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노출신의 최초 대학생 크리스티안 자크 페터슨(Kristjan Jaak Peterson)

2018. 7. 23. 09:00동유럽, 발트3국, 러시아 2017/에스토니아

폐허가 된 대성당 뒤로 돌아가면 위의 사진에 보이는 동상 하나가 서 있습니다.

오늘은 이 동상의 주인공(Monument to Kristjan Jaak Peterson)을 만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타르투 대학이 처음 설립될 당시 이 지역에 사는 지배계층인 독일인을 위한

대학으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독일 귀족 자제만이 이 대학에 다닐 수 있었겠네요.

그러나 세월이 흘러 제정 러시아가 이 지역을 지배하며 그동안 귀족 아래

머슴으로 살아왔던 농노 제도를 폐지하게 되었답니다.

이에 제일 처음 농노 출신 에스토니아인으로 이 대학에 입학한 사람이

바로 위의 동상에 보이는 인물이라 합니다.

 

그가 지팡이를 든 모습은 그의 어머니가 라트비아 리가에 살았는데

이곳 타르투와 리가를 걸어서 오갔기 때문이랍니다.

우리가 이곳 타르투로 올 때 리가를 출발해 왔으니 그 거리를 알고 있습니다.

이는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요?

그 어려운 일은 위의 동상에 보이는 학생이 했지 뭡니까!

그는 에스토니아 민족시인으로 에스토니아 농노의 아들로 태어나 최초로 타르투 대학의

학생이 되었고 그는 겨우 21살에 결핵으로 사망했지만, 문학의 발전을 시작한 공로를 인정해

그의 생일인 3월 14일을 에스토니아에서는 모국어의 날로 기념하고 있답니다.

살아생전 작품을 발간한 적이 없었는데 20세기에 들어와 에스토니아 학술연구회에서

그의 작품을 찾아 발간했다네요

.

만약, 농노제도가 계속되었다면 이 사람은 아마도 "마님! 장작이나 팰까요?" 하며 지냈겠지만,

대학 입학 자격을 폐지한 일은 佳人 생각에 정말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머슴이 성균관에 입학한 것과 같은 일이 아니겠어요?

 

타르투 대학은 발트 3국에서는 리투아니아 빌뉴스 대학과 쌍벽을 이루었나 봅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빌뉴스 대학이 잠시 폐교되는 불운을 겪자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고

발트 3국에서는 유일한 대학으로 존재했다고 하니 그때가 전성기가 아니었을까요?

 

따라서 발트 3국의 문화는 이곳이 요람이 되었을 듯합니다.

그래서 유럽 문명의 요람은 그리스라고 하듯이 이곳 타르투를 발트의 그리스라고도 부른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간물 중 왼쪽의 큰 건물은 타르투대학 인문사회학부 건물이고

오른쪽의 건물은 에스토니아 대법원 청사입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왼쪽의 건물은 타르투 대학 음악대학입니다.

이렇게 타르투 대학은 구시가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어 도시가 대학이고 대학이 도시인 셈이죠.

타르투(Tartu)는 인구가 10만 명 정도로 에스토니아 제2의 도시입니다.

에스토니아 제2의 도시 인구가 우리나라의 대단지 아파트에 사는 주민 정도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이곳에 거주하는 학생을 뺀다면 더 적겠네요.

 

타르투에 도시가 세워진 것은 1030년으로 타르투는 발트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셈이죠.

이는 이곳에 오기 전 우리가 머물렀던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와 비슷한 시기잖아요.

 

장난감 박물관(Tartu Toy Museum/Tartu Mänguasjamuuseum)입니다.

아주 오래된 장난감이 전시된 곳이라고 하는데 시간이 늦어

문을 닫아놓아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이 지방의 가옥구조는 목제로 지은 곳이 많네요.

 

타르투를 상징하는 문장입니다.

타르투는 키예프 대공국의 야로슬라프 1세 대공에 의해 건설되었다는데 야로슬라프의

세례명이 유리예프라고 불렀다는데 지금도 러시아에서는 타르투를 유리예프라고 부른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타르투는 1600년부터 1629년까지 일어난 스웨덴과 폴란드 사이에 벌어진 전쟁 이후에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는데 타르투 대학이 이 시기에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배국인 스웨덴이 식민지 국민을 위해 학문을 가르치고 지성인을 키웠단 말입니까?

그 후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며 지내다가 1920년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사이에 체결된

타르투 조약에 따라 이 지역이 에스토니아 영토로 편입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39년 독일과 소련 사이에 체결된 불가침 조약이 체결되며

다시 소련의 영토로 들어갔다고 하네요.

그러나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되며 이제 에스토니아로 돌아오게 되었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