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두오모 지하성당

2016. 5. 11. 08:30이탈리아 여행기 2015/피렌체

위의 사진은 피렌체 지하 성당의 모습입니다.

지하 성당은 두오모 구경을 마친 후 밖으로 나가는 출구 바로 옆에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가 있습니다.

성당은 무료지만, 지하 성당은 큐폴라와 종탑 통합권이 있으면 그 표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제 지하로 내려가 그 흔적을 구경하렵니다.

이 성당은 지금의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900여 년 동안 피렌체의 중심 성당으로 그 역할을 했다고

하며 당시 워낙 돈이 모이고 인구도 늘어나는 바람에 더 큰 성당이 필요했기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지요.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시에나와 경쟁 관계에 있던 피렌체에서 당시 시에나 성당 건축을

보고 그곳보다 더 크게 짓자고 경쟁심에서 먼저 성당을 헐고 새로 지었다고 해야 할 겁니다.

 

이면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정말 애들 장난 같은 일이지만, 당시는 쪼잔하게 그랬다고 합니다.

성당의 바닥은 주로 모자이크로 장식했나 봅니다.

그 아래 30m 더 내려가면 로마 시대의 집과 가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 성당의 큐폴라를 올린 브루넬레스키의 무덤이 지하에 있습니다.

자신이 지은 성당 안에 이렇게 잠든다는 일은 예술가에 대한 최고 예우가 아니겠어요?

최근에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가우디의 무덤이 지하에 있지요.

본인으로는 영광이 아니겠어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자신의 무덤을 만들었다는 말이기도 하네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은 지금 피렌체의 상징입니다.

이 성당이 1300년대에 착공되어 140년이나 걸려 어느 정도 완공이 되었지만,

그때까지 지붕을 올리지 못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우리말에 화룡점정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지붕 없는 성당이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런데 문제가 있지요.

지름이 46m나 되는 거대한 돔을 씌우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에 다시 건축가를 상대로 모이라고 공모를 합니다.

 

많은 건축가가 모였지만, 마지막 남은 두 사람이 또 공교롭게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

이번에도 또 너냐?

이 두 사람은 조상의 묘를 잘못 썼나 왜 사사건건 대립만 합니까?

 

결국, 계획안은 이번에는 브루넬레스키의 것으로 확정했지만,

그를 못 미더워했던 주최 측이 기베르티와 공동으로 작업할 것을 종용했다네요.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가 아닌가요?

반대였지만, 먼저 세례당 청동 문도 그랬잖아요.

 

원래 공동작업을 극도로 싫어했던 브루넬레스키는 저번 청동 문제작에서도 공동 작업이 싫어

내팽개치고 로마로 가버린 전력이 있었잖아요.

그는 자신의 기술을 남이 아는 것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철천지원수처럼 싫어했던 기베르티와 공동 작업이라니요?

 

오!! 하늘이시여~

왜 세상에 공명을 보내고 나를 보내셨나요~

어멈! 이 한탄은 브루넬레스키가 아니고 주유가 했던 말인데?

 

그러던 중 브루넬레스키는 기베르티를 골탕 먹이려고 아프다는 핑계로 당분간 공사에 손을 떼며

기베르티에게 모든 작업을 맡겼다네요.

그런데 기베르티 입장에서는 도저히 그의 설계대로 작업하는 게 어려워 난감했던 모양입니다.

 

그런 일로 말미암아 기베르티는 건축학적인 면에서 자신이 브루넬레스키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깨닫고 중도에 하차하게 되었답니다.

이제부터 브루넬레스키는 혼자 힘으로 혼신의 노력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나씩 8개의 뼈대를 만들고 그사이마다 다시 각각 2개씩의 뼈대를 만들어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방법으로 끝까지 큐폴라를 만들어갔다네요.

드디어 공사 시작 16년 만인 1436년 거대한 큐폴라는 꼭지 부분만 남기고

완성하기에 이르렀답니다.

 

이 대성당이 완성되었을 때는 그때까지 완성된 성당 중 이 성당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다 합니다.

이에 대한 예우로 그가 죽자 그의 시신은 이곳 성당에 안치했다고 합니다.

그는 결국 세상에서 가장 큰 자기의 무덤을 스스로 만들었다는 말이 아닌가요?

 

이로써 이 거대하고 역사적인 왕 뚜껑은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1435년

마지막 덮개를 닫게 되었답니다.

그는 둥근 돔을 먼저 8등분 합니다.

이렇게 나누면 힘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8개의 뼈대를 세우고 돔의 정상 부분부터 아래까지 강화한 후 마무리 공사를 했다고 합니다.

 

피렌체 두오모의 큐폴라는 그 크기도 놀랍지만, 아름다움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오죽하면 미켈란젤로도 이런 말을 했을까요?

"피렌체 두오모보다 더 큰 큐폴라를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더 아름답게 만들 수는 없다."

이 말로 브루넬레스키는 그의 아픈 과거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지 않았겠어요?

이 말로도 부족해 "난 아직도 배가 고프다."라고 할까요?

 

이 대성당을 짓게 된 이유도 경쟁심 때문이라고 하네요.

오래전부터 피렌체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시에나라는 도시가 있었지요.

두 도시 간의 경쟁은 서로 영토 따먹기부터 아주 치열했나 봅니다.

나중에 시에나를 가기에 그때 그곳에 가서 또 비교하며 구경하려고 합니다.

 

당시 피렌체는 모직 산업이 호황을 이루어 부를 축적했나 봅니다.

그들이 생산한 모직물은 당시로는 명품이라고 할 정도여서 유럽 각지로부터 주문이 쇄도해

피렌체는 황금의 도시로 발달하기 시작했기에 이런 거대한 두오모도 지을 수 있지 싶습니다.

 

더군다나 성당 안의 진품 예술품 대부분은 두오모 박물관(Museo dell Opera Duomo)으로

옮겨버려 재미가 반감하지만, 우리 눈에는 진품과 모조품에 대한 비교 불가한 사람이라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이럴 때는 막눈이라는 것이 당행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러나 바사리의 창세기와 최후의 심판을 그린 천장화는 옮길 수 없어 진품 그대로 두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르네상스가 낳은 또 하나의 천재 건축가 알베르티라는 사람이

이곳 큐폴라를 구경한 후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늘로 솟구치는 그 그림자로 토스카나의 모든 민족을 넉넉히 덮을만한 건축물을

나무 비계나 들보의 도움 없이 건축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거만하거나 시기심에 사로잡혔기 때문일 것입니다."

佳人은 찬사를 분명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