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원의 창랑(長廊 : 장랑)과 더허위안(德和園 : 덕화원)

2012. 1. 18. 08:00중국 여행기/베이징(北京)

더허위안(德和園 : 덕화원)이라는 건물은 건륭제 때 지은 건물로

천하의 풍류객인 건륭제는 이곳에 신하를 모아놓고 연회를 베풀곤 했다 하네요.

그 후 광서제 때 다시 새롭게 지었답니다.

후에는 주로 서태후가 좋아했던 경극을 위한 공연장으로 사용되었다 합니다.

맨날 먹고 입고 사치만 한 지 알았는데 문화예술에 이런 감각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덕화원은 내부수리 관계로 문이 잠겼습니다.

 

21m 높이의 3층 규모의 대희루는 경극 공연이 열렸던 곳이고 건너편에 있는

이락전에서 서태후는 경극을 즐겼다 하네요.

이런 이유로 중국의 경극이라는 예술활동이 서태후 시절에 만개했다 하네요.

중국의 경극이 사랑받는 이유가 서태후도 한몫 크게 한 셈이겠지요?

 

무대 시설이 당시로는 중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완벽하게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신산이나 괴수들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가 있고 비가 오는 특수장면을

나타내기 위해 물을 하늘로 분사해 비 오는 효과를 연출했던 시스템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합니다.

 

그래서 이곳을 '경극의 요람'이라고 까지 한다는군요.

덕화원 안에는 당시 서태후가 입었던 옷과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대희루는 무대로 사용되었고 맞은편에 있는 현락전은 40명 정도만 이용할 수 있는

객석으로 이용되었다 합니다.

 

서태후는 이곳에서 경극을 관람할 때 언제나 황제 광서제와 그 황후를 맨 끝에 만든 임시 의자에 앉게

했다고 하는데 황제는 그 구석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엿 먹으라는 말이었을까요?

정말 너무하시는군요?

그래도 명색이 황제이고 서태후는 그 황제의 면허를 빌려 폼을 잡고 지냈으면 면허 대여료라도

두둑이 주어 편안하게 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67세의 서태후는 미국의 여류화가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을 하고 이곳에서

서태후의 화상을 그렸는데 실제보다 훨씬 더 젊고 예쁘게 그려주어 서태후는 이에 만족하고

후한 상을 내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늙으나 젊으나, 권력이 있으나 민초로 살아가나....

세상 모든 여자의 마음은 같은가 봅니다.

위의 사진이 67세였다는데 마치 보톡스 맞은 듯 팽팽하게 그렸네요.

 

위의 초상화는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Hubert Vos가 서태후를 그린 그림입니다.

손톱 꼬락서니 하고는...

이때 귀족여인네의 손톱은 기르기도 했고 이렇게 기다란 장신구를 끼웠나 봅니다.

그는 서양인으로 이화원에 머물며 초상화를 그린 최초의 남자 화가라 하네요.

 

얼굴에서 느껴지는 게 없나요?

사람은 마흔 살이 넘으면 그때까지 만든 생각이 얼굴에 나타난다 했잖아요.

지금 저 얼굴이 서태후가 만든 인생이 아니겠어요?

어디에 복이 많아 그런 호사를 누리며 만수무강했을까요?

 

Hubert Vos는 우리나라에도 방문해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전신 초상화를 그렸다 하네요.

위의 사진이 바로 Hubert Vos가 그린 우리 고종황제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마치 넉넉한 우리 이웃집 아저씨 같은 편안하신 모습입니다.

 

그는 또 고종의 외척인 민상호의 초상화와 한성부를 묘사한 풍경화를 그린 것으로도 유명한

사람으로 위의 사진은 당시 서울을 그린 그림이라 합니다.

멀리 보이는 문이 광화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경선당에는 또 하나의 초상화가 있는데 이것은 미국의 여류화가인 Karl이 그린 것으로

실물보다 젊고 예쁘게 그렸다고 기쁨 주고 칭찬받은 그림일 겁니다.

정말 보톡스 주사 맞은 것보다 더 젊게 그렸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왜곡을 하였으면 상까지 내렸겠어요.

 

그런데 함풍제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모습의 자희에게 뻑 소리 나게 갔을까요?

아마도 중국 황실의 최대 미스터리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함풍제는 아마도 전날 마신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자희를 만난 게 아닌가 변명할지 모르겠네요.

 

아니면 옆에 있던 태감이 자희의 뇌물공세에 넘어가 황제가 다른 아이를 보고 "쟤"라고

하였는데 밤에 황제의 방에 들여보낸 여인이 자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리바이벌하라고 할 수도 없고...

 

이화원에서 볼거리 중 유명한 곳이 바로 창랑(長廊 : 장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체 길이 728m의 긴 복도이기에 장랑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다른 말로 천 간의 긴 화랑이라는 의미인 천간낭하(千間廊下)라고도 한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천 간이 아니고 요월문(邀月門)에서 석장정(石丈亭)까지 273칸이라 하네요.

 

동쪽의 기점인 야오위엔먼(邀月門 : 요월문)에는 오래된 백년옥란(百年玉蘭)이 자라고 있습니다.

