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저원(小姐院)에서의 한바탕 꿈

2012. 4. 25.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우연히 알게 된 마을이 있어 오늘 그곳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갈까 말까를 고민했지만, 하루만 투자하면 돌아볼 수 있는 곳이라 하기에 찾아왔습니다.

우리 부부는 가끔 계획에도 없는 이런 마을을 찾아가는 게 즐겁습니다.

여행 중에 너무 계획에만 의존해 움직이는 것보다 가끔 이렇게 일탈해 보는 일도 즐겁습니다.

우리 삶이 계획했다고 모두 그대로 이루어지겠어요?

우리 부부는 그냥 그렇게 살아가지요.

 

자유여행의 본질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다니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자유로운 여행을 꿈꾸며 배낭을 챙겨 떠난 여행길에 출발 전에 계획한 것에 얽매어

또 계획에 노예가 되어 움직이는 모습을 쉽게 보게 됩니다.

그 계획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도 큰일 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행은 이렇게 벗어나더라도 크게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다만, 혼자나 부부 둘만의 여행일 경우입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면 가능하면 처음 서로 계획했던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 좋겠네요.

 

어디 이게 진정한 자유여행이겠습니까?

길을 가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그냥 퍼질러 앉아 즐기고 원래 계획했던 곳일지라도 마음에 차지 않으면

그냥 슬쩍 지나쳐버리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덕분에 우리 부부는 이런 아름다운 곳도 구경하잖아요.

 

오늘은 금남의 구역이라는 소저원을 구경합니다.

드나드는 문도 달 모양으로 둥글게도 하고 아래처럼 도자기 모양으로도 만들었습니다.

아닌가요?

꿀단지인가요?

 

우리 부부는 여행을 떠나며 거의 예약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처음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는 불안한 마음에 첫 도착지만 미리 예약했습니다만,

요즈음에는 그것마저도 거부하고 무조건 도착하여 숙박할 숙소를 찾습니다.

그 후부터의 일정은 그냥 구름 따라 바람 따라 떠돌며 구경합니다.

출발할 날짜와 귀국할 날짜만 정해놓고 그냥 다니는 겁니다.

 

그렇다고 아무 곳이나 가지는 않습니다.

전체적인 동선을 그려놓고 그 동선을 따라가다가 근처에 좋다고 하는 곳을 슬쩍 다녀오지요.

그러다 보니 처음 계획에 있던 곳을 빼기도 하며 다니기도 합니다.

 

오늘도 계획에도 없었던 이곳 황청샹푸를 들어와 잠시 돌아보는 중이지만, 무척 잘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는 다른 분에게도 적극 추천하고 싶은 곳입니다.

핑야오 고성이 있는 근처의 대원보다는 이곳이 훨씬 더 좋다는 생각입니다.

먹물 많이 먹은 놈이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오늘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 셀레는 소저원(小姐院)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소저원은 2층으로 건물을 지었습니다.

진 서방네 딸들은 1층에 기거를 했으며 그를 돌보던 시녀들은 2층에 머물렀다 합니다.

사실 2층이 더 좋은 것 아닙니까?

단지, 오르내리기 귀찮다고 1층에 머물렀겠지만, 건강상 2층에 더 좋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역시~ 여자들만의 공간이라 내부 인테리어가 다르군요?

벽을 장식한 나무는 원목을 조각한 멋진 예술작품입니다.

병풍도 보이고 가리개도 보입니다. 

 

옴마야~ 어쩌나!

그만 금남의 구역인 소저의 방을 佳人이 무단 침범했습니다.

이거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겠어요.

저요?

변태 아닙니다.

믿어주세요.

 

그래도 들어온 김에 사진 한 장 얼른 찍고 나가겠습니다.

소저!

그대가 아무리 佳人을 있으라 붙잡아도 佳人은 이곳에 오래 머물 순 없소.

울 마눌님에게 맞아 죽는 수가 있걸랑.

아마도 佳人을 이곳으로 이끈 힘은 진 서방네 막내딸인 진 덜순이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는 짓이 덜수와 어찌 그렇게 비슷한지 이름도 덜순이 말입니다.

 

덜순 소저!

오늘 밤 달이 휘영청 떠오르면 뒷산 앵두나무 아래에서 만나자고 해도 나는 나갈 수 없소.

물레방앗간에서 만나자 해도 정말 나갈 수 없소.

단지, 소저가 내게 건넨 마음만은 배낭에 담아 한국으로 가지고 가오리다.

 

덜순 소저!

