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황제가 직접 쓴 점한당(點翰堂)이라는 편액이...

2012. 4. 24.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길을 걸어가며 처음 가려고 했던 그곳만 바라보고 가지 맙시다.

가끔 지나온 길도 뒤돌아보고 옆도 슬쩍 쳐다보며 걸어갑시다.

그곳에는 가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어 우리 얼굴에 저절로 빙그레 미소를 띠게 하는 게 있답니다.

 

살아가는 인생의 길도 그렇지 않을까요?

앞만 보고 가다 보면 얻는 것도 있겠지만, 잃는 게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워낙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기에 가끔 그런 것도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삶이란 눈을 깜빡이는 찰나이기에 너무 허망하게 살 이유가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이 때로는 지루하고 길어 보여도 사실 무척 짧은 순간이잖아요.

 

여행이란 우리 삶에 또 다른 하나의 삶이 될 수 있답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조미료와 같은 게 바로 여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톡~ 쏘는 그런 짜릿한 맛 말입니다.

 

콧노래도 흥얼거리며 걸어갑시다.

너무 바삐 살다 보면 왜 사는지조차도 잊어버리고 살게 됩니다.

우리 삶은 딱 한 번뿐이잖아요.

그런 삶이기에 리허설도 없는 삶이잖아요.

뒤풀이라도 있다면 바로 지금 즐겨야 합니다.

바로 우리처럼 백수가 되면 인생의 뒤풀이를 한다고 생각하며 말입니다.

 

지나고 나면 너무 빠른 시간에 지났다 생각됩니다.

어떤 일을 했던지 만족한 일보다 하지 못해 아쉬운 게 더 많은 우리의 삶이 아니겠어요?

그러기에 가끔 다른 삶도 살짝 연습해보며 살아보면 어떨까요?

 

원래 계획했던 길이 바른길이지만, 그 길만 걸어간다면 무미건조해지기 쉽습니다.

잠시 옆길로 빠져 새로운 세상도 경험해 보는 일탈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게 우리 생각을 살찌우는 일이 될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도 어제 이어 황성상부 안을 돌아봅니다.

상부라는 말은 재상부(宰相府)를 줄여 부르는 말이라 하네요.

황성상부라는 말은 황제가 직접 글을 써서 내려보낸 현판을 걸어놓은 곳이기에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빵빵하게 잘 나가는 죽여주는 집이라는 말일 겁니다.

 

山西省 晉城市 陽城縣 北留鎭에 이름도 범상치 않은 황성상부(皇城相府)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정확한 표현은 마을이 아니고 개인 저택입니다.

이 집을 거닐다 보면 골목마다 은은한 글 읽는 소리가 들리고 차를 달일 때 나는

차향이 우리의 코끝을 살짝 자극할 듯 한 마을입니다.

 

우리 부부는 이제 300여 년 전의 옛 마을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때 그들이 살았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입니다.

집 안에 덜수가 기지개를 켜며 나와 마당이라도 금방 쓸 것 같고 덜순이가 골목길을 쪼르르 뛰어다닐 것 같습니다.

글 읽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고 한 말은 바로 이 진서방 가문이 먹물을 잔뜩 먹은 집안이기에 그리 생각되었나 봅니다.

 

이제 세월이 지나 기둥은 썩어가지만, 그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은 아직도 예술적인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조상이 나무를 심으면 후손이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바람을 쐴 수 있다고 했나요?

조상이 돈이 많아 많은 투자를 하면 후손은 쉽게 돈을 벌 수 있잖아요.

 

황성상부...

조상이 공부를 해 출세를 하면 후손이 따라 그 길을 걸었던 곳.

바로 이곳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네요.

여기에 살았던 진 서방은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고 정진하여 뜻을 이루었고 그 후손은 그런 조상 덕에

자손 대대로 학문에 정진하여 그 일가가 중앙에 진출하여 크게 가문을 빛낸 그런 집안입니다.

