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 최고의 명문가문의 저택인 황청샹푸(皇城相府 : 황성상부)

2012. 4. 27.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황성상부는 명나라 때인 570여 년 전 마을이 생기기 시작했고 청나라 시기인 강희제 때

이르러 오늘의 규모로 지어지기 시작하며 황성상부는 내성과 외성으로 구분되었고

1.700m 길이의 성을 쌓고 그 성에 아홉 개의 성문을 만들었다 합니다.

 

그리고 그 성 안에 크고 작은 정원을 19개나 만들었다 하는데 가진 게 권력과 돈밖에

없었으니 이 정도 규모의 성을 수축하는 일은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을 것이지만, 건물이

그냥 마구잡이로 지은 게 아니라, 생각하며 지었다는 점이 다른 대원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대단한 명문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후손을 교육하며 점차 중앙무대로 진출하며 살림도 나아지고 결국, 재상에 이르는

사람까지 나오게 되어 이런 이유로 진 서방네 가문을 북방 최고의 명문가문이라 부르니

명문이란 그냥 어느 날 불쑥 태어나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 노력하고 정성을

기울여만 태어나기에 노력 없이 이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위에 보이는 황각루(皇閣樓)라고도 하는 어서루는 중도장의 성문 앞에 있습니다.

화려한 조각의 대들보와 그림으로 아름답게 치장한 기둥, 낭창 하게 금방 날아갈 듯한 처마...

황가에서만 사용한다는 황금색 유리 지붕을 지금 중도장이라는 건물에 올라

뒤에서 내려다봅니다.

 

진 서방은 자기가 살았던 본관 건물 앞에 어서루를 배치해 모든 사람에게 위압감을

줄 것처럼 보이는데 황제가 내려준 편액을 누각 안에 걸어놓았으니

까불지 말라는 의미인가요?

뒤에서 바라보니 본관을 지키는 경비실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아닌가요?

황제가 내려준 글이 대신 집을 지키라고 개집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午亭山村이라는 현판 하나만 못합니다.

바로 이 건물에는 강희제가 친필로 쓴 위에 보이는 편액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게 팔면 돈 좀 될 거 같습니다.

이게 진품명품에 출품하면 값을 매기기 어려울 정도로 비싼 편액일 겁니다.

어젯밤에 올라갔을 때 몰래 떼어내 배낭에 넣어둘 걸 그랬나요?

그 시각에는 아무도 없었거든요.

 

 

의에 보이는 공덕 패방은 황성상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패방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앞에 먼저 네 개의 기둥으로 만든 패방이 보입니다.

그 패방의 모습이 워낙 위압적이라....

그것도 하나로 부족해 두 개씩이나 더 만들어 놓았습니다.

뒤에 보이는 패방은 기둥이 둘이고 조금 작지만 진 씨 가문에서 세상에

이름을 들어낼 정도로 이름을 날린 사람의 숫자가 많다는 말이겠지요.

 

 

이 석패방에는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하단에 보면 상서로운 짐승이 조각되어 있고 상단에는 봉황과 용이 마치

금방 꿈틀거리며 하늘로 올라가려는 듯 조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패방 자체가 이렇게 아름답게 만든 것도 쉽게 보기 어려운 것이네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출세했으면 패방 하나로는 부족해 두 개씩이나 그것도 앞뒤로

빽빽하게 새겨놓았으니 가문의 영광이요, 하늘이 내린 집안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큰 패방 뒤로는 기둥 두 개의 전형적인 작은 패방이 줄이어 서 있습니다.

이곳에는 명대를 거쳐 청대에 이르기까지 진씨네 가문이 받은 벼슬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 작은 마을에 이렇게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는 일은 기적에 가까운 일일

것이며 하물며 마을 사람도 아니고 진 서방네 가족이 말입니다.

조상 중 한 사람만 출세해도 그 가문의 자랑일 텐데 진 서방네는 그 수도 셀 수 없다 하니....

 

 

정말 이 작은 마을에서 잘난 집안임이 틀림없습니다.

천하를 호령했을 테니 얼마나 대단한 집안입니까?

패방은 쉽게 이야기하면 자랑질입니다.

 

이 석패방이 작아 모두 다 기록하지 못했을 겁니다.

황제가 바뀌어도 이 집안의 가문은 대를 이어 벼슬을 했다는 말이 되겠네요.

진사도 있고 거인도 있네요.

가정이나 만력은 명나라 연호이고 순치는 청나라 연호이니 중앙 정권이 바뀌어

새로운 세상이 열려도 이 가문에서는 화수분처럼 벼슬길에 올랐다는 말이네요.

여러분도 이곳에 들리면 잠시 올려다보시며 기를 받으세요.

그리하시면 후손이 크게 출세할 겁니다.

 

 

황성상부에는 어서루(御書樓)를 만들고 황금색으로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뭐 황제의 스승인데 황금으로 장식한다고 황제가 쫀쫀하게 스승에게 뭐라 하겠어요?

