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2016. 5. 9. 08:30이탈리아 여행기 2015/피렌체

조토의 종탑과 큐폴라 두 곳을 오르고 나면 다리가 뻐근합니다.

젊은 사람에게는 그리 힘들지 않겠지만, 우리 나이가 되면 이 정도의 높이의 타워를

한꺼번에 오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신 분이라면 잠시 산책하는 기분으로 오를 수 있으실 겁니다.
두 곳 합하면 지상으로부터 200여 m 정도 되니 아침에 작은 산 정상에 오를 정도의

체력이 소모되었습니다.

어떤 사진은 각도상 종탑이 더 높아 보이지만, 큐폴라가 훨씬 높습니다.

이제 오늘 이야기는 성당 내부로 들어가서 보았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피렌체 두오모의 정식 이름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이랍니다.

우리 말로는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라는 말이라 합니다.

꽃의 도시라는 피렌체와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성당으로 들어가는 중앙에는 육중한 청동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은 늘 닫혀있고 드나드는 문은 왼쪽 문을 이용합니다.

 

아르눌포 디 캄비오에 의해 1296년부터 170년간 만든 성당입니다.

오랜 시간 공사한 덕분에 캄비오 외에 세 명의 건축가가 이어받아 완성하게 되었답니다.

그를 기리기 위해 성당 안에는 그의 모습을 새겨놓았습니다.

 

그렇게 오래 만들다 보니 완공 당시에는 유럽에서는 가장 큰 성당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이보다 더 큰 성당이 많기에 순위에서 밀려났겠지만...

그래서 그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이 두오모 광장 한쪽에 큐폴라를 만든

브루넬레스키와 함께 있네요.

 

원래 이 자리에는 산타 레파르타 성당이 있던 자리입니다.

이 성당 건축은 피렌체 양모협회의 후원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당시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성당이 작아 다시 짓기로 했나 봅니다.

그러나 사실은 피렌체와 서로 쌍벽을 겨루던 시에나 성당의 모습을 보고 열을 받아

경쟁심이 생겨 다시 지었다는 게 맞는 말이지 싶습니다.

 

당시 피렌체 양모협회는 그 세력이 엄청나게 컸나 봅니다.

성당 외벽은 흰 대리석, 녹색 대리석 그리고 붉은색 대리석을 사용하여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성당 종탑이나 큐폴라에 오르는 것은 돈을 내지만, 성당 내부를 구경하는 것은 무료입니다.

 

안으로 들어오면 정문이 있는 파사드 안쪽에 대형 시계가 보입니다.

이 시계를 파울로 우첼로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1443년 그가 그린 네 명의 복음사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프레스코 초상화가 보입니다.

 

아주 오래된 시계임에도 아직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네요.

그런데 시계 모양이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당시의 시계는 지금과는 달리 24시간을 나타냈나 봅니다.

그리고 지금과는 시간을 알리는 침이 돌아가는 방향이 반대로 보입니다.

 

이번에 더 안으로 들어오면 눈에 띄는 게 또 하나 있습니다.

성당의 제단을 바라보고 왼쪽 벽에 그림 하나가 보입니다.

1465년에 그린 단테의 신곡이 보입니다.

아주 유명한 그림이라 금방 눈에 띕니다.

단테 탄생 200주년을 맞아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라는 화가가

단테를 추모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랍니다.

 

1465년에 그렸다고 하니 벌써 600년 가까이 된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단테를 이야기할 때 무척 자주 나오는 그림이네요.

그림에서 보이는 모습은 손에 신곡을 든 단테가 피렌체 성벽 밖에서 오른손으로는

지옥으로 내려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모습입니다.

 

오른쪽 뒤로는 연옥의 동산이 그려져 있고 왼쪽에는 당시 피렌체의 모습이

사실 그대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 모습은 신곡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네요.

이 그림에 보이는 피렌체 시가의 모습은 단테는 생전에 구경하지 못한 모습이겠지요.

 

이번에 보이는 그림은 피렌체를 구한 두 명의 용병 대장의 기마상입니다.

하나는 우첼로의 존 호크우드 기마상(1436)이고 다른 하나는 카스타뇨의 나콜로 다 트렌티노

기마상(1456)이며 1364년 라이벌 도시였던 시에나와 피렌체 사이에 벌어졌던 카시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잉글랜드 용병 대장을 그린 파울로 우첼로의 작품인

존 하쿠드 기마상은 아주 멋진 작품이죠.

 

니콜로 다 트렌티노의 기마상입니다.

1456년 안드레아 델 카스티뇨의 작품이랍니다.

옆의 그림과는 달리 대리석과 비슷한 느낌이 들도록 그린 그림입니다.

 

당시 피렌체는 용병을 고용하여 피렌체 공국의 방어를 맡겼답니다.

호크우드 경은 18년간이나 피렌체를 위해 일한 영국 출신의 용병대장이라 합니다.

원래 청동 기마상을 세워 그의 업적을 기리려고 했지만, 당시 전쟁으로 돈이 없어

그림으로 청동상을 대신했다고 합니다.

그림일지라도 청동상 느낌이 들도록 그렸다는데 여러분이 보시기에 청동상 같습니까?

두 장의 그림이 마치 동상처럼 느껴지도록 그렸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당시 피렌체는 누구나 병역의 의무를 지녔지만, 빠져나가는 사람이 많았고 더군다나 법적으로도

돈이나 다른 일로 병역을 대체할 수 있어 늘 병사의 숫자가 부족했다 합니다.

그러나 부자 도시였기에 외국으로부터 용병을 고용하여 도시를 지켰다고 합니다.

이때 고용된 용병 대장을 콘도티에로라고 불렀다는데 바로 그들의 기마상을 그린 그림입니다.

왼쪽 그림이 안드레아 델 카스타그노가 그린 니콜로 다 톨렌티노고 오른쪽이 파올로 우첼로가 그린

존 호크우드 경(이탈리아 어로는 조반니 아큐토)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