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원의 러서우탕(樂壽堂 : 낙수당)과 스웨이무쯔진(水木自親 : 수목자친)

2012. 1. 17. 08:00중국 여행기/베이징(北京)

의운관(宜芸館) 정전은 광서제의 황후 침궁입니다.

황후는 서태후인 자희 태후와 같은 성이 엽혁나랍씨로 자희의 질녀입니다.

광서 15년 황제의 부인이 된다는 꿈을 안고 오문의 가운데 문으로 당당하게 들어와 그날

황후로 책립 되었지만. 그녀의 삶은 이곳에서 창살 없는 감옥과 같은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요?

 

1908년 하루 사이로 서방인 광서와 서태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비록 서방을 마음에 묻었지만, 서태후는 땅에 묻어버렸을 겁니다.

그녀는 그날로 다음 황제인 부의가 황상의 자리에 오르자 황태후가 되며 세상의 뒤안길로

조용히 물러나게 됩니다.

비록 뒤로 물러났지만, 그녀는 제대로 숨도 쉬며 진정한 자유를 얻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삶이란 이렇게 어느 누가 죽어야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나 봅니다.

 

침궁 앞에는 동으로 만든 박쥐가 있네요.

중국 여행을 하다 보면 중국 가이드들의 성실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자기 일행을 끌고 와 차례를 기다리며 열심히 설명합니다.

우리 부부야 중국어도 모르니 귀동냥도 어렵지만, 다만 이게 중요한 것이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면 많은 사람이 한 번씩 박쥐 머리를 쓰다듬고 그리고

아래 고리에 손을 걸어보고 가더군요.

그래서 무척 반질거립니다.

박쥐란 중국에서는 상서로운 동물로 다산과 행운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박쥐라는 복(蝠)은 복을 의미하는 복(福)과 발음이 같은 fu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제 발걸음으로 옮겨 뒤에 있는 낙수당이라는 곳으로 갑니다.

낙수당 앞에는 커다란 태호석이 있습니다.

단일 태호석으로는 중국에서 가장 크기에 원림 지석이라 하네요.

 

원래 이름은 청지수(靑芝岫)지만, 일명 폐가석이라는 돌입니다.

태호에 주로 나는 돌이라 태호석이라고도 하지요.

폐가석이라는 이름은 이 돌을 옮기는 과정에 운반을 책임진 관리가 개인적으로 돈을 들여

옮겼다 라는데 워낙 운반하기 어려운 돌이라 너무 큰 비용을 사용하는 바람에

가세가 기울어 망해버렸다네요.

그래서 페가석이라고 한다는군요.

그래서 이곳에 오면 대부분 사람은 사진도 찍지 않습니다.

또한, 건륭황제의 모친 생일 선물로 이 돌을 이화원으로 옮겼는데 청나라도 그 이후 점차 국력이

시들해지며 쇠퇴해지기 시작하며 결국 왕조마저 문을 닫게 되었으니 맞는 말인가 봅니다.

 

그러나 정확한 자료에 따르면 명나라 관료인 미만종(米萬鐘)이라는 사람이 베이징의

방산이라는 곳에서 영지 모양과 비슷한 푸르고 빛이 나는 거대한 돌을 발견하고 그 돌을

미씨작원(米氏勺園)으로 운반하는 도중비용 문제로 할 수 없이 가져오다 중간에 버렸답니다.

이 이야기가 비약하여 집이 망했다 합니다.

 

그 후에 건륭황제가 거액의 비용을 들여 이곳으로 옮기고 청지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합니다.

공연한 유언비어로 사람에게 외면당하는 돌이 무슨 죄입니까?

그러니 이곳에 가시면 돌도 바라보고 사진도 찍으세요.

오늘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돌에 억울한 굴레를 씌워 슬프게 하지 마시고요.   

 

이제 러서우탕(樂壽堂 : 낙수당)을 살펴보렵니다.

즐거울 낙에 목숨 수라...

이곳은 쿤밍후 호수의 동북쪽에 있으며 서태후가 말년을 보낸 곳입니다.

