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황성상부

2012. 4. 26.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세상에는 지방마다 이야깃거리도 있고 아름다운 마을이 많습니다.

중국은 다른 나라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을 겁니다.

개발의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 동안 개발이 멈춘 사이 어느 나라나 오히려 이런 곳이 더 주목을 받지요.

오늘도 우리 부부는 황성상부를 돌아다니며 구석구석을 살펴봅니다.

 

여기는 며칠 전 우리 부부가 보았던 지에시우의 왕가대원과는 다른 맛이 있습니다.

그곳은 퍽퍽한 곳이었지만, 여기는 그런 가운데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곳에는 답답한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는 담장이 있어도 이야기가 남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곳 소저원이 있는 구역은 남자와는 달리 여자는 외부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되던 그런 시기였으니

마치 감옥과도 같은 곳에 갇혀 지내는 진 서방네 딸들을 위한 곳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맨날 꽃만 보고 삽니까?

꽃을 바라보는 일도 하루 이틀이지요.

맨날 물속에 노니는 물괴기만 보고 삽니까?

괴기 쳐다보는 일도 하루 이틀이지요. 그쵸?

 

소저가 제일 보고 싶은 것은 바로 佳人 같은 사내가 아닐까요?

그런데 높은 성벽으로 담을 둘러 사내 바라보는 일은 원천봉쇄를 해버렸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덜수처럼 술을 좋아했던 덜순이가 배갈을 숨겨놓고 홀짝거리며 먹다가

알코올 중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잖아요.

그래서 우리 부부도 위의 사진에 보이는 저곳으로 올라가 보렵니다.

아마도 저 위는 덜순이가 주로 놀던 곳일 듯합니다.

저곳에 오르면 세상과 교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벽 위로 오르는 계단을 만들고 그 위에 정자 하나를 올렸습니다.

이름 하여 현판은 취명월(醉明月)이라고 했네요.

보세요. 덜순이가 낮술 먹고 벌써 밝은 달에 취했다잖아요.

원래 낮술이 더 빨리 취기가 오른다고 늘 덜수가 이야기했걸랑요.

 

그러나 현판만 그렇지 실제 이 누각의 이름은 망하정(望河亭)이라는 정자입니다.

망하정이라...

제 글을 읽으신 분 중에 망하정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어요.

며칠 전 우리 부부가 후커우 폭포로 가는 도중 잠시 차를 세우고 사진 한 장 찍었던

망하정의 유래가 여기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이들이 살던 시대에는 대갓집 규수는 외부 출입이 엄격하게 규제를 받던 시기라 함부로 외출하기가 어려웠겠지요.

이렇게 세월만 보내다 보면 알코올 중독이 되거나 환장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그네를 타고 담장 너머 풍경도 바라볼 수 있게 하였고 이곳처럼 성벽 위에 올라

멀리 흐르는 번계하수(樊溪河水)를 바라보며 마을 구경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게 바로 이 누각입니다.

황성상부 앞으로 번계하라는 작은 개울이 흐르기에 이 정자의 이름을 망하정이라 이름 지었나 봅니다.

 

그런 이유로 이 정자의 이름이 망하정입니다.

지금은 이곳에 올라 바깥의 풍경은 볼 게 없고 오히려 성벽 안의 모습이 더 볼만합니다.

규모는 며칠 전 개휴에서 들린 왕가대원보다 작습니다.

그러나 왕가대원보다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훨씬 보기 좋네요.

물론, 외곽에 높은 성벽을 쌓은 모습은 같지만, 내부를 꾸민 모습은 완전히 다르네요.

 

이 아름다운 마을인 황성상부는 청나라 강희제의 스승이었던 진정경(陳庭敬)이라는 사람이

어머니를 위해 지은 건물이라 알려졌습니다.

얼마나 효심이 지극했으면 어머니를 위해 이런 마을을 조성해 헌정했단 말입니까?

그러나 이 말은 잘못 과장된 모양입니다.

이미 진정경의 선조부터 이곳으로 옮겨와 터를 잡은 후 조금씩 건물을 올리며 살다가

후에 진정경이라는 사람이 본격적으로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합니다.

 

배경이나 돈이야 강희제의 스승이었으니 둘째가라면 서러워했을 터이니...

처음 이 마을이 만들어질 때는 그냥 시골의 보통 마을이었지만...

모두 완성하고 난 후 지금 바라보니 정말 대단한 집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집을 이렇게 크게 짓게 된 이야기는 이렇게 진행되었다 하네요.

진정경이 베이징에서 벼슬을 할 때 그의 어머니는 베이징을 한번 구경하는 게 소원이었답니다.

그런데 당시로는 교통편이 썩 좋은 편이 아니었으며 어머니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먼 길을 모시고 간다는 것은

효도가 아니라 생각되었을 겁니다.

