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가득한 황성상부

2012. 4. 28.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가끔 가던 길에서 벗어나 이런 곳도 찾아가 보는 일도 즐겁습니다.

계획하지 않았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곳을 볼 수 있기에 더 즐겁습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그냥 구경만 하지 말고 잠시 앉아 그들의 삶도 조망해 봅시다.

그곳에 앉아 예전 그들이 살아가던 모습도 상상해 봅니다.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있는 모습 그것뿐만이 아니고 상상의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기도 하잖아요.

때로는 피터 팬이 될 수도 있고 홍길동이 될 수도 있는 게 바로 여행이 아닐까요?

팅커벨 증후군에 빠져 세상을 짝사랑하며 살아갈지언정...  

 

황성 마을은 산기슭에 많지 않은 몇백 가구의 주민이 모여 사는 평범하고 작은 마을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마을이 산서성의 첫 동네로 공인될 정도로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비록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성벽과 주변 주민이 모여 사는

민가가 아주 잘 어우러져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이 작은 마을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민속촌인 셈입니다.

사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시골이 모두 민속촌과도 같은 나라이기는 하지요.

개발의 소용돌이가 비껴가며 바로 근대화로 진입하는 바람에...

 

지난번 들렸던 왕가대원은 이곳보다 더 큰 곳이었지만, 그렇게 정이 끌리지도 않았고

건물 숫자만 많았지 전혀 조화롭지 않았고 답답했다는 생각입니다.

그곳은 마치 집 장사가 지은 일정한 모양의 연립주택을 보는 느낌이라면, 이곳은

조경업자가 계획적으로 주변의 환경과 아주 잘 어우러지게 디자인하여

만든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큰 저택이라도 이렇게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요?

佳人의 눈이 타고난 예술적인 감각 때문일까요? 헐!!!

자주 다니다 보니 이렇게 비교할 수 있는 안목이 저절로 생기는군요.

하나를 들으면 백을 통하니 우짜면 좋겠습니까?

 

그곳은 영혼이 없는 곳이었다면, 이곳은 사랑이 넘치는 살아있는 곳이라는 생각입니다.

그곳은 그냥 사합원 형태의 비슷한 모습뿐이었지만, 이곳은 모든 건물이 모양부터 달라

다양한 형태를 볼 수 있고 그곳은 그냥 부자가 자기 과시를 위해 크게만 지은 곳이라면,

이곳은 많은 생각을 한 사람이 지은 곳이라는 느낌입니다.

 

그곳은 호령과 지시만 있었다면, 이곳은 사랑과 격려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곳은 돈 세는 소리만 들리고 이곳은 글 읽는 소리가 들렸을 것 같습니다.

같은 성벽에 쌓인 거대한 저택이지만, 느낌이 이렇게 다르네요.

이 정도를 비교할 수 있다는 말은 이제 佳人도 하산의 경지에 오른 겁니까?

돈 냄새와 묵향을 구분하는 코까지 지녔으니 말입니다.

 

이곳은 한 번쯤 들려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곳으로 적극 추천합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건물 앞에는 한글로 건물 이름과 간단한 설명까지 적혀있어

부담 없이 보고 다닐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관광객에서 건물을 둘러보는 길까지 세밀하게 표시를 하였기에

동선을 줄여가며 거의 모든 곳을 둘러볼 수 있는 곳입니다.

누구는 2시간이 걸릴 수 있으나 3시간 이상을 돌아보면 대부분 건물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 지방의 부호는 중앙에 큰돈을 내고 후손의 명예를 위해 조정에 부탁하여

 높은 사람의 편액을 받기도 했답니다.

물론, 그중의 제일은 황제의 친필이겠지요.

일종의 면죄부와 같이 돈을 내고 조정의 편액을 하사 받아

집에다 거는 게 유행한 적도 있었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돈이면 벌써 옛날에도 떵떵거리며 살았기에 지금도 부자에 대한

질투는 우리나라보다 덜한 정도가 아니라 존경까지 하는 게 다르지요.

사회주의 국가지만, 그만큼 자본주의의 피가 면면이 흐르고 있는 민족이라는 말이겠네요.

황제 사인 한 장이면 잡룡들 사인 벡 장하고도 안 바꾸었을 겁니다.

 

중국에는 예전에 집의 규모가 큰 곳에는 아침에 해가 뜨면

동쪽으로 난 창문을 여는 머슴이 있었다 합니다.

쉽게 말하면 창문 여닫기 담당 머슴이라 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집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해가 뜰 무렵 동쪽으로 난 창문을 하나씩 열기 시작하여

창문을 다 열면 우스갯소리로 점심시간이 되었다 합니다.

 

그러면 그 머슴은 점심을 정신없이 빨리 먹고는 다시 서쪽으로 난 창문을 열기 시작하여

그 창문을 다 열 때면  저녁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시간이 되어 다시 동쪽 문부터

닫기 시작하면 캄캄한 밤이 되어야 문을 다 닫았다 합니다.

환장할 노릇이지요.

제발 자기 방의 창문은 스스로 여닫읍시다.

안 그러면 빠떼루 주는 법을 만듭시다.

차라리 바깥의 빛을 감지하는 센서를 창가에 달아 자동을 창문이 열리고 닫히게 하던지... 

 

인구가 많은 중국의 부자란 우리의 부자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큰돈을 벌 수 있었나 봅니다.

교가대원의 주인도 두장 장사로만 큰돈을 벌어 그런 대궐과 같은 집을 지을 수 있었다잖아요.