만약 뭐라고 트집 잡는다면 황제가 소갈머리 없는 쫀쫀한 사람이지요.

이름 또한 어서루라고 해도 모른 척 눈감고 지나가야죠.

가짜 학벌에 베껴 쓴 논문, 하지도 않은 봉사활동 허위스펙도 판치는 세상인데

황제의 진품으로 자랑 좀 했다고 누가 트집 잡겠어요.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 황성상부를 크게 둘로 나누는 중도장 쪽에 있는 건물을

살펴보았고 이제 뒤편에 있는 건물군으로 올라갑니다.

그곳으로 가는 방법은 성벽 위로 난 길을 따라가야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관광객을 위하여 걷는 길을 만들어 표시해 놓았기에 돌아보기 아주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잘 나갈 때는 상관없지만, 지는 석양이 되면 이 또한 죽어 마땅한

대역죄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도지죄라는 말도 있잖아요.

한비자(韓非子)의 세난 편(說難篇)에 나오는 여도지죄(餘桃之罪)란 말의 의미는

먹다 남은 복숭아를 드린 죄라는 말이라 했나요?

같은 일이라도 총애를 받을 때는 상관없으나 나중에 그 사랑이 식으면

 같은 일이었을지라도 죽을죄가 된다는 말이잖아요. 그쵸?

 

 

그냥 맹숭거리며 걷기보다 오늘 잠시 그 여도지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옛날 미자하(彌子瑕)라는 사람이 위나라 군주의 총애를 받았다네요.

위나라 법에는 군주 몰래 군주의 수레를 타면 다리를 자르는 월형이라는 형벌이 있었답니다.

 

한 번은 미자하의 어머니가 병이 나서 급한 김에 미자하는 군왕의 수레를 타고 나가게

되었다는데 이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억지로 지어낸 말처럼 보입니다.

세상에 궁궐 안에 마차가 군왕이 타는 마차 하나뿐인가요?

청와대에 승용차가 대통령 전용차밖에는 없답니까?

묻고 따지고 싶지만, 그렇다 하고 넘어갑니다.

정말 짜증이 나는 억지라고 생각됩니다.

 

 이게 다리를 자르는 처벌을 받을 짓임에도 불구하고 군왕은 미자하의 행동을 보고

"얼마나 효성스러운가! 어머니 병환을 염려하여 월형도 감내하다니"라고 칭찬하며

말했다니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는 말이 되겠네요.

 

 

또 어느 날 미자하는 과수원을 거닐던 중 복숭아를 따서 한 입 베어 먹었는데

맛이 기막히게 좋자 먹던 복숭아를 군왕에게 그대로 건넸습니다.

자기가 먼저 베어 먹다가 남은 복숭아를 왕에게 건넸으니 죽을죄를 지은 겁니다.

미자하 얘는 정말 왜 이러는 겁니까?

미자하가 하는 짓이 꼭 우리의 덜수와 같습니다.

 

 

꼴값 떨며 하는 짓이 당연히 죽어 마땅하나 헐!

그러나 군왕은 "참으로 나를 깊이 생각해 주는구나 얼마나 맛이 좋았으면

자기가 입에 대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내게 바치다니"라고 칭찬을 했답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이지요.

혹시 두 남자 사이에 썸씽이라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세월이 흘러 미자하에 대한 군왕의 사랑이 식고 미자하가 어떤 죄를 짓자

군왕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미자하는 지난날 나를 속이고 내 수레를 탔으며 자기가 먹던 복숭아를 버릇없이

내게 주었다. 군왕을 얼마나 우습게 알고 건방 떨었단 말인가! 

 정말 싸가지도 없고 재수도 없는 놈이로구나!"

사실 이게 인간적인 진실입니다.

 

 

참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옛날 일까지 속에 차곡차곡 담아 두었다가

하나씩 모두 꺼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과거를 들먹이기 시작하면 볼 장 다 본 겁니다.

어쩌면 잊어버리지도 않고 모두 꺼내놓습니까?

녹음기에다 녹음해 놓았다 다시 틀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했던 일까지 뒤집어 씌우는 게 인간이지요.

아니라 항변하면 "너도 그렇게 생각했다며?"라고 씌워버립니다.

 

 

우리도 서로 싸우고 나중에 화해했다고 합니다.

싸운 일을 잊었다고요?

과연 잊을 수 있습니까?

잊었다고 하는 말속에 "나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그 일을 결코 잊을 수 없어!"라고 다짐하는 말이 아닙니까?

 

제가 속이 좁다고요?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여도지죄의 이야기에 나오는 위나라 군주도 잊지 않고 있다가

모두 꺼내놓으며 끝장 보자고 하잖아요.

이게 인간의 본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람이 미워지면 옛날에 칭찬했던 일까지 모두 캐내어 한꺼번에 당하게 됩니다.

