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 예술작품이 많은 타르투 시내풍경

2018. 7. 30. 09:00동유럽, 발트3국, 러시아 2017/에스토니아

타르투 시청사 광장에서 또 하나의 명물은 사각형 사진틀이지 싶습니다.

이 광장을 찾는 여행자 모두 이 틀에서 시청사나 다른 건물을 배경으로 꼭 사진을 찍기 때문이지요.

별것도 아닌 것이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마다 이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일은 성공적인 시설물이 아닌가요?

 

틀은 돌아가게 되어있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려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런 틀은 우리나라에도 여러 곳에서 만들어 놓았지요.

얼마 전 양평 두물머리에 갔을 때 같은 모양의 틀이 있더라고요.

 

이곳에도 동상 하나가 서 있습니다.

바클라이 드 톨리(Monument of Barclay de Tolly (1761-1818)) 장군의 동상이라고 합니다.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 맹활약했다는 러시아 장군이라 합니다.

 

이곳 출신도 아닌 인물을 그런데 왜 그의 동상이 이곳에 있지요?

광장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따서 지었네요.

아마도 퇴역 후 그는 이곳 타르투에 거처를 마련하고 살았나 봅니다.

지금 동상 뒤로 보이는 호텔이 그의 이름을 딴 호텔로 그곳이 당시 바클라이 드 톨리의 집이 아니었을까요?

 

벌거벗은 부자상이 보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아이의 손이?

사진을 찍어주는 엄마가 고추를 잡으라고 했나요?

 

윌로 으운((Ülo Õuna)이 1977년 제작한 아빠와 아들이라는 청동상입니다.

겨우 두 살 먹은 아들의 모습이라고 했는데 키를 서른셋인 아버지와 같은 크기로 만든 게 이채롭습니다.

이렇게 만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에스토니아의 미래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은 모습은 성장할 때까지 어른이 늘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모습과 당시 한 살짜리 아들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냈다고 합니다.

원래 탈린에 세워질 계획이었으나 타르투 시에서 구입해 2004년 6월 1일 어린이날을 기념해

여기에다 세웠다 합니다.

 

바로 그 위로 또 다른 청동상이 보입니다.

두 오일드의 모습으로 타르투 출신의 문학가 에두아르드 빌데(Eduard Wilde)와

아일랜드의 오스카 와일드(Oskar Wilde)의 동상이라고 하네요.

아일랜드 출신의 오스카 와일드는 세계적인 작가지만 이 동네 출신인 에두아르드 빌데는?

 

좌우지간 서로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다는데 같은 시대에 살았으며 Wilde라는 같은 이름을 사용했다는

공통점 때문에 여기에 두 사람을 함께 앉혀두었네요.

이 작품은 아일랜드 골웨이에도 모조품이 있다고 합니다.

 

이 작품도 위에서 보았던 아버지와 아들의 윌로 으운((Ülo Õuna)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작가의 재치가 번뜩이는 작품이 아닌가요?

오른쪽이 오스카 Wilde고 왼쪽이 동네 작가라고 하면 섭섭할 테니 에스토니아의 유명한 문학가

에두아르두 Wilde며 가운데는 한국의 와일드가 아니고...

이 건물의 주인도 Wilde(Peter Emst Wilde) 였다고 합니다.

 

타르투는 정말 많은 청동상이 있지요?

어찌 보면 예술작품의 도시로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버스 터미널 부근에 있는 시장 앞의 모습입니다.

 

시장은 축산물을 위주로 농산물 등 여러 가지를 파는 곳이죠.

여기에도 또 청동으로 만든 돼지가 또?

무슨 돼지까지 청동작품으로 만들었나 생각하고 뒤로 돌아가 보니...

 

돼지 뒤로 돌아가 보면 돼지 부위별로 설명을 해놓은 듯...

워낙 많은 청동상이 타르투에는 즐비하기에 이것도 분명 작품일 거야 하며 사진을 열심히 찍었습니다.

이렇게 허탈할 수가 없네요.

 

여러분께서도 또 청동으로 만든 것이냐고 짜증 나시겠지만...

그러나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는 듯 웃고 있는 돼지라 용서하고 가렵니다.

이렇게 타르투는 청동작품이 즐비한 곳이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타르트는 정말 많은 청동상이 있었네요.

심지어 돼지까지...

사실 역사적인 유적도 없고 자연환경이 뛰어난 곳은 아닙니다.

대학도시로 발전해왔던 곳이기에 인물 위주의 이야기가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