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보 다리(Puente Nuevo)를 건너서.

2015. 11. 7. 08:00스페인 여행기 2014/론다

오른쪽의 구시가지와 왼쪽 신시가지를 타호 계곡이 나누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연이 나누어버린 그 협곡 위를 인간이 다리를 놓아 누에보 다리(Puente Nuevo)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지금 위의 사진을 통해 다리의 전경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전망대에서 절벽 길을 따라 파라도르 뒤로 이어지는 길은 바위산 위에서 아래 평원을 내려다보는

아주 근사한 산책길이고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눈앞에 타호 협곡이 나타나고 그곳에 다리가

보이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푸엔테 누에보(Puente Nuevo)라고 하는 누에보 다리입니다.

 

누에보 다리는 계곡 양쪽으로 높이 솟은 절벽은 그 높이가 150m 정도에 이르고 그곳에 론다의

랜드마크라고 하는 누에보 다리가 있습니다.

다리 높이는 98m로 다리 중간에 서서 내려다보면 아찔하기까지 하네요.

 

다리 위는 멋도 내지 않은 그냥 평범한 다리 모습입니다.

보행자는 물론, 자동차도 건너 다니는 평범한 다리입니다.

 

그 절벽을 가르며 과달레빈 강이라고 부르는 강물이 흘러 타호 계곡을 만들었습니다.

강을 끼고 남쪽이 오래전부터 마을을 이루었던 구시가이고 북쪽이 신시가라고 하네요.

 

이 모습을 포르투갈에서 아줄레주라고 부르는 타일 장식으로 만든 게 보입니다.

가운데 타호 강이 바위산을 둘로 갈라버렸고 오른쪽이 구시가지로 구경거리 대부분이 있는

곳이고 그러나 왼쪽에 보이는 신시가지도 유명한 론다 투우장이 보이고요,

그 앞쪽으로 절벽 길을 따라 누에보 다리까지 산책길이 있네요.

 

다리를 지나 구시가로 들어가는 입구의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따라 내려가 계곡 아래서 바라보는 것도 좋습니다.

어디냐고 묻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골목길이라

누구나 쉽게 골목 입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 올려다보는 모습이 좋다고 해 낮에 한 번, 또 노을이 물들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에 또 한 번 구경한다고 포장도 되지 않은 길을 걸어서 오르내리느라 혼났습니다.

경사진 길에 자갈로 이루어진 바닥이 미끄러워 잘못하면 미끄러질 수 있네요.

 

누에보 다리는 1751년에 시작해 42년간 영국 철도회사에서 만든 다리입니다.

누에보(NUEVO)라는 말은 그들 언어로 영어로는 새로운(NEW)이라는 말이라 하니

새 다리인 신교라는 의미가 아닌가요?

다리 길이는 겨우 30m를 건설하는데 너무 긴 시간이 필요했네요.

 

그리고 다리 건설에 투입돼 숨진 인부만 50여 명이라고 합니다.

당시 기술로는 쉽지만은 않았나 봅니다.

42년이란 적은 세월이 아니잖아요?

 

이곳에는 1735년에 처음 세운 다리가 원래 있었지만, 부실공사인지 몇 년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다시 만들었다고하여 누에보 다리라 했나 봅니다.

재미있는 것은 위의 사진에 보이는 중앙 아치 위에 방이 하나 있다는데

이 방은 무척 비밀이 많은 방인가 봅니다.

 

감옥으로 사용했다는 말도 있고 1936년 일어난 내전에서 반대파를 잡아다 이곳에 넣어두고

한 사람씩 계곡으로 던져 죽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그런 형벌을 만든 사람은 무척 즐거웠을 겁니다.

떨어질 때 멱살이라도 단단히 움켜잡고 함께 떨어져야 할 텐데...

 

론다는 해발고도 750m로 여기도 여느 안달루시아 지방처럼 하얀색을 칠한 집이 많습니다.

이 마을이 이런 절벽 위에 자리하게 된 이유는 지정학적으로 여러 세력의 중간 지점에 있어

자주 침법을 당했나 본데 이런 지역은 왜 아니겠어요?

 

그러다 보나 산속으로 숨어들고 이런 천혜의 요새와 같은 곳에 모여 살게 되었지 싶습니다.

그러니 이 근방의 세력들은 서로 론다를 자기 영토로 삼아 방어 요새로 만들고 싶었기에

기원전부터 켈트인, 페니키아 인, 로마 제국,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차례로 겪어가며

레콩키스타로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네요.

 

론다를 두리번거리고 다니다 보면 주변에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성벽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 성벽의 위치는 협곡의 반대편에 만들어 협곡은 자연스러운 방어망이 되었지 싶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이곳 또한 평화롭게 살지는 못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전쟁이 만든 이런 언덕 위의 마을 모습은 유럽의 전형적인 마을 형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협곡 방향으로는 위의 사진처럼 자연적으로 방어되는 절벽이 있잖아요.

이런 험한 절벽을 기어오르는 적은 없지 싶네요.

그러나 강한 세력은 평지에 둥지를 틀고 편안하게 살아갔을 겁니다.

 

그랬습니다.

여기 론다는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와도 같은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오래전부터 이곳에 모여 살았나 봅니다.

 

역사란 이렇게 전쟁과 전쟁이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시간이었나 봅니다.

지금은 이렇게 그 흔적이 잔해로만 남아있네요.

이 성벽은 이슬람이 쌓았던 모양입니다.

남의 땅에 들어와 살다 보니 무척 두려웠던 모양입니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작가 헤밍웨이가 론다에 머물며

집필활동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곳이 무척 로맨틱한 곳이라고도 했답니다.

리얼리?

남세스럽게...

우리 부부가 나이가 몇 살인데 로맨틱한 분위기라고?

 

또 다른 이유는 근대 투우의 시작이 이 동네라고 하네요.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 있는 것이죠.

스페인에서 제일 오래되었다면 세상에서 제일 오래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이 아닐까요?

과달레빈 강이 흐르며 오랜 세월 깎아 만든 타호 협곡의 장엄한 모습에 보는 이로 하여금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게 하며 그 협곡 사이로 누에보 다리를 만들어

아찔한 협곡의 모습에 즐거워하지요.

 

안달루시아 지방의 하얀 집이 여기도 지천입니다.

여름철은 무척 덥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도 더위를 피해 조금 더 높은 이런 곳에 둥지를 틀었나 봅니다.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어느 정도 방어가 쉽고 또 지대가 높은 곳이라 더위도 피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지역이 론다인가 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꽃을 사랑한다 하면 그 꽃을 꺾어 곁에 두려고만 하지 말지니.

그 꽃이 피어난 곳에 그대로 두고 물을 주고 바람을 막아주어

더 많은 꽃이 피어나도록 해야 하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