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는 카스티야 왕국의 대표선수?

2015. 1. 10. 08:00스페인 여행기 2014/아빌라

아빌라 성벽의 길이는 전체 2.516m나 되고 높이가 12m나 되는 웅장한 성벽입니다.

안팎으로 구경하고 밤에 또 성벽을 따라 돌다 보면 하루에 10km를 거뜬히 걷게 됩니다.

성문이 9개에 감시탑이 87개, 평균 두께 3m로 제대로 만든 성벽이네요.

 

성문이 9개나 있지만, 동쪽으로 열린 두 개의 문이 제일 웅장합니다.

문이라고 다 같은 문이 아닌가 봅니다.

우선 두 개의 문 중 동남쪽의 문인 알카사르 문입니다.

 

위의 사진은 제일 웅장한 두 개의 문 중 동북쪽의 문인 산 비센테 문입니다.

이런 문은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특히 버스 터미널이나 기차역에서 아빌라 고성으로 오게 되면

제일 먼저 만나는 문이 산 비센테 문이죠.

 

위의 두 문이 뭐가 다르냐고요?

사실, 현장에서 지켜본 佳人도 구분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이름이 다릅니다.

그리고 비센테 문 앞에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꼬마 관광 기차가 출발하는 지점이죠.

 

성 안팎을 연결하는 문 위에는 당시 전투에 대비해 공격하는 적을 막기 위해 문 위에서

뜨거운 물을 붓거나 돌을 던지기 위해 뚫어놓은 구멍도 보입니다.

그냥 보면 장식으로 보이지만...

밤에는 불을 밝혀 더 장관이네요.

 

물론 성벽을 처음 쌓은 나라는 로마였고 그 성벽에 다시 무어족이 개수 보완했지만,

지금의 모습은 카스티야 왕국이라 합니다.

카스티야(Castilla) 왕국은 그 이름에서 보듯이 성벽을 의미하는 왕국이잖아요.

스페인어로 카스티요(Castillo)는 성이나 성채 또는 망루를 의미하는 단어라 하더군요.

그러니 얼마나 전투를 대비해 많은 성벽을 쌓고 살았으면 나라 이름이 카스티야 왕국이겠어요.

지금도 이 지방을 카스티야 레온이라고 했던가요?

 

이 둘을 佳人 마음대로 연관을 지으면?

아닌가요?

혼자만의 생각이라고요?

아니면 또 어떻습니까?

여행이란 이렇게 혼자만의 생각으로 다닐 수 있잖아요.

 

 이 지방을 여행하다 보면 무수히 많은 고성을 보게 됩니다.

어떤 고성은 다 부서져 형태만 남았고, 또 어떤 고성은 수리 중에 있어

입장료를 받기 위해 새롭게 단장하고 있지요.

그래도 여기처럼 완벽한 고성은 없더군요.

카스티야 왕국은 781년간 이슬람과 전투만 했던 나라이기에

성벽 쌓기에 달인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니 카스티야라는 왕국의 이름은 성만 전문으로 만들다 보니 생긴 이름이 아닐까요?

지금도 마드리드를 포함한 중원의 넓은 지역을 카스티야 지방이라 부르고 있지요.

마드리드 북쪽 지방을 카스티야 이 레온이라 하고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중남부지방을

카스티야 라만차라는 정식 지명이 있고요.

 

그 이유가 바로 무어족과 치열하게 세력다툼을 하며 전투에 대비해 가는 곳마다

성벽을 쌓았기에 성벽 전문 국가라 해도 누가 뭐라지 않을 겁니다.

중국에서 명나라가 성벽 쌓기 전문 나라였듯이...

명나라가 만리장성을 제대로 돌이나 벽돌로 쌓은 이유는 황제 영종 정통제가

오이라트 에센과의 전투 중 포로가 된 후였던가요?

이를 토목보의 변이라고 하는데 대명제국은 물론, 중국 역사의 수치라고 하지요.

 

카스티야 왕국은 이슬람과의 전투를 거의 8백여 연간이나 했으니 그들은

인간이 태어나는 이유는 이민족과의 전투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대를 이어 8백여 년을 싸웠으니 오죽했겠어요?

 

그 마지막 전투를 그라나다에서 1492년 끝을 내고 나니 얼마나 심심했겠어요.

할 일이 없어진 게 아니겠어요?

사람이 원래 일을 하다가 갑자기 백수가 되면 뭔가 허전하고 무료해지잖아요.

佳人은 백수가 된 후 지금까지 고생하며 살았기에 이제 자신을 위한 축복의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여행을 결심하고 지금까지 열심히 매년 다니고 있습니다.

