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항구마을 에사우이라의 아침 풍경

2024. 3. 22. 04:00모로코 여행기

 

짙푸른 색으로 칠한 배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의 모습입니다.

에사우이라 항구에는 거의 모든 배가 이렇게 푸른색으로 칠을 했습니다.

이게 에사우이라의 색깔일까요?

아니면 대서양의 깊은 바다색깔을 닮아서일까요.

 

 

오늘은 에사우이라를 떠나 마라케시로 갈 예정입니다.

떠나기 전 에사우이라의 항구 구경을 하고 가려고 식사 전 일찍 부부만 항구로 갔지요.

에사우이라는 구시가지인 메디나, 성벽 그리고 항구가 볼만한 곳이라고 합니다.

 

 

물론, 젊은 사람에게는 바다와 해변에서 즐기는 다양한 액티비티도 많은 곳이라지요.

이렇게 눈으로 보고 몸으로 즐기고 모로코 특산물인 이 지역에서만 나는 아르간 오일도

만날 수 있는 이곳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메디나도 혼잡하지도 않기에 여행자에게는

모로코에서 가장 좋은 여행지 중 한 곳이 아닐까 생각되는 곳입니다.

 

 

이곳 항구만 하더라고 그렇습니다.

파란색의 고기잡이 배를 만날 수 있고 그 배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는 성벽으로 

둘러쳐 있어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겠지요.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성벽 아래로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아치로 문을 만들고

대서양에서 고기잡이를 마친 작은 배들이 수로를 따라 안전한 항구 안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한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 아니겠어요?

 

 

옛날에는 주민이 많지 않을 때는 이 정도의 항구만으로도 모든 배를

안전하게 정박시킬 수 있었겠지만, 주민의 수가 많아지며 이 정도의 시설로는

부족에 그 반대편에 더 큰 항구를 지었을 것입니다.

 

 

에사우이라는 오래전부터 항구로 시작된 도시로 내륙과 유럽을 잇는 가교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지역이기에 오히려 유럽의 식민지 경영의 희생물이 되기도 했겠네요.

포르투갈이 스페인보다 이른 시기에 대서양 시대를 열었지요.

 

 

스페인은 당시 마지막 남은 무슬림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국력을 모두 쏟아부었고

그 대미는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 사비카 언덕 아래 진을 치고 1년여를

기다리며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술탄인 보아브딜 항복을 권유했기 때문이지요.

 

 

1492년에서야 국토수복운동이라는 레콩키스타가 마무리되며 그해 이사벨 여왕은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콜럼버스를 위의 사진에 보듯이 접견하고 드디어 인도를 찾아 떠나는

대서양 시대를 열게 되어 시기적으로 포르투갈에 비해 늦게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지요.

 

 

콜럼버스가 인도로 가는 길은 후티 반군이나 소말리아 해적이 없었던 시기라

스페인 세비야에서 과달키비르 강을 따라 나오면 처음 만나는 곳이 모로코 땅이지요.

그러나 콜럼버스는 아프리카 대륙 희망봉을 도는 항로는 이미 포르투갈에 의해

개척되었기에 바로 대서양을 횡단하면 인도로 바로 간다는 엉뚱한 생각으로 위의 사진처럼

못 먹어도 고를 외치며 서쪽으로 나가는 바람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되었다잖아요.

 

 

포르투갈이 스페인보다 이른 시기에 대서양 시대를 열 때 그 첫 번째 먹잇감이

바로 모로코였다는데 그중 한 지역이 바로 이곳 에사우이라라고 하기에

그때 포르투갈의 지배 흔적이 위의 사진에 보이는 시타델의 모습으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 흔적 중 하나가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시타델의 일부인 성벽과 문이라고 합니다.

마르사 문(Bab El Marsa)이라고 부르는 출입문으로 포르투갈인이 선착장에 지은

요새역할을 한다는데 리스본 요새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하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마르사 문 위의 박공에 새겨진 조각은 이슬람교도, 기독교인,

그리고 유대인의 종교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조각의 의미는 수세기에 걸쳐

에사우이라가 종교에 얼마나 관용적인가 보여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문은 Alawite 왕조의 술탄 Mohammed Ben Abdellah의 명령에 따라 Ahmed El Inglizi가

1769년에서 1770년 사이에 건설했답니다.

그것은 현재 에사우이라의 메디나로 들어가는  정문 중 하나이며

특히 바다에서 들어가는 문이기에 가장 중요한 상징적인 문 중 하나지 싶습니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항구에 나오면 바로 방금 잡은 생선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로 많이 잡히는 생선이 오늘은 정어리인가 봅니다.

이렇게 아침에만 어시장이 반짝 생기기도 한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그냥 지나칠 수는 없겠지요?

우리도 정어리 몇 마리를 사서 아침 반찬으로 구워 먹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어제저녁 숙소로 돌아갈 때 쌀 1kg 한 봉지를 4250원에 샀습니다.

 

 

작은 어촌 에사우이라는 정어리가 많이 잡히는 어촌이라고 합니다.

특이하게도 에사우이라는 파란색으로 칠한 작은 어선이 많더라고요.

이 어선이 이곳 주민들의 삶의 현장이 아니겠어요?

 

 

오늘도 흘린 것이라도 없나 하며 많은 갈매기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침에만 열리는 어시장이기에 이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기에

정신을 바짝 챙기고 찾아보아야 합니다.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며 가까이 접근하는 갈매기.

 

 

주민이 많지 않은 에사우이라이기에 아침 어시장의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갈매기와 생선을 사기 의해 나온 주민과 갈매기로 잠시동안은

시장 분위기가 나기는 하네요.

 

 

우리도 물 좋은 생선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저렴한 가격에 정어리를 샀습니다.

흥정에는 언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언어는 어려워도 쓰기 위한 언어는 무척 쉽습니다.

 

 

우리는 오늘 새벽에만 열리는 반짝 어시장에서 정어리 7마리를

5 디르함(700원 정도)에 샀습니다.

생선이기에 많이 살 필요가 없어 한 끼만 먹을 수 있는 정도로만 샀습니다.

 

 

항구를 가득 매운 갈매기들...

오늘도 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입에 물고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녀석은 에사우리아에서 속으로 앗싸 가오리를 외치며 즐거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숙소에 마련되어 있는 프라이팬 위에 돈을 내고 사온 정어리를 올리고

소금만 뿌린 후 구워 가져간 다른 반찬과 함께 휴대용 밥솥에 밥을 하여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한국인의 힘은 밥심이라고 했나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모로코의 쌀값은 우리나라보다는 싸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쌀농사를 지을 토양이 아니기에 모든 쌀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모로코는 북부의 지중해 기후와 서남부의 사하라 사막의 영향으로

쌀농사를 지을 경작지가 거의 없어 주로 밀농사에 의존한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