup이라고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에스토니아에서는 엄청나게 높은 곳이 맞습니다.

 

화약 저장고 앞으로 잔디밭이 있고 그곳에 흉상 하나가 올라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Nikolay Ivanovich Pirogov 라는 러시아 사람으로 이곳 타르투 대학이 배출한

야전 수술의 길을 연 외과 의사로 전쟁 때 전장에서 마취제를 이용해 바로 응급수술할 수 있

는 기술을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이라 합니다.

여기도 화타가 있었나 봅니다.

 

타르투 대학은 의료 부분에서 무척 선구적이고 앞선 기술을 보유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마비산을 발명하고 관우가 독화살을 맞아 죽어갈 때 수술했던 화타에는...

화타는 그때 조조의 머리도 수술하겠다고 덤벼들었다가

조조에 죽임을 당했다는 소설 속의 신의였지요.

 

그곳에서 뒤를 돌아보면 보이는 건물이 있습니다.

건물의 벽을 이용해 돌출되게 만든 입체 그림입니다.

아마도 그림은 타르투 대학 본관 건물을 그린 듯합니다.

 

허름한 건물을 이런 식으로 만들어 놓으니 이 또한 보기 좋습니다.

 

현재 사용 중인 에스토니아 국기는 이곳 타르투 대학 학생회에서 먼저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대학이 에스토니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컸냐를 알 수 있지 않겠어요?

탈린이 에스토니아인들의 정치적, 경제적 도시라면 타르투는 정신적,

문화적인 도시라 할 수 있다.

 

그 건물 반대편이 대학 본관 앞에서 바라보면 위의 사진처럼

많은 사람이 창문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제일 위에 보이는 분이 대학 총장과 교육부 장관이라고 합니다

 

아래는 이 대학의 교수들이고요.

 

스웨덴은 폴란드와 전쟁(1621~1629) 후 이곳 에스토니아는 스웨덴이 지배하게 되었고

이곳 타르투도 역시 스웨덴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답니다.

전쟁이 끝나고 1632년 스웨덴 왕이었던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이곳 타르투에 대학을 설립하라 합니다.

 

그러나 노르딕 전쟁에서 패한 후 이 대학 건물은 파괴되었고 지금의 모습은 1803년

성모 마리아 교회터에 지어진 모습이라고 하네요.

스웨덴까지 합해도 타르투 대학은 두 번째로 설립된 대학이라고 하니...

 

건물 정면 파사드에 보이는 포르티코는 에스토니아 교육의 성장을 의미하는

상징적이 기둥이라 합니다. 

점령시대와 전쟁 때 학교가 닫히는 일이 자주 있었지만, 명실공히 에스토니아 최고의

대학으로 에스토니아와 발트지역의 많은 지식인을 배출한 명문대학임이 분명합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타르투 대학 교회입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물론 전 유럽에서도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타르투 대학이 자리 잡고 있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격동의 시간에 에스토니아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

민족운동의 시발점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중세 대학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타르투 대학교 맨 꼭대기에는 과거 학생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대학 감옥이 자리 잡고 있다네요.

중세 시절 여러 가지 이유로 수용됐던 학생들이 남겨놓은 낙서들을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고 하는데 대학 감옥에 입장하려면 대학교 본관 내 정보센터에 문의해야 한답니다.

이런 대학 감옥이 있다는 말은 이 도시에서 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크고 권력이 강했는지 알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