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아름다워 더 슬픈 알람브라 궁전.

2016. 1. 15. 08:00스페인 여행기 2014/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으로 들어가는 아주 오래된 문 하나가 보입니다.

PUERTA DE BIBRAMBLA라고 하는 문입니다.

한때는 대단한 위용을 자랑했던 문이었겠지만, 지금은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잊혀진 문이 되어버렸습니다.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이 알람브라 궁전의 성문을 나와

모로코로 떠난 후 이 문도 사라지는 중입니다.

 

이제 우리는 아름다운 그라나다를 떠나 코르도바로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가기 전에 잠시 그라나다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이번 여행에 그라나다를 선택한 것은 대단한 만족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궁전을 본 것은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더 아름답게 생각되는 이유는 바로 이곳을 떠나며 사라진 권력이기 때문이겠죠.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예술적 창조물의 하나이다.

알함브라의 요새는 가장 놀라운 건축물의 하나이고 궁전은 지금 세계에서 현존하는

아랍 궁전 중 최고이다. 낙원과 흐르는 물을 결합한 설계는 코란의 에덴동산을 구현한 것으로

이런 곳은 이 지구 상 어디에도 없다.”라고 한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어느 날 홀연히 이베리아 반도에 건너와 산 지 어언 800여 년.

그러다 1492년 1월 2일 카스티야 이사벨 여왕에게 붉은 성이라는 알람브라 궁전을

고스란히 물려주고 다시 홀연히 떠난 이 성의 주인이었던 무어족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달빛에 물든 신화처럼 나타났다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이들이 그동안 이베리아 반도에서 살았던 보답으로 인류의 유산 하나를

유럽인에게 선물로 그라나다에 남기고 떠났나 봅니다.

 

그랬습니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눈이 먼다는 일보다 더 잔인한 일은 없다."

그랬기에 더 슬프고 더 애잔하고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라보며 만든 궁전이기에

더욱 아름답게 만들려고 했을까요?

그들은 마치 꿈을 꾼 듯 그렇게 이곳에 살다 사라졌습니다.

장자의 호접지몽처럼 말입니다.

 

알람브라 궁전으로 들어가는 문 중, 정의의 문(또는 심판의 문 : Puerta de la Justicia)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문이 예전에 알람브라 궁전으로 들어가는 정문이지 싶습니다.

그 문의 모습은 마치 어깨에 힘을 팍! 주고 서서 들어오려는 사람을 째려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일부당관 만부막개(一夫當關, 萬夫莫開)란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한 사람만 막아서도 만 명의 적군이 문을 열기 어렵다는 말이지 싶습니다.

이백이 촉도난(蜀道難)에서 쓴 글입니다.

만약, 이백이 이곳에 여행을 와 이 모습을 보았더라면 여기에서도 이 말을 했을 겁니다.

 

문에는 다섯 개의 손가락이 새겨져 있습니다.

위의 사진 둥근 아치 위로 보시면 일부 긁어낸 듯 하지만 분명 손가락이 보입니다.

이는 코란의 다섯 개의 계율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네요.

즉 신앙증언, 예배, 구빈 종교세, 금식 그리고 메카 순례라고 했던가요?

 

나중에 가톨릭이 점령한 후 입구에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상을 만들어 놓은 모습도 보입니다.

이슬람 궁전 입구 문에는 이슬람 글이 있고 그 위에 성모상이 보입니다.

이렇게 덧칠을 하면 음식으로 치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퓨전 음식이 됩니다.

 

이 문은 그냥 드나드는 문의 용도로만 사용하지는 않았겠지요.

문 위는 그야말로 망루로 사용하려고 만든 것일 겁니다.

이 문은 사실 이슬람의 무어족이 이곳에 들어오기 전부터

로마 제국이 만든 요새의 출입문이라고 합니다.

그 후 서고트 족이 들어와 마찬가지로 이곳에 군사 요새를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답니다.

 

여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옮겨봅니다.

옛날 옛날 아주 오랜 옛날, 그라나다를 다스리던 왕에게는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늙은 마술사가 공주를 껄떡거렸나 봅니다.

어느 날 마술사는 마술로 공주를 납치하는 데 성공하게 되었답니다.

 

마술사는 공주를 납치했지만, 남의눈이 두려워 공주를 정의의 문 지하 동굴에 감추어버립니다.

그리고 마술로 공주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입구를 봉해버렸답니다.

그런데 공주는 그저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나 봅니다.