이제 佳人은 떠나야 하오~ 더는 이곳에 머물 수 없다오. 인제 그만 놓아주시오!

덜순 소저~

그대가 佳人의 팔을 더는 붙잡지 않고 놓아주는 이유가 보내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 佳人의 옷 소맷자락이

찢어질까 봐 그게 두려워 더는 잡지 않고 놓아준다는 것도 나는 이미 알고 있소.

 

"놓으시오! 소저! 이젠 놓으란 말이오~"

하며 옆을 돌아보니 소저는 온데간데없고 울 마눌님이 佳人의 소매를 잡고 밖으로 나가자 합니다.

잠시 소저와의 달콤한 춘몽에 빠졌습니다.

우쒸~ 정말 잠시나마 단꿈을 꾸었는데...

 

아~ 이곳에서 잠시 꾼 꿈속의 사랑은 이리도 허무하단 말인가?

이렇게 금세 깰 꿈이라면 꾸지나 말지....

황혼에 물든 사내 가슴을 마구 흔들어 버리고...

 

봄은 아름다운 꿈을 꾸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춘몽이라는 말이 생겼나 봅니다.

봄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어느 나른한 봄날,

여러분도 아름다운 춘몽에 잠시 빠져보는 것을 어떨까요?

 

소저!

그대 지금 저 위에 펼쳐진 천에 佳人을 위해 난을 치시면 어떠하니까?

佳人은 소저를 위해 시 한 수 읊으리라.

오늘 지필묵을 꺼내 주시구려~

아니~ 지필묵 중 종이는 필요 없소!

오늘 소저의 치마폭에 佳人이 시 한 수 남기리라.

 

나 떠난 후 보고 싶으면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보듯

佳人이 남긴 시 한 수 바라보며

佳人 본 듯 바라보시면 어떠하니까? 

 

추야 장창 긴긴밤을 그대와 함께 한 허리를 동여매어

북풍한설 몰아치고 찬 서리 내린다 해도

그대와 함께할 수 있다면 새봄에 그댈 위해 佳人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리라~

그리하면 그대는 꾀꼬리를 불러 노래 불러 주시구랴~

 

그대! 이번에는 佳人을 위해 거문고라도 연주할 모양입니다.

안 되는데...

이러면 정말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안 되는데...

되는데...

 

역시 소저원은 여성 취향으로 인테리어를 했고 비치한 소품도 그렇습니다.

소저원은 진 서방네 귀염둥이 예쁜 딸과 그를 보좌하는 시녀가 거주하는 곳입니다.

정원은 서화원과 통할 수 있게 만들어 정원에서 꽃도 보고 벌 나비도 희롱하며 님도 보고 뽕도 따고 하던 곳입니다.

 

아니군요?

뽕나무도 없고 님도 가까이할 수 없게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마치 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그런 감옥 같은 곳입니다.

 

창가에 붙여놓은 책상은 아마도 佳人에 연서라도 썼던 그런 책상으로 보입니다.

밤에 휘영청 밝은 달이라도 뜬다면 소저는 창문을 열고 달을 올려다보며 佳人을 생각하며 절절히 애타는 마음을

섬섬옥수로 연서로 적어 눈물 한 방울 찔끔 흘린 편지를 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보고 싶고 그리운 佳人님...

내 인생 모두를 바쳐 사모하고픈 내님이시여~

애타는 이내 마음 전할 길 없어 이렇게 글로나마 몇 글자 적어 보냅니다."라고 시작하는 연서 말입니다.

 

이곳에 머물며 딸들은 그림도 그리고 시도 썼을 겁니다.

물론 예능감이 떨어지는 딸은 다른 짓을 했겠지만...

바둑도 두며 거문고도 연주했을 겁니다.

 

덜수 여동생 덜순이는 전혀 예술적인 감각이 없어 무얼 하고 지냈나 모르겠어요.

옥상 위에는 별도로 울타리를 쳐 놓았다 합니다.

혹시 월담하는 덜순이를 막기 위해?

 

덜순이 얘는 말입니다.

이렇게 차를 마신다고 차탁에 찻잔을 올려놓았지만, 혼자 있을 때 곡차를 마셨는지도 모릅니다.

문디 가시나... 어~ 취한다~

곡차도 차 맞습니다요.

막힌 가슴 뻥 뚫어주는 명약이 되기도 하지요.

덜순이가 한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글도 쓰고 난도 치고...

蘭은 難 하고 亂 하다고 했나요?

마치 소저가 방금 난을 치고 다녀간 후의 모습처럼 꾸며놓았습니다.