 

중도장은 황성상부의 외성을 말합니다.

외성의 성벽과 점한당(點翰堂), 소저원(小姐院), 한림원(翰林院), 서원(書院), 화원과 공덕패방(功德牌坊) 등으로

구성된 중도장은 웅장한 규모로 청나라의 보루식 건물 군락을 보여줍니다.

장사로 부자가 된 집과는 조금 다른 아기자기한 모습을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번 보았던 왕가대원과는 크게 차이가 나는 곳입니다.

왕가대원은 큰돈을 벌어 대궐 같은 집을 지었고 이곳은 먹물을 먹고 자라 이런 대궐을 지었기에 두 곳 모두 다니며

비교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외성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대학사제(大學士第)라는 이름이 붙은 진정경의 2층 저택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강희황제가 직접 쓴 점한당(點翰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지금으로 따진다면, 건물값보다 편액 값이 더 나갈 것입니다.

강희제의 친필이라...

대단한 집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점한당(點翰堂)이라는 편액 자체가 금빛으로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화려하고 기세 또한 당당한 모습입니다.

어때요?

황제가 내려준 편액이라 아주 금으로 번쩍거리게 장식했습니다.

 

나무 원목으로 만든 병풍도 보입니다.

진품명품 시간에 출품하여 가격을 평가받고 싶습니다.

무게감도 느껴지고 가격 또한 제법 나가게 생겼습니다.

중국제라고 아무래도 가격을 후려칠까요?

 

용이 붕붕 날고 봉황이 춤을 춘다고요?

용이 방 안에서 날아봐야 천장에 머리 부딪혀 깨지기밖에 더하겠어요?

황제가 내린 현판을 모신 방이라 용과 봉황이 무슨 짓을 하든 용서받을 수 있을 겁니다.

정말 여기에 살았던 진 서방은 용처럼 날았고 봉황처럼 춤을 추며 살았을 겁니다.

세상에 용의 국물도 먹지 않고 태어나 더는 이룰 게 없는 것을 모두 이룬 사람이 아니겠어요?

 

대청 위에 걸려있는 점한당(點翰堂)이라는 편액은 글쓰기를 좋아해 마치 간판집 아들처럼 생각된 강희황제가

직접 한 땀 한 땀 공들여 쓴 글이라 합니다.

이 편액이 의미하는 것은 강희황제 시기에 이 집주인인 진정경이 나라의 인재를 선발하는 회시(會試)의

주임 시험관으로 여러 차례 국가의 기둥이 될 동량을 선발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에 황제가 직접

그를 칭찬하고 격려하기 위해 내린 표창 형식의 편액이라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거주하는 곳 방안에 자랑스럽게 걸어놓았습니다.

 

전실을 빠져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곳은 주인인 진 서방이 주로 기거했던 곳이나 지금은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네요.

옛날에 진 서방이 자기 집이 이렇게 변하리라 꿈엔들 생각했을까요?

진 서방은 모두 털리고 후손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묵었던 집주인도 진 씨였습니다.

아마도 이 동네에는 많은 진 씨가 살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가문을 빛낸 사람은 진정경 외에 몇 명 되지 않고 많은 진 씨는 빛을 내지 않고 빚만 냈을지도 모릅니다.

 

서재 겸 개인 사무실로 보입니다.

아주 검소하고 정갈해 보입니다.

먹물만 먹고살았던 사람이라 역시 전시된 물건에 먹물 냄새가 팍팍 납니다.

왕가대원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볼 수 없었던 그런 모습입니다.

 

담소도 나누고 차도 마시는 차탁입니다.

중국 드라마를 보면 이런 차탁에 앉아 손님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덜수가 놀러 왔다가 차라도 한잔하며 이야기도 나누던 그런 곳일 겁니다.

그 왼편으로는 잠시 누워 쉴 수 있게 간이침대도 마련해 두었습니다.