 

그녀는 리라라는 악기를 아주 잘 연주했고 그 연주로 말미암아 공주의 연주를 듣는 사람은

잠에 빠지는 힘을 지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공주가 연주하는 리라 소리 때문에 정의의 문 지하 어디에선가 꾸벅꾸벅 조는

마술사가 산다고 합니다.

정말 못난 마술사죠?

그렇게 힘들게 공주를 납치해놓고는 오히려 공주의 악기 연주에 빠져 아직도 첫날밤도 치르지 못하

고 졸고만 있으니까요.

마치 추월선에 들어와 추월도 못 하고 오히려 더 늦게 주행하는 차처럼...

 

혹시 이 문을 통과하시는 분이 계시면 리라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여보세요.

만약 그 소리가 들리신다면 졸음이 쏟아지실 겁니다.

그게 싫다면 이 문을 지나실 경우 귀를 막고 빨리 지나십시오.

 

그 후에도 이곳을 지키던 보초병들도 늘 꾸벅거리며 졸았다고 합니다.

워싱턴 어빙은 이 문으로 들어가며 여러 가지 상념에 빠졌을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이 문을 통해 이곳 관리인으로부터 임시로 빌린 방으로 들어갔을 테니까요.

 

그라나다는 잘 몰라도 알람브라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가 이 말을 들었다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뭐 두 가지 다 몰라도 살아가는 데 전혀 지장이 없기는 하지요.

 

그러나 이곳 알람브라는 미리 공부하시고 가셔야 할 곳입니다.

그냥 우리 부부처럼 다녀오신다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그냥 발 도장만 찍고 온 셈이 됩니다.

지금까지 여행하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크게 동의하지 못했는데 이곳만큼은 크게 공감했습니다.

 

알람브라는 그라나다 뿐 아니라 이베리아 반도는 물론 유럽에 있는 이슬람 건축물 가운데

단연 압도적으로 최고의 걸작으로 인정하는 궁전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사실, 무어인이 이곳 말고는 크게 세력을 키운 곳이 없기는 합니다.

 

그라나다라는 도시에 왔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구경하고 갑니다.

우리 귀에도 익숙한 기타 연주였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처럼 우리 부부도

이곳에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나 남기고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알람브라 궁전은 그라나다의 모든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지 싶습니다.

"도시를 굽어보는 언덕 위에 궁전이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습니다."라고 표현하면

아주 겸손한 표현이지 싶네요.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아주 거만하고 건방지게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9세기부터 지금까지 그라나다라는 도시의 역사를 모두 굽어보고 있습니다.

그 이름만으로 알람브라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그라나다 역사의 산 증인이지 싶습니다.

 

어느 날 뚝딱 지어낸 게 아니라 9세기 처음 성으로 삽질하기 시작해 1237년 나스르 왕조

초대 왕인 무하마드 1세가 그라나다 왕국을 선포하며 바로 이곳에 왕궁터를 잡은 게 시작이라네요.

이후 수세기에 걸쳐 역대 왕들은 계속 궁전을 보완하며 살았나 봅니다.

 

드디어 14세기에 이르러 나스르 왕조 7대 왕인 유수프 1세

때 지금의 나스르 궁전을 완성하게 되었다 합니다.

아마도 이 시기가 나스르 왕조의 최전성기였을 겁니다.

원래 최전성기에 오르면 이제 내려올 일만 생깁니다.

 

먹고살 만하면 서로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탐욕이 생기고 탐욕은 종국에는 자멸을 초래하지요.

점차 시들기 시작한 나스르 왕조의 기운은 1492년 레콩키스타로 이야기되는 기독교 세력

국토회복운동의 마지막 방점을 이곳 알람브라 궁전에서 찍겠다고 군사를 이끌고 밀어닥칩니다.

 

이에 왕은 이곳에서 마지막 결전을 하고 싶지만, 너무나도 사랑한 알람브라 궁전에

상처가 나는 게 마음 아파 조용히 전투 없이 물러나겠다고 하고 바다 건너 아프리카 땅으로 물러나며

덕분에 온전하게 남게 되었다네요.

참 아름다운 항복입니다.

마지막 떠나는 순간 "알라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말인 인샬라(ان شاء الله)를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스페인이니까 인샬라 대신 "ojalá (오할라)"라고 했지 싶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태양이 아무리 찬란하게 빛나도 시간이 지나면 지게 마련입니다.

그게 세상의 이치지 싶습니다.

이곳에서 이렇게 아름답게 꾸미고 살았던 무어족도 결국, 물러나고 맙니다.

한줄기 바람이 성긴 대숲을 지나치듯 말입니다.

이곳의 아름다움에 빠져 佳人의 알람브라 이야기는 내일도 좀 더 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