저런 일은 어느 정도 예술적인 감이 있어야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덜순이는 죽었다 깨어난다 한들 할 수 없는 고난도 예술일 겁니다.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덜순이를 위해 시 한 수 남기고 갈까요?

 

가만히 서서 바라보노라니 여인의 향기가 코끝에 그대로 전해오는 듯합니다.

분 냄새가 밀려오는 듯 말입니다.

여자들만의 공간이라 무척 아기자기하게 꾸몄습니다.

이곳은 소곤거리며 담소하는 곳이라 생각되네요.

 

소저원 앞에는 반지(半池)와 앙증맞은 작은 정원을 꾸며놓았습니다.

주변이 워낙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이런 곳이 없다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습니다.

진 서방네 여식은 한 세상 풍요롭게 살았나 봅니다.

이곳에서 지내며 아름다운 꿈을 키웠을 겁니다.

 

갇혀만 지내는 딸을 위해 그 옆에 서화원(西花院)이라는 정원을 만들어 놓았네요. 

서화원(西花院)은 정원과 더불어 운치를 자랑합니다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물도 흐르고, 나무도 심어놓고 회랑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꾸며놓았더라도 싸다니기 좋아하는 우리의 덜순이에게는 전혀 아름다운 곳이 아닐 겁니다.

가끔 병이 도지면 월담하여 바깥을 싸돌아다니며 콧구멍에 바깥바람도 쐬게 해야 병이 가라앉지요.

 

서화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재상부 서쪽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 짓기 싫은 사람보고 이름 지으라고 그러면 꼭 이렇게 쉽게 짓습니다.

그럼 반대편은 뭐라고 지었을까요?

동화원이라고요?

아닙니다.

그곳에는 정원이 없습니다.

 

그 안에는 인공적으로 땅을 돋아 만든 작은 인공산도 있습니다.

고기를 기르는 양어장도 있습니다.

덜순이는 고기만 보면 생선회에 입맛 다시며 곡차가 생각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곡차도 차라고 우겼을지 모릅니다.

덜순이가 말입니다.

덜순아~

곡차는 차가 아니라 술이란다.

 

회랑에 화단을 가꾸어 놓았기에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이 피도록 배려했습니다.

비록 좁은 곳이지만, 무척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았네요.

이런 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저절로 아름다움에 취할 것 같습니다.

 

그 회랑 옆으로 인공적으로 물길을 만들어 물이 흐르게 했네요.

여기가 왕가대원보다 훨씬 좋은 이유를 이제 아셨지요?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곳은 세상 어디나 모두 아름다운 곳입니다.

왕가대원은 물이 흐르지도 않았고 꽃이 필 장소도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그곳은 마치 집장사가 지은 다세대 연립주택처럼 다닥다닥 붙여지어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이 연상되지만,

이곳은 하나하나가 그 목적에 맞게 예술성이 가미되어 디자인된 그런 아름다운 곳입니다.

 

구성이 교묘하고 구조 또한 매우 정밀하게 짜임새 있게 만들었습니다.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물이 흐르게 하여 마치 강남 원림의 미니어처로 생각되게 하여 놓았습니다.

이런 곳에서 자라며 진 서방네 여식은 꿈을 키우고 佳人과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상상하며 성장했을 겁니다.

 

소저! 

옴마나~ 그대 여기 있었구랴!

나 그댈 찾느라 천지사방을 헤매었다우~

그대 佳人을 찾아다니느라고 소녀는 소녀라도 이미 흰머리 소녀가 되었구랴.

세월이 많이 흘러 세월의 서리가 내리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지만,

아직 내 마음의 눈은 그대를 처음 본 소저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라오.

 

눈으로만 담은 모습은 세월이 흐른 후에는 변한 모습을 보겠지만,

마음속에 새겨놓은 모습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치 않은 옛 모습 그대로라우~

어서 내게 말을 해보우~

기다렸고 사랑한다고...

 

오늘 소저원에서의 일장춘몽은 무척 달콤했습니다.

佳人에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지 마세요.

달라이 라마도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여성을 눈앞서 보면 유혹을 느낀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공덕이 높은 고승이라도 길을 걷다가 고기집을 지나며 간판 정도는 보아도 무방하지 않겠어요?

메뉴판까지도 말입니다.

내일은 성벽 위를 따라 걸어보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모자람에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넘침에 있습니다.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과 만족함을 알지만,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고 탐욕과 아쉬움만 남는다 했습니다.

우리가 소득이 낮은 나라의 사람보다 행복만족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모자람에 있는 게 아니라 넘침에 있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