매년 3.4월에는 화려한 눈꽃 같은 꽃이 핀다고 하니 그 또한 멋진 풍경일 듯하네요.

 

장랑에도 자희태후에 얽힌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장랑은 건륭 15년에 만들어졌으며 그 후 영국, 프랑스 연합국에 의해 불태워졌으나

광서 12년에 다시 만들었다네요.

대들보에는 인물, 산수, 화초, 조류 등 채색화가 8.000여 점이 그려져 있고

중국 원림 중 길이가 가장 긴 복도인 셈입니다.

 

쿤밍호를 왼쪽으로 바라보며 걷는 산책하기 좋은 곳이죠.

비도 막아주고 햇볕도 막아주니 놀기 좋고 물 좋은 곳이 맞습니다.

불교 신자였던 서태후가 불향각으로 불공을 드리러 갈 때와 산책할 때 주로 이용했다 하네요.

 

그녀는 부처에게 무엇을 빌었을까요?

부처는 또 그녀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세상에 모든 것을 손에 쥐었다고 한 그녀도 빌고 싶고 원하는 것이 있어나 봅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도 한도 없습니다.

 

그녀의 힘으로는 돌아앉은 부처도 바로 앉게 했을 겁니다.

만약 부처가 서태후가 빌고 원했던 일을 들어주었다면 부처도 나빠요.

그녀는 '생각대로 하면 되고.'라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지 않았을까요?

 

이 장랑을 걸어가며 그냥 휘리릭~ 하고 지나치지 맙시다

가끔 앉아 떨어지는 낙엽도 바라보다 갑시다.

지금 떨어지는 낙엽은 지난봄에 새싹으로 돋아난 바로 희망에 가득 찬 그 새싹이었잖아요.

그리고 낙엽은 세월이 지나 이제 내년에 돋아날 새싹을 위해 아무런 후회도 없이 자리를 양보합니다.

 

우리네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쿤밍호에 반짝거리는 물도 바라보고 갑시다.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은 또 어떻겠어요?

세상은 느끼고 보려는 사람에게만,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쁘다고 가이드 깃발만 따라다니다 보면 나중에 돌아와 생각하면 깃발만 떠오릅니다.

 

그러나 자희태후는 천 년을 살 것처럼 그리 살았습니다.

아들을 보위에 올리고 운도 좋게(?) 일찍 죽자 또 조카를 보위에 올리고

그 꼴 난 권력이 탐이나 흔들고 또 흔들고...

그 조카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차라리 화초처럼 키우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佳人 꼬락서니도 별수 없군요?

원래 황제란 죽으면 죽은 황제의 다음 세대가 보위에 오르게 되었지만, 만약 그렇게 하면 서태후는

황태후에서 태황태후로 진급하고 어린 황제는 그의 어머니인 황태후가 수렴청정하며

태황태후는 권력의 일선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서태후에게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요.

그래서 그녀는 아들과 같은 세대인 항렬이 같은 조카인 광서제를 보위에 올리고 다시

수렴청정할 수 있었고 권력의 단맛을 본 그녀는 그 맛을 잊지 못해 광서제도 감금하다시피

가두어 버리고 권력의 일선에 나섰습니다.

 

매 200m마다 나타나는 정자는 늙은 서태후가 중간마다 쉬었던 곳이라 합니다.

이 정자는 각각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는 리우쟈(留佳 : 류가), 치란(寄瀾 : 기란) ,

취우쉐이(秋水 : 추수), 그리고 칭야오(淸謠 : 청요)라고 이름 지어진 8각 정자가 있습니다.

 

이 좋은 곳에 앉아 그렇게 나쁜 생각만 하고 살았던 자희는 무척 불행한 여자였나 봅니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어떻게 그런 나쁜 생각을 키울 수 있었을까요?

그런 일은 죄를 짓는 일입니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사람이 자꾸 아름다워져야지 나쁜 마음을 했다는 것은

불행한 여자라는 말일 겁니다.

관화미심, 관수세심...

 

주랑의 천장에는 삼국지나 서유기의 이야기에 나오는 장면과 멋진 산수화 등

14.000여 점이 그려져 있다고 하네요.

그러니 중국 최대의 야외 갤러리인 셈입니까?

이곳을 들려 천천히 이 그림만 보고 다녀도 즐거울 것 같습니다.

 

쿤밍호에서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을 맞으며 화랑에 걸린 그림을 감상하며

걷는 일도 과히 나쁘지 않습니다.

황제들도 우리처럼 이곳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특히 서태후는 말입니다.

궁금합니다.

궁금하긴요?

오늘 식사에는 어떤 맛 난 음식을 먹을까라는 생각 외에는 한 게 없었을 겁니다.

 

장랑 양쪽에 심어놓은 측백나무 가로수 길도 멋진 모습입니다.

이곳을 걸으실 때는 절대로 빨리 지나치지 맙시다.

천천히 즐기며 황제의 걸음걸이로 걸어갑시다.

그렇게 내가 황제의 걸음으로 걸으면 함께 걷는 사람을 황후로 만들 수 있잖아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장랑은 참 멋진 곳입니다.

그곳은 야외 갤러리입니다.

가다가 지치면 바로 앉아 쉴 수 있는 의자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쉬면서 바라보아도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