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살아있는 그때의 생생한 현장입니다.

2017. 9. 26. 09:00이탈리아 여행기 2015/나폴리

나폴리 박물관의 소장 전시 유물은 주로 베수비오 화산으로 화산재 아래 매몰되어 있던 폼페이와

그 주변 도시에서 발굴한 작품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예술작품도 있고 실생활에서 사용했던 생활 도구도 많습니다.

 

오늘은 나폴리 박물관의 마지막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워낙 많은 작품이 진열되어 있기에 모두 볼 수 없지만, 대강만이라도 구경하는 중입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청동 조각상은 이미 폼페이에서 보았던 것이죠.

춤추는 파우노라는 작품으로 여기에 있는 것이 진품이랍니다.

사실은 개인적으로 진품과 모조품을 구별하지 못하겠습니다.

 

폼페이 개 조심 집에서 보았던 개 모자이크입니다.

비극 시인의 집에서 보았던 개는 맹견으로 개 조심하라는 글도 있었지만,

여기에 보이는 개 모자이크는 무섭지 않은 친근한 애완견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당시 폼페이에는 루파나레( Lupanare)라는 공식 유곽이 있었고 당당히 세금을 내고 영업하기까지 했다네요.

심지어 세금이 너무 많다는 푸념도 낙서로 남아있고 세금을 내기 싫어 개인적으로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프리랜서로 뛰던 여인들도 있었답니다.

 

원래 외국과 무역이 성행했던 이곳은 항구로 발전했던 곳이라 외국인도 많이 드나들었고 오랜 해상에서의 생활이

뱃사람의 고독을 불러왔을 것이고 이런 성 문제에 다른 사람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지역과는 달리 개방적인 생각을 하게 된 곳이 아닐까요?

 

이에 따라 이 지방은 성 문제에서 다른 지방보다 무척 개방적이었을 겁니다.

남녀 간의 상열지사를 누가 탓할 수 있겠어요.

다만, 그게 공개적으로 되었을 때 문제가 되지 않겠어요?

 

이런 장면은 인도의 카주라호라는 유적에도 조각상으로 남아있지요.

간디가 부숴버렸으면 좋겠다고 한 사원 말입니다.

이곳에도 카주라호 못지않은 그런 난해한 작품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너무 외설적으로만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힌두교에서 링가를 섬기듯 말입니다.

여기도 링가를 무더기로 섬겼나요?

 

힌두교 사원이 많은 인도나 캄보디아에 가면 신을 모신 성소 한가운데 제일 중요한 곳에 늘 하나의 조각이 있지요.

바로 링가와 요니라는 남성과 여성의 상징 말입니다.

 

고대는 이런 이유로 남녀 간의 은밀한 생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사회적으로 용인했지 싶습니다.

원래 누르고 감추면 문제가 커지지 않을까요?

 

고대는 사람의 힘이 국력이고 사회를 지탱하고 발전시키는 일이라 믿었습니다.

특히 농사를 짓는 농경사회는 가족의 수가 가족의 힘이잖아요.

위의 사진처럼 가족을 위해 전쟁터에 나갔다가 다친 사람을 외과적으로 꿰매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폼페이에서 보았던 검투장의 모습을 그대로 그린 프레스코화도 있습니다.

 

돼지를 솥 안에 산 체로 넣고 군불을 때니 돼지가 뜨거워 탈출을 시도하는 조각도 보입니다.

폼페이 주민은 저렇게 돼지를 잡았나요?

이런 유물 덕에 그들이 살았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네로 황제의 스승이요 로마 제국의 석학이라는 세네카의 얼굴입니다.

세네카는 지금 스페인의 코르도바에서 태어났다고 하지요.

 

살아가며 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도 모자이크로 만들어 남겼습니다.

박물관은 이런 것을 한 곳에 모아놓아 우리에게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박물관은 살아있는 그때의 생생한 현장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많은 작품이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했고 전시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본 것은 극히 일부분이지 싶네요.

그들이 남긴 유물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갔나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이란 이렇게 내 눈으로 보고 판단하며 다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