주로 서태후의 침실로 이용된 곳이라 합니다.

 

원래는 풍류남아 건륭제가 어머니인 황태후를 모시고 아름다운 쿤밍후를 즐기던 장소였지요.

이화원에서는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건물입니다.

낙수당이라.... 이름 하나 죽입니다.

즐겁게 사니 오래 살 수 있나요?

아니면 오래 살아서 즐거운가요.

 

여기는 중국 최초로 전등이 가설된 건물이라 합니다.

이름처럼 즐겁고 천수를 누렸기를 바랍니다.

이곳 전각 안에는 일렬로 늘어선 유리 병풍이 압권입니다.

 

내부는 공개하지 않아 창문으로 넘겨다 보고 가는 곳입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혹시 서태후가 마귀가 되어 아직 안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니겠죠?

 

낙수당 동쪽에 있는 영수제는 서태후의 측근이자 가장 아꼈던 태감 이연영의 거처였답니다.

이 전각의 거실 좌석을 보면 위의 사진처럼 주인 이연영의 좌석이 왕공 대신들보다 높게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일개 태감의 주제에 당시 황제가 부럽지 않은 권세와 사치를 누렸던

이연영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이곳에는 태감 제도에 관한 갖가지 물건을 전시, 보관하고 있으며

점토 인형을 만들어 옷을 입혀 놓았습니다.

원래 인간 꼬라지 못된 것들이 이런 짓을 하기는 하지요.

어디 중국에만 그럴까요?

이런 일이 바로 하극상이라고 하나요?

아주 꼴값을 떨었겠군요?

 

스웨이무쯔진(水木自親 : 수목자친)은 호수와 만나는 물가에 세워진 전각인데 서태후가

배를 이용해 이화원을 왕래할 때 용선을 타고 내리던 부두 겸 낙수당의 호숫가 정문인 셈입니다.

낙수당(樂壽堂) 건물 앞에 커다란 반원형의 기둥이 보이네요.

 

만약 저 기둥 위에 등이 걸리면 그날은 서태후가 남자와 동침 중이라는 의미라 하네요.

그러니 배 타고 건너와 방해하면 죽는다는 의미인가요?

그리고 동침한 남자도 그 다음날 죽임을 당했다는 말도 들립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중국을 다니다 보면 혼란스러울 때가 잦습니다.

그런데 생긴 것도 마치 기요틴처럼 생겼습니다.

 

이 또한 누가 지어낸 말인지 그럴듯합니다.

환장할 노릇이지요.

아무리 서태후가 미워도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백 년 묵은 여우입니까?

사람을 밥 먹듯 죽여요?

정말 너무하시네요.

사실일지도 모르다고요?

 

그래서 제가 서태후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진실은 이렇답니다.

낙수당 앞에 있는 수목자친전이라는 건물 앞에 아주 아름답고 화려한 구름이 조각된

등불을 올리는 원형의 기둥이 있습니다.

제일 꼭대기 아래로 석조 돌 시계를 매달아 시간을 알려 줍니다.

태양에 의해 그림자가 드리우면 시간을 알려주는 해시계 말입니다.

 

멀쩡한 해시계를 메달아 놓은 것을 보고 사내를 서태후가 죽여요?

아무리 서태후가 미워도 없는 말까지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지금은 돌로 만든 해시계를 메달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이 든 서태후가 남자와 동침한다고 동네방네 소문낼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게 가문의 영광도 아니고 말입니다.

 

옛날 사진 한 장 봅니다.

이 사진에 보면 기둥 위에 무엇이 걸려 있는 게 보이실 겁니다.

물론 밤에는 불을 피워 주변을 밝혔고 낮에는 해시계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가 한 행동은 잘못되었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차라리 이게 단두대라 하시고 낙수당으로 몰래 들어오려는 사람의 목을

바로 친다고 하면 어떨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세상의 모든 걱정의 근원은 내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내 마음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것이라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의 걱정이 생기지 않습니다.

잡으면 지옥이오, 놓으면 천국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