게다가 워낙 산적도 많고 전쟁도 잦았기에 건물 자체가 보루식 건물로 마치 성처럼

견고하게 짓고 위의 사진처럼 담장 또한 넘어오기 어렵게 높이 쌓아 답답하지요.

우리 눈에는 답답하지만, 그들은 생존 방법이고 목숨과 관련된 일이기에 그렇게 살았습니다.

부자는 이렇게 사는 게 바로 삶의 지혜였나 봅니다.

 

여기처럼 재상의 집이라도 도적 떼거리에게는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무척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고 살았네요.

이제 성벽 걷기를 끝내고 아래로 내려갑니다.

이곳은 황성상부의 뒤쪽에 있는 구분된 내성입니다.

 

이 건물은 기린원이라 부릅니다.

황성상부의 재상부 건물은 주로 명나라 초기의 건물이라 합니다.

이 건물은 진정경의 할아버지인 진경제가 살았던 집이라 합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기둥 아래 돌짐승, 그리고 문 양쪽으로 둥글게 만든 조벽에

모두 기린의 조각이 있어 기린원이라 부릅니다.

 

원래 이름은 숭덕궁이라고 했나 봅니다.

이 건물에는 특히 조각이 일품입니다.

처마와 창틀, 난간, 조벽에 이르기까지 정교하게 조각한 예술품 그 자체입니다.

때로는 웅장하면서도 화려하고 우아하고 앙증맞게 조각하였습니다.

이 집에서는 작은 것도 소홀히 넘기지 마시고 자세히 들여다보며 가야 합니다.

정말 예쁜 것들이 무척 많습니다.

 

이번에는 중화자전박물관을 살펴보렵니다.

이 박물관은 중국에서는 유일한 자전박물관이라 합니다.

그러니 이 집의 귀염둥이라는 말이 아닐까요?

바로 다른 대원과의 달리 먹물로 가득 찬 곳이라는 차별화 전략이

이런 자전박물관을 만들었을 겁니다. 

 

참 오래된 자전으로 보이시죠?

청대에 이 집의 주인인 진정경 외에 여러 사람이 고생하며 편찬한 사전인 셈이랍니다.

이 책은 1881년도에 펴낸 책이라 하네요.

지금으로부터 130년도 훨씬 넘은 책입니다.

비록 오래되어 이미 삭아버렸지만, 표지에 보이는 꿈틀거리는 용은 제법 기품이 있지 않나요?

용이 책 표지 위를 붕붕 날아다닙니다.

 

민주족 출신 강희제는 초원을 말달리며 개장사나 하던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 자전도 펴 낸

사람이라고 머릿속에 지식으로 가득 찼다는 차별화를 시켜준 진정경을 업어주고 싶었을 겁니다.

자전 이름이 강희자전이 아니겠어요? 

 

이곳은 중국 자전 문화의 발생에서부터 발달과 변천 과정을 살펴보고 규칙을 연구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곳이라 합니다.

역대 주요 자전을 보고 그를 집대성한 강희자전을 만든 과정을 알기 쉽도록 설명한 곳입니다.

시대에 따라 만들어진 다양한 사전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여기에 진열된 강희자전도 아주 오래된 책으로 보이지만, 연대를 알 수 없네요.

강희자전이 여러 차례 발간되었을 겁니다.

진 서방은 후세에까지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역작이 바로 이 자전이 아닐까요?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이 집은 국가 소유로 되어 후손은 어디에 사는지 알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과 그가 세상을 향해 남긴 책은 남아 있습니다.

 

강희황제와 이 집 주인장인 진 서방의 사진이 함께 붙어 있네요.

그래도 황제는 색깔을 달리해 황금색으로 치장했습니다.

그런데 왜 강희제는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얻어먹지 못한 사람처럼 피골이 상접했나요?

진 서방은 황제와 어깨동무라도 하고 사진을 찍고 싶었을 겁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이렇게 동급으로 초상화를 걸어놓았을까요?

속마음은 아주 진한 포옹이라도 하는 사진을 걸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이곳에는 코끝도 비치지 않습니다.

아마도 자기네 글이라 모두 알고 있다는 말일까요?

우리 부부 둘이서만 한적하게 돌아보며 구경합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도 모르는 우리가 구경하는데 왜 중국인은 이런 곳을 들리지 않을까요?

 

이곳에는 중국의 역대 각종 형상을 연구하고 그게 글자로 변천되는 과정도

알아볼 수 있게 하여 놓은 곳입니다.

중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귀중한 자료도 다수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상형문자로부터 변천하며 중국글자로 정해지기까지의 변천 과정은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佳人 눈에는 검은 것은 글자요 흰 것은 분명 종이로만 보입니다.

좌우지간 중국 내에서는 유일한 자전박물관이라고 하니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하지 않겠어요?

오늘은 묵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곳을 위주로 보았습니다.

덕분에 佳人도 한층 업그레이드된 듯합니다.

 

이 집주인인 진 서방네가 먹물을 많이 먹었다고 이런 것 만들어 놓았지요? 그쵸?

이렇게 대단한 가문도 세월이 흐르며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게 인간의 삶인가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먹을 가까이 한 사람은 속이 검다고 했나요?

물론, 공부를 많이 한 사람과 가까이하면 안 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여기 조상 대대로 먹을 가까이하며 살아왔던 진 서방네가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패밀리였나 봅니다.

 

진 씨는 베트남에서도 한때 왕조를 이루고 살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쩐(Tran) 왕조가 바로 陳 씨입니다.

베트남을 원나라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낸 유명한 장군인 바익당 강의 영웅 쩐흥다오(陳興道)는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처럼 베트남 인민에게 추앙받는 장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