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투우의 시발점 론다(Ronda)

2015. 11. 5. 08:00스페인 여행기 2014/론다

이 론다라는 마을은 이미 꽃할배를 통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마을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탓에 이곳으로 오는 버스에서 한국인을 만났고 숙소에서도 만났고

다니다 거리에서도 만났고 저녁에는 이곳에 숙박하는 단체팀도 여럿 만났습니다.

세비야에서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리며 하루 여덟 편만 운행합니다.

말라가 그라나다에서는 기차로 연결됨으로 안달루시아 지방에 오시면

이곳으로의 접근도 어렵지 않습니다.

 

특히 세비야에서는 당일치기가 가능한 곳으로 굳이 이곳에 숙박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기고 돌아갈 수 있는 곳이죠.

할배들은 그때 차를 렌트해 당일로 다녀간 곳인데 그러나 무엇보다도 렌터카를 이용하지 않고

당일치기하려면 미리 버스표를 예매해 두는 게 좋을 겁니다.

 

세상에는 사람이 모여 사는 많은 마을이 있지만, 특히 론다는 우리 눈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마을 중 한 곳일 것이고 인구 3만5천 정도의 작은 마을로 구마을과 새마을 두 개의 마을이

위의 사진처럼 다리로 연결되어 하나의 마을이 된 곳이죠.

이번 스페인 여행은 카테드랄 투어처럼 느껴질 정도로 우리가 들렸던 도시 대부분이

대성당 위주였던 것 같습니다.

 

론다라는 곳은 조금 식상했던 그럼 유적과는 완전히 다른 자연의 모습에 놀라움을 주는 곳입니다.

아마도 스페인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몇 곳을 추천하라면 이곳이 그중 한 곳이 될 겁니다.

물론, 론다의 이미지는 우리가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마지막 여행지로 택했던

쿠엥카와는 비슷하기에 우리에게는 두 곳이 같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오늘 이야기는 론다 투우장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정열의 나라 스페인 또는 투우의 나라 스페인...

스페인을 지칭하는 여러 말이 있지만, 우리가 스페인을 일컫는 말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아닐까요?

 

정열의 나라라는 의미는 아마도 플라멩코 춤에서 나온 말이지 싶습니다.

플라멩코라는 춤을 보면 정말 숨이 멎을 듯한 그런 춤사위잖아요.

열정적인 그들의 춤사위를 볼라치면 정열이라는 단어 외에는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지 싶네요.

내면 깊숙히 자리한 한을 일시에 내뿜어버리는 듯한 그런 모습 말입니다.

 

플라멩코만큼 스페인을 더 스페인답게 표현하는 게 바로 투우가 아닌가 생각되네요.

론다의 투우장은 아주 유명한 투우장이라 하더군요.

1785년 호세 마르틴 알데우엘라라는 사람이 세웠다 하니 스페인에서는 가장 오래된 투우장으로

기록된다는데 1785년에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일본의 최고 권위의 지도학자였던 하야시 시헤이가 "동해 상에 있는 죽도는

조선이 가지고 있다."라고 선언했던 해입니다.

 

론다 투우장은 첫눈에 알아볼 수 있는 하얀색 둥근 벽에 노란색 지붕이 인상적입니다.

5천 명을 수용하는 바로크 양식의 투우장이라네요.

 

근대 투우의 기초를 쌓았다는 프란시스코 로메로라는 사람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합니다.

그렇기에 이곳 론다의 투우장은 스페인 투우의 효시라고 봐야 하겠지요?

 

그전까지는 귀족이 말을 타고 소와 싸움을 했다 합니다.

그러나 투우사가 직접 운동장 가운데서 멋진 옷으로 차려입고 기름 항아리에 빠졌다가

방금 나온 것처럼 반지르르한 모습으로 카포테라는 붉은 천을 들고 춤을 추듯

투우하는 모습으로 바뀐 게 바로 현대 투우라고 합니다.

 

그의 손자 페드로 로메로와 페페 이료가 제1회 투우대회를 1785년에 개최함으로 론다는

투우의 시발점이라 하며 매년 9월 4일에는 고야 시대의 전통 옷을 입는

고야식 투우가 열린다 합니다.

 

그가 평생 동안 죽인 소는 모두 몇 마리나 될까요?

6천 마리 가까운 소를 죽였다 했나요?

세상에나!!!

페드로 로메로는 무슨 자동화된 도살 기계도 아니고 말입니다.

정육점을 차려도 6천 마리나 되는 소고기를 팔려면 얼마나 오랜 세월 팔아야 모두 팔까요?

 

소도 멋지게 죽여야 더 폼이 나는 직업이 투우사인가요?

우리 생각에는 너무 잔인한 게 아닌가 생각되지만,

그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모르는 일이라고 하겠지요?

여행이란 때로는 이렇게 문화적인 충돌을 겪나 봅니다.

 

소는 붉은 천을 구분하지 못하는 동물이라 합니다.

다만, 캄캄한 방에 며칠 굶다가 나오는 바람에 공격적이라 하더군요.

 

그런데 붉은 천인 카포테를 흔들며 폼을 잡는 투우사는 순전히 생쇼를 하는 셈인가요?

오히려 붉은 카포테를 보고 흥분하는 것은 인간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어리석은 동물인가요?

 

투우의 시작은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던 시대의 풍습으로 시작했다 합니다.

당시 스페인에서는 황소를 제물로 사용해 그해 풍년이 들기를 기원했나 봅니다.

아스텍의 멕시카 족처럼 제물이 인신공양이라는 사람이 아니고 소니까 얼마나 다행입니까?

제갈공명이 보았더라면 소 대신 소 모앵의 만두로 하자고 했지 싶네요.

 

입장료 6유로로 투우장 안에 들어가면 박물관과 마장 그리고 마구간을 볼 수 있다네요.

이 투우장의 특징은 2층에 지붕이 있는 게 다른 투우장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 합니다.

 

그리고 운동장을 삥 두른 담장을 돌로 만들었다는 게 다른 점이라 합니다.

관객 보호를 위해 만든 담장이 오히려 소가 돌진하며 돌로 된  담장에 부딪혀

다치는 사태가 자주 생겨 다른 곳은 여기와는 다르게 나무로 담장을 둘렀다 합니다.

 

론다 투우는 로메로 가문과 오르도네스 가문에 의해 발전했다 합니다.

길거리에 그들을 기리는 초상화를 만들어 놓았네요.

그런데 조금 조잡합니다.

 

여기 투우사의 다리 자세를 보여주는 그림 하나가 있네요.

아주 요염한 자세가 아닌가요?

투우사는 이렇게 소를 죽이는 자세에서도 발레를 연상하는 아름다운 자세를 취했나 봅니다.

 

이런 자세를 발전시킨 장본인이 바로 페드로 로메로로 투우사가 가장 본받고 싶은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하며 이곳 론다에 머물기도 했던 세계적인 문호 헤밍웨이도

갈비뼈를 다칠 정도로 투우를 무척 즐겼다 합니다.

그는 "투우는 예술가가 죽음의 위협에 처하는 유일한 예술이다."라고

할 만큼 투우에 심취했나 봅니다.

헤밍웨이 당신마저도...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는 잔인하다고 하지만, 그들은 삶의 활력을 주는 즐거운 스포츠일 겁니다.

인간이 소를 죽일 때는 스포츠라고 부르지만, 소가 사람을 죽이면 재난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인간만큼 이기적인 동물도 없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