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조반니 세례당(The Baptistery of St. John)

2016. 5. 12. 08:30이탈리아 여행기 2015/피렌체

산 조반니 세례당(The Baptistery of St. John)은 5세기경 세워진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라 합니다.

그러니 피렌체의 수호성인이라는 산 조반니에게 봉헌하기 위해 지었다네요.

이곳을 들어가려면 조토의 종탑과 큐폴라 올라가는 통합권이 있으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위치는 피렌체 대성당 정문 앞에 있습니다.

대성당은 어느 도시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세우는 건물이지요.

이 세례당에서 단테도 세례를 받았다고 하네요.

 

산 조반니 세례당은 모자이크 예술의 결정체죠.

그러나 우리는 라벤나에서 모자이크의 진수를 실컷 눈요기를 하고 이곳에 왔기에

우리 같은 사람은 학습효과 때문에 이곳 모자이크도 평범한 모자이크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처음 이곳에서 모자이크로 장식한 천장을 보셨다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하실 듯합니다.

 

6~7세기에 세운 산 조반니 세례당은 3개의 청동문과 그 안에 모자이크로 새긴 8 각형 천장이

압권으로 3개의 청동문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죠?

8 각형의 독특한 형태로 두오모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성당의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스트라이프 문양의 독특한 모습입니다.

당시 청동문제작을 위해 공모를 했다는데 기베르티가 20세의 약관에도 불구하고

두오모 큐폴라를 만든 브루넬레스키와 아주 치열한 경쟁을 했다 합니다.

 

여러 청동문 중 가장 아름다운 문은 동쪽문입니다.

광을 내는 바람에 청동문이 아니라 황금의 문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위의 사진은 바로 두오모 방향의 문이죠.

지금은 보수 중으로 앞을 가려놓아 제대로 모두 볼 수 없습니다.

 

이 문을 본 미켈란젤로는 감탄하며 "천국의 문(Porta del Paradiso)"이라 불러

그 후 이 문은 천국의 문으로 불린다네요.

그런데 늘 닫아두기에 천국으로 드나들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천국의 문을 통해 아무나 드나들면 덤핑이 되기에 그랬을까요?

 

천국의 문을 자세히 보고 싶으나 가까이 접근할 수 없도록 철망으로 막아두었고

또 철문을 문 앞에 만들어 제대로 보기 어렵지만, 하나씩 볼 수 있는 만큼 보려고 합니다.

모두 다섯 칸 좌우 하나씩 10개의 주제로 청동 패널이 있는데 제일 위의 왼쪽부터 보면 아담과

이브의 원죄와 낙원으로부터 추방이 보이고 오른쪽은 카인이 아벨을 살해한 모습과

그런 카인을 질책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위의 사진에서는 제일 위의 패널이 공사용 가림막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부분은 두 번째 패널로 제일 위의 왼쪽은 술에 취한 노아와 방주를 떠난

후에 감사드리는 노아 가족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천사가 아브라함에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천사가 100살이나 먹은 아브라함에게 부인 사라가 임신할 것임을 알려주었지요.

이때 낳은 아이가 바로 이삭이라고 하네요.

남성의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인류 최초의 실험인가요?

 

좌우지간 천사의 예언대로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임신을 시켰으며 성공적으로

두 명의 사내 아이를 낳았다지요.

세 번째 왼쪽의 에피소드는 에서와 야곱의 탄생이고

오른쪽은 요셉의 형제가 곡식 꾸러미 속에서 금잔을 발견한 모습입니다.

 

네 번째 아래 왼쪽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는 모습이고

 오른쪽은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 강을 건너는 모습입니다.

 

제일 마지막 왼쪽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는 장면이고

오른쪽은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에게 선물을 바치는 장면입니다.

이 모든 내용을 제대로 알려면 성경에 능통해야 알지 우리 같은 사람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남쪽문은 제일 먼저 만든 청동문으로 안드레아 파사노의 작품으로

성 요한의 삶에 대한 것이라 합니다.

이 문은 인기가 없어 위의 사진처럼 청동이지만, 때가 낀 모습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냥 청동으로 만든 출입문입니다.

 

북쪽문은 기베르티의 작품으로 예수의 생애에 관한 내용이라고 하네요.

이곳에 오면 문만 쳐다보며 다니게 생겼네요.

이 청동문을 만들게 된 이유도 당시 유럽을 휩쓸던 흑사병이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네요.

 

이곳 양모 협회는 기존의 문 외에 또 다른 청동문을 만들기로 하고

성 요한의 일생을 주제로 만들기 시작했다네요.

이렇게 하면 하늘의 은총으로 흑사병을 물리칠 수 있다는 생각에 말입니다.

마치 우리의 팔만대장경과 같은 효험을 기대했나 봅니다.

 

이때 응모했던 일곱 명의 응모작에 같은 양의 청동을 나누어주고

시제는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이삭의 희생이었다네요.

시험 시간은 1년으로 정했답니다.

22살의 기베르티와 23살의 브루넬레스키가 최종 경합에 남았지만, 결국 기베르티로 정했다지요?

 

기베르티는 10톤이나 되는 청동문을 20년에 걸쳐 만들었고 이 문을 동쪽에 달고

그곳에 있던 피사노의 문은 남쪽으로 옮겼답니다.

그러자 후일 발주처에서는 기베르티가 만든 작품을 보고 마음에 들어

 북쪽의 청동문도 제작 의뢰하게 되었답니다.

 

물론, 이번에는 경쟁자도 없이 독점으로 수의계약을 하게 되었겠지요.

제작 기간이 27년간이나 지속하였다니 기베르티는 도합 47년간을 세례당 청동문만 만들었으니

여기가 평생직장이 되어 직장에 잘릴 이유도 없이 백수와는 담쌓고 살았을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만든 문이 아무래도 그동안 축적된 기술로 원숙한 모습이라

모든 사람이 환호할 정도로 대단했다고 합니다.

래서 원래 북쪽에 달려고 했던 이 청동문을 동쪽에 달고 동쪽의 문은 북쪽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왜 동쪽을 중요시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대성당 두오모와 정문을 마주하기 때문일 겁니다.

두오모는 많은 사람이 드나들기에 더 멋진 청동문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그랬지 싶습니다.

그는 이 문을 만들며 자신의 모습을 청동문 가운데 만들어 놓았답니다.

일종의 인면 사인이라고 봐야 할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공들여 만든 작품에 그 작품을 만든 예술가는 자신만의 의미를 남기더군요.

그게 사인으로 남기든지 자신의 얼굴을 남기든지 말입니다.

그런데 여행 중 그런 모습을 찾아보는 일조차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