지금도 여기서 베이징으로 가려고 해도 식겁합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건강이 염려스러워 이곳에 베이징을 흉내 낸 마을을 조성하게 되었답니다.

이것도 중국판 '마지막 잎새'입니까?

중국의 한 복판인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 있는 국기 게양대에 얽힌 어린아이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화타는 또 어디서 무얼 하고 숨어 지낸단 말입니까?

진 서방의 어머니는 이런 효심으로 말미암아 거뜬히 건강을 회복했다는 이야기는 없네요.

  

아무리 진정경이 대단하다 해도 어찌 이런 거대한 건물을 짓는단 말입니까?

과연 중국인다운 발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진정경은 강희제의 스승인 동시에 재상이었고 그 유명한 강희자전(康熙字典)을 비롯한 고전의 심열관이기도

했기에 대단한 힘을 지닌 진 서방이 이렇게 큰 저택을 짓고 나니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에

어머니를 끌어들인 것은 아닐 테죠?

그런데 집을 지은 모양을 보면 일거에 지은 게 아니라 살아가며 계속 옆에 붙여지은 모습으로도 보입니다.

  

그러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으니 무소불위의 힘을 지녔을 것이고...

이런 민속촌과도 같은 마을을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그렇지 이런 도성과 같은 마을을 새롭게 만드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니지요.

이렇게 과시하려는 힘이 지금의 관광자원을 만들었네요.

 

그러나 마을을 꾸미며 신도시처럼 계획도시로 만들 수 있었으니 무척 짜임새 있게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원래 혁명이 개혁보다 쉽다고 했습니다.

기존의 틀을 고치고 바꾸는 일보다 새로운 땅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게 더 쉬운 일입니다.

개혁을 부르짖다가 자신이 먼저 개혁된 경우도 우리는 종종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베이징의 자금성을 흉내 낸 건물을 짓고 이름도 황성상부라는 이름으로 효도를 한 것이 아닐까요?

진정경의 호가 오정(午亭)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이 황성상부를 다른 말로 오정산촌이라고도 한다는군요.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께서도 혹시 부모님께서 여행이라도 하시고 싶다고 하시면

다리 튼튼하시면 얼른 보내드리세요.

안 그러면 나중에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해외의 유명 마을을 만들어야 할는지도 모릅니다.

적은 비용으로 여행을 보내드리는 게 훨씬 경제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사실 이렇게 전설의 고향처럼 이야기가 전해온답니다.

진 서방을 띄워 주려고 그러는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황성상부는 사진처럼 무척 아름답습니다.

물론 답답한 건물군도 있지만, 그것은 많은 식솔이 살기 위해 거처를 마련하느라 지은 건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러나 그런 답답한 가운데 정원을 여러 군데 만들어 무척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집안은 명대와 청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황궁에서 벼슬을 한 명문가 집안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황성상부가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꾸어위(郭峪 : 곽욕)촌이라고 있습니다.

원래 그곳에 살던 진 서방네가 비좁은 그곳을 빠져나와 이곳에 새로운 터를 잡으며

가세가 점점 번창하게 되었지요.

이곳이 아마도 용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그런 명당자리였는지 모르겠어요.

 

진정경(陳庭敬)이라는 사람이 진씨네 가문에서 제일 잘난 꿈동이였지만,

혼자 자기 대에 이 황성상부를 만든 게 아니라는 말이죠.

선대부터 계속 만들어가며 증축하고 하면서 진정경(陳庭敬)이란 사람에 이르러 지금의 모습으로 확정되었다 합니다.

진정경은 실력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운도 좋게도 강희의 어린 시절을 책임지고 가르치는 사부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큰 잘못이 없는 한, 이미 장래가 약속된 준비된 맞춤형 재상 감이죠.

결국, 진 서방은 한 발 한 발 정상의 자리로 나아갔으며 결국, 나중에 재상의 지위까지 올라가고

또 강희제의 역작인 강희자전을 편찬하는 아주 중요한 자리에도 있게 됩니다.

아는 게 글이고 머릿속에 든 게 검은 글자뿐이니...

무식한 佳人과는 다른 사람이었네요.

 

어디 그것뿐인가요?

과거시험의 출제와 인재의 선발까지 확실하게 책임지니 황제가 아주 가까이하는 믿을 맨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그가 권력과 재력을 감당할 수 없어 뻗치는 기운을 억제하지 못하고

이렇게 어마어마한 마을과 같은 저택을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은 간절히 바라면 그가 목표한 일이 이루어지나 봅니다.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면 말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되기를 빌어봅시다.

그렇게 이루어진다 믿어보십시다.

그리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겁니다.

내일도 또 황성상부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우리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숙성되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좋은 포도주처럼 익어가는 일입니다.

그러나 가끔 숙성되라고 내버려 두면 숙성되지 않고 부패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佳人도 늘 자신의 보살피며 돌아보아 숙성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