 

아마 카스티야 사람들이 그랬을 겁니다.

왜?

수백 년간이나 대를 이어 전쟁만 하다가 이제 그 상대가 항복하고 781년 만에

무슬림은 보따리를 챙겨 네바다 산맥을 넘어 아프리카로 떠나버렸으니까요.

이제 무엇을 하고 시간을 죽일까 고민하게 됩니다.

 

이에 새롭게 이들을 흥분시킬 일이 그전까지 귀족들만 즐기던 투우를

민초들까지 즐기게 되잖아요.

시간 죽이기가 소 죽이기로 변했다는 말인가요?

생소를 죽이는 일이 축복이라고요?

그러니 생소를 죽이는 생쇼를 하는 투우에 열광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이어 등장한 것이 바로 걸출한 인간인 콜럼버스입니다.

그는 절묘하게도 마지막 전투가 끝나던 해인 1492년 카스티야 여왕인 이사벨을 만나

어쩌고저쩌고 하며 빅딜을 합니다.

 

그러니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한 비용 부담과 그곳 총독 자리를 주면 그곳에서 금은보화를

싹 쓸어 배로 실어오겠다고요.

물론, 10%는 자기가 챙기고 주변을 지나는 배에게 항해세를 걷어 8%는 또 자기가 챙기고...

이렇게 시작된 대항해시대는 남미는 물론 아프리카까지 진출해 그곳의 나라를 절단내고

양민을 학살하며 빼앗고 훔치고...

 

그것도 모자라 유럽의 병까지 옮기는 더러운 짓을 했지요.

피를 보아야만 그날의 일과를 마친 기분이고 보람을 느꼈을 겁니다.

이렇게 한 시대를 꽃피우던 남미의 문명 두 개가 졸지에 사라지는 불행한 일이 일어납니다.

 

이 모든 일이 바로 무어족과의 오랜 전투 때문은 아니겠죠?

그들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그 땅에 태어났고 전쟁으로 갈고닦으며 만든 몸을

그냥 썩힐 수 없어 늘 피를 부르고 다녔을까요?

 

세계경영...

이는 어느 기업의 이야기 이전에 세계문명국가에서 자행한 피의 경영이었나 봅니다.

유럽이라는 나라는 문명국이라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그들 또한 야만인의 후손이 아니겠어요?

세상에 문명국이 어디 있습니까?

한때 잘 나가도 또 세월이 지나면 뒤처지게 마련이 아니겠어요?

인류의 문명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 아닌가요?

 

또 다른 이유로는 이곳에는 무척 많은 가톨릭 수도원과 종교시설이 있어

이슬람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의미도 있었을 겁니다.

그들이 중세에 살아가는 힘은 바로 종교의 힘이었을 겁니다.

종교의 힘으로 유럽을 하나로 뭉치게 해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고 왕은

그런 종교의 힘을 빌려 민초를 다스리고 하나로 만들어 통치가 쉽도록 했을 겁니다.

그러니 교황과 왕은 서로 윈윈 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지요.

 

교황은 또 어땠을까요?

지금까지의 힘을 유지하려면 종교라는 것으로 나라마다 힘을 합치게 하고

그 권력을 유지하려 했을 겁니다.

그러니 교황과 지역을 다스리는 왕과의 모종의 거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 교황은 마치 군주국과 같은 지위를 유지했고 각국의 왕은 제후국과 같은

연합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세는 그렇게 서로 이해관계로 물고 물리는 합종연횡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 과정에 생겼을 성벽을 찬찬히 느껴보기 위해 몇 번을 돌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밤에도 성벽 투어를 했느냐고요?

물론이죠.

놀면 뭐 합니까?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아빌라는 세고비아와 더불어 국토회복운동인 레콩키스타의 시발점이었을 겁니다.

카스티야 왕국은 세고비아에 도읍을 정하고 좌청룡 우백호를 거느리듯 오른쪽에 아빌라에

거대한 성벽을 쌓고 힘을 비축한 후 전력을 극대화해 점차 남으로 밀고 내려가며 이슬람의

무어족이 차지했던 작은 규모의 나라를 하나씩 정리하며 남으로 내려갔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안달루시아 지방을 거점으로 버티던 이슬람 세력을 하옌에서의 승리를 끝으로

거의 정리하게 되었다지요?

그리고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을 최후의 보루로 삼고 버티던 그들을 일 년을 기다리며

지구전으로 숨통을 죄어서 결국 항복을 받아냈다는군요.

나중에 그라나다에 들러 알람브라 궁전을 구경하며 다시 그때를 생각해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