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박물관 라파엘로의 방

2016. 8. 8. 09:00이탈리아 여행기 2015/바티칸

라파엘로의 방은 네 개의 방이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방 하나하나가 모두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

런데 카이로스쿠리의 방이라고 부르는 방이 하나 더 있습니다.

 

콘스탄티누스의 방과 엘리오도르의 방 사이에 공간인데 원래 교황을 알현하기 위해 대기실로

사용되었다 하며 라파엘로의 방은 원래 네 개인데 이 방까지 포함해 다섯 개로 착각한다 합니다.

그러나 우리 같은 사람은 그림이 취해 네 개인지 다섯 개인지 구분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교황 그레고리 13세는 이곳에 있는 라파엘로의 그림을 모두 지웠는데

다행히 천장화는 남았다 하네요.

 

바티칸 박물관 라파엘로의 방에서 라파엘로는 죽을 때까지 그의 역량을

마음껏 뽐내었던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너무도 짧은 딱 37년 간만 살았던 라파엘로의 삶은 신이 필요해 천상의 세상에서 긴요하게

사용하려고 빨리 데려갔을까요?

정말 미소년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라파엘로가 아닌가요?

 

만약, 신이 라파엘로의 능력을 하늘나라에서 요긴하게 사용하려고 일찍 데려갔다면, 

그럼 89세까지 살았던 미켈란젤로는 하늘나라에서 전혀 도움도 되지 않고

필요 없는 예술가였을까요?

미켈란젤로가 이 소리를 들었다면 무덤 속에서도 기겁하고 깊은 한숨을 쉬었을 겁니다.

위의 사진은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한 미켈란젤로의 초상화입니다.

 

라파엘로는 르네상스 시대에 빼어난 예술가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더불어 3대

거장이라 하는데 그러나 당대에 조각, 건축 등 다방면에 활동했던 두 사람과는 달리 라파엘로는

오직 회화 분야에만 두각을 나타냈다지요.

특히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와 여러 가지에 비교 대상이었다 합니다.

 

두 사람은 모두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의뢰로 작품 활동을 많이 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라파엘로는 아주 잘 생긴 얼짱에 집안 좋고 사교성도 좋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으나

37세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미켈란젤로는 89살까지 오래 살았고 성격 또한 그늘져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외모도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네요.

게다가 교황이 월급을 제 날자에 주지 않는다고 그리던 그림을 팽개치고 피렌체로 돌아가기도

했고 시에나 두오모와 계약하고 만들던 조각이 완성되기도 전에 피렌체에서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자 중도에 슬그머니 사라져 다비드상을 만들기도 했지요.

 

위의 사진 중 오른쪽은 미켈란젤로가 만들다 만 빈자리로 아직도 그가 돌아와

완성해주기를 바라며 남겨놓았습니다.

바로 다비드상을 만들기로 몰래 계약하며 위의 조각상을 만드는 도중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로 돈 없이 초연하게 살아갈 수는 없지만, 너무 이재에 밝아 계약조차도

쉽게 접어버린다면 그리 좋은 인성은 아니지 싶습니다.

 

서명의 방은 율리우스의 개인 서재이자 사무실이었다는데 나중에 이 방의 용도가 서명의 방이라

불렀다는데 교황은 당시 르네상스 시대에 부활한 고전과 인문주의를 중요시해 인간 지식의

4대 영역인 신학, 철학, 예술, 법학을 주제로 한벽화를 프레스코화로 그려줄 것을 요청함으로

사면 벽에 각각 네 개의 프레스코화가 그려지게 되었다네요.

 

네 군데 프레스코화는 신학(성체 논의), 철학(아테네 학당), 법학(기본적 신학적인 덕목 법),

그리고 예술(파르나수스)이라네요.

서명의 방은 교황들이 서류에 결재하며 서명하던 방으로 라파엘로에게 제일 먼저

천장화를 그리도록 했다고 하며 일부 사람들은 이곳 프레스코화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작품이라고 합니다.

 

오늘까지 라파엘로의 네 개의 방을 모두 보았습니다.

사실, 그림에 대한 지식이 없어 그냥 보는 것은 바라보았지만, 의미는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종교적인 그림이 많이 종교가 없는 佳人에는 그 나라 말도 모르고

식당 메뉴판만 들여다본 것 같은 기분입니다.

 

이 방들에는 라파엘로의 스승인 페루지노와 피엘로 델라 프란체스카 등의 그림도 있답니다.

이 방은 교황 율리우스 2세가 교황에 선출된 후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합니다.

그러나 거처를 장식할 새로운 벽화를 그릴 화가를 당시 산 피에트로 성당의 총감독이었던

브라만테에게 부탁했고 그는 같은 고향의 새카만 후배로 당시 25살의 젊은 화가

라파엘로를 소개함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미덥지 못해 반신반의했지만, 제일 먼저 서명의 방에 그린 그림을 보고

나머지 방도 모두 새로 그려달라고 했다네요.

이렇게 차례로 엘리오도르 방을 그렸고 마침 브라만테가 죽자 그의 뒤를 이어

산 피에트로 성당의 총감독까지 맡았답니다.

어찌 보면, 라파엘로를 세상의 유명인을 만든 것은 고향 선배 브라만테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 싶습니다.

 

바쁜 가운데 보르고 화재의 방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콘스탄티누스의 방을 그리던 중

완성하지 못하고 37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에 그림은 중단되었으나 그의 제자

줄리오 로마노 등이 마무리하며 그림을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합니다.

제일 먼저 만나는 콘스탄티누스의 방이 바로 마지막 유작이며 미완성의 그림을

제자들이 마무리했다는 방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혹시 바티칸 박물관을 가려고 계획하시는 분이 계시면 미리 공부는 필수라는 느낌이 듭니다.

종교인이야 그림을 보고 어느 정도 알 수 있지만,

우리 같은 무신론자는 의미조차 알기 어렵습니다.

예술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크게 문제 되지 않겠지만,

佳人처럼 무지한 사람은 미리 예습이라도 해야 좋지 싶네요.

그러나 돈만 내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에 우리 같은 사람도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