중국은 서로 마주 보며 앉지 않고 이렇게 같은 방향을 보며 앉았다는 게 우리와는 다르지요.

 

방으로 드나드는 문지방 위에도 용이 날고 봉황이 춤을 춘다고 했습니다.

진 서방은 황제 용과 황후 봉황을 가까운 거리에서 모셨기에 용과 봉황을 무척 좋아했나 봅니다. 

청소조차 하지 않아 때가 꼬질꼬질하여 아주 오래돼 보입니다.

 

아! 그렇군요?

바로 더 앤틱 하게 보이려고 일부러 청소하지 않았군요? 그쵸?

입장료는 100원씩 받으며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입니까?

용이 날고 봉황이 춤을 추다 먼지 때문에 캑캑~ 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이곳은 내실로 보입니다.

점한당(點翰堂)이라는 의미는 영어로 Examiner's Hall이라는 적어 놓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시험관의 방이라는 의미인가 봅니다.

이곳은 이렇게 황제의 친필로 쓴 곳이기에 감히 어느 누가 딴지 걸고 들어오겠어요?

이런 게 말 없는 무기입니다.

그러나 이자성이라는 사람에게 걸리면 황제에게도 육두문자가 막 날아옵니다.

 

그러나 손이 안으로 굽는다고 자기 후손 또한 시험에 다수 합격하는 일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주최 측의 농간(?)이 아닐까요?

우리가 말하는 아빠 찬스!

만약 누가 청문회에서 이렇게 묻고 따지면 뭐라고 했을까요?

물론, 본인이야 더 엄격하게 시험관리를 했고 후손이 똑똑하여 시험에 합격했다고 하며

"똑똑한 후손도 죄가 됩니까? 그러면 똑똑한 사람을 빼고 멍청한 사람을 등용하라는 말입니까?"라고 반격하면

질문했던 사람이 얼마나 머쓱해질까요?

그러나 현실은 성적 위조에 가짜 서류를 만들어 들이밀어 합격만 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고 잠잠해지지요.

 

까막눈이라 그냥 통과합니다.

이게 그 유명하다는 바로 흰 종이에 까만 글이군요?

진정경은 벼슬로만 유명했던 게 아닌가 봅니다.

정치가는 물론 사상가로 문학가로, 시인으로 아주 다방면으로 뛰어난 인물이었나 봅니다.

책도 많이 남겼고요.

역시 먹물로는 모든 것을 이룬 인물로 보입니다.

 

내실의 침실은 뜻밖에 검소합니다.

중국의 부잣집에도 대부분 이 정도의 침대밖에는 없습니다.

좁고 간결한 침대뿐입니다.

대하천간이라도 밤에 잠을 자는 공간은 여덟 척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말이

바로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언제나 황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나 봅니다.

머리맡에 저렇게 강희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자빠져 있으나 뒤비져있으나 당신 생각....

오직 주군만 생각하겠다는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내실을 둘러보니 우리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검소한고 정갈하게 하고 살았네요.

돈이 없었겠습니까?

빽이 없었겠습니까?

우리에게도 어느 집이나 있는 TV도 하나 없고 냉장고는 물론 세탁기도 이곳에는 없었습니다.

그때는 없었겠군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인생은 경주가 아닙니다.

누가 1등으로 들어오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느냐가 인생에서 성공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요?

 

여행도 경주가 아닙니다.

누가 얼마나 많은 곳을 빨리 보았느냐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내가 얼마나 그곳을 이해하고 마음속으로 느꼈느냐일 겁니다.

 

전투하듯 빡빡한 일정에 쫓겨 다니며 계획에 노예가 되어 정신없이 완벽하게 다니는 여행도 좋겠지만,

그냥 천천히 두리번거리며 돌아보는 여행이야말로 행복한 여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다녀야겠다고 마음먹고 출발했지만, 현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