이 말을 여도지죄(餘桃之罪)라고 하며 먹다 남은 복숭아를 드린 죄라는 말로 같은

일이라도 총애를 받을 때는 상관없으나 나중에는 죄가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군왕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이 모두 검은 고양이 네로처럼 이랬다 저랬다 하게 마련입니다.

 

 

걷다 보니 성벽 옆으로 감나무가 있네요.

아직 감이 몇 개 달려 있습니다.

저게 복숭아라면 한 입 배 먹고 먹다 남은 나머지를 마눌님에게 줘보면 어떨까요?

 

울 마눌님은 고마워하지 그런 일로 절대 속상해하지 않습니다.

마눌님과는 여도지죄라는 말이 절대로 통용되지 않습니다.

세상에 부부만큼 허물없이 사는 관계가 어디 있겠어요?

커다란 양푼에 식은 밥을 넣고 고추장에 열무김치까지 넣은 후 참기름 몇 방울 떨어 뜨려

썩썩 비빈 후 비빔밥을 만든 양푼 밥을 함께 먹어도 되는 사이가 부부 사이 아닌가요?

그래서 부부간에는 무서우리만치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요?

사랑할 때는 연인의 단점까지도 매력적인데...

젠장, 싫어지면 장점마저도 미워지지요.

주위의 사람이 단점이 많이 보인다면 그 사람에게 사랑이 식었다는 증거입니다.

 

 

부부 사이도 그렇습니다.

지금 부부간에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십니까?

정말 사랑한다면 예전에 보였던 단점도 장점으로 보여야 합니다.

佳人은 울 마눌님 단점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영원히 발견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발견했다가는 혼이 나서 그럴까요?

 

 

동쪽 성벽 남쪽과 북쪽 끝에는 각각 사당이 하나씩 성벽 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남쪽에 있는 사당은 문창각(文昌閣)입니다.

문창제군(文昌帝君)은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전설에 따르면 주로 학문과 연관된 신입니다.

진 서방은 성벽을 쌓을 때 중요한 성벽 위에다 문창각을 세우고 문창제군을 모셨습니다.

역시 학문으로 뜻을 이룬 집안이라 문창각을 성벽 제일 높은 곳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래서 그랬나요?

진 서방네 후손은 관직에 나아가는 일에 막힘없이 술술 잘 풀렸고 많은 인재가

나왔으며 그 때문에 중국 북방 제1문화 대가족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합니다.

진 서방네 학문의 힘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했습니다.

중국을 다니다 보니 문창각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네요.

베이징 이화원 안에도 있었거든요.

 

 

이곳은 또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에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된 곳이라 합니다.

강희 왕조라는 영화를 이곳에서 촬영한 모양입니다.

성벽을 따라 계속 걷습니다.

 

동북쪽 성벽 위 모퉁이에 또 하나의 전각이 보입니다.

춘추각(春秋閣)이라는 곳입니다.

이름이 춘추각이지만, 관우를 모신 곳입니다. 

 

 

관우는 중국인에게는 재물신으로도 추앙받고 또 의리의 사나이였기에 역대

많은 군주가 관우에게 많은 관직을 내렸습니다.

관제라는 칭호는 제왕의 반열에 올렸다는 말이 아닐까요?

진 서방네도 관우를 모심으로 의리와 충성을 숭상하는 가문으로 관우는 또

진 서방네 가문에 대대로 평안을 가져다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관우는 오늘 손에 청룡언월도를 놓고 춘추라는 책을 들고 있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묵향이 그윽한 집에 왔다고 모처럼 때 빼고 광내고 업그레이드했나요?

그런데 얼굴이 새까맣다고 흑삼이라고 불린 포청천처럼 보입니다.

오늘 佳人이 카메라 들고 나타나니 일부러 청룡언월도를 버리고

유식한 체 책을 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이 황성상부는 한 시대를 풍미한 대단한 문인이며 관료였던 사람이 만든 곳으로

그곳에 함께 살아가는 민가와 더불어  전문가들이 "중국 북방 최고의

선비 가문의 거대한 저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곳입니다.

정말 여러분에게 추천하고 싶은 그런 곳입니다.

 

퍽퍽한 자금성이나 답답한 왕가대원보다 10배는 더 멋진 곳이라 생각되네요.

한 시대를 멋지게 풍미한 사람들이 살았던 집안이라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덜순이는 빼고요.

내일도 또 들춰보며 다니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세상을 살맛 나는 세상으로 만들고,

아름다움으로 가득하게 하며, 엉킨 실타래처럼 꼬인 오해를 풀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바로 우리의 마음을 여는 일입니다.

닫힌 마음으로는 오해와 불신과 짜증 나는 세상만 있을 뿐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의 모습을 보면 모두 자기 마음의 문은 닫고

열라고 하는 듯합니다.

욕설과 빈정거림만 있고 격려와 토닥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 본분에 맞는 일에 충실해야지 너도나도 모두 자기주장만 하면

세상은 점점 짜증 나는 세상이 됩니다.

우선 내 마음의 문을 먼저 열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