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밍후(昆明湖 : 곤명호)와 스치콩치아오(十七孔橋 : 십칠공교)

2012. 1. 14. 08:00중국 여행기/베이징(北京)

문창원은 나와 남쪽으로 호수를 따라 계속 걷습니다.

바람도 살랑거리며 불고...

오늘은 맑은 하늘에 산책하기에는 날씨가 무척 좋습니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호수를 쿤밍후(昆明湖 : 곤명호)라고 부른다네요.

 

이 쿤밍후는 이화원에서 가장 넓은 곳을 차지하고 있는 호수입니다.

물론 인공호수로 물 좋은 이화원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고 만든 호수입니다.

그러니 순전히 삽질로만 파낸 호수라는 말입니까?

중국을 구경 다니다 보니 이런 곳에 제법 많이 있네요.

 

처음 삽질을 시작한 사람은 몽골족인 원나라 시기였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관계용 수리시설로 시작했다 합니다.

명나라에 이르러 주변에 나무를 심고 가꾸다 보니 아름다운 호수로 변신하게 되었다네요.

 

그럼 이곳에 있던 흙은 어찌했을까요?

비로 이곳에 있는 만수산이 여기서 파낸 흙을 쌓아 만든 산이라 하네요.

대단하다 해야 하나요?

아니면 무모하다 해야 하나요.

 

1750년 건륭제 때 제대로 만들었다는데 항저우에 있는 서호를 보고 샘이나 만든 모양입니다.

서태후가 이곳을 좋아해 주로 여름 별궁으로 사용한 모양입니다.

1860년 아편전쟁 때 영국과 프랑스 연합국에 의해 한번 수난을 당하며 많은 유물이 약탈당했다 하며

다시 의화단 운동이 한창인 1900년에도 서구 열강 8개국에 의해 또 파괴되었다 합니다.

 

워낙 사치를 즐겼던 서태후는 해군의 증강을 위해 마련한 30만 은의 예산을 전용해 다시 건축하게 되며

이름도 이화원이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태후가 처음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파괴된 이곳을 황실의 정원으로 다시 개발하자는 의견에

동의하고 나선 신하는 아무도 없었다 하네요.

아무리 생각 없는 사람이라도 나라가 저물어가는 데 황실의 정원을 많은 돈을 들여

다시 복원하자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서태후는 한 가지 꾀를 냅니다.

바로 한나라 시절 무제가 했던 일이지요.

무제는 당시 한나라의 도읍이었던 장안(오늘의 서안)에 곤명지라는 인공 호수를 만들고 수군을 훈련했다 합니다.

 

서태후도 이에 착안하여 황실 정원인 이화원의 복원은 중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놀고 마시며 노는 곳이 아니라

청나라 수군이 훈련하고 강군을 만들기 위해 고육책임을 주장하여 공사를 강행합니다.

이렇게 목적을 변경하니 반대하는 신하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때까지 서호라는 이름의 호수는 곤명호라 바꾸고 그 넓이만도 무려 두 배에 달합니다.

 

이 일은 모두 순수하게 삽질만 해서 파냈을 겁니다. 

그곳에서 나온 흙은 다시 만수산을 더 높이는 일에 사용하였고요.

중국이 가장 잘하는 일이 바로 이렇게 순수한 인간의 힘으로만 만드는 일이잖아요.

 

중원은 북쪽 야만족의 침입을 방어한다고 쌓았지만, 여러 차례 그들에게 침범을 당해 그들을 지배층으로 모시고

살아온 중원의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는 만리장성이며 이런 일을 취미생활로 하는 사람이 중국사람이잖아요.

여기에 들어간 비용이 은 3.000냥이었으며 그 돈은 바로 군비확장에 사용될 돈을 전용한 것입니다.

 

기록에 보면 사실 곤명호에서 몇 번 수군의 군사훈련이 있었다 하네요.

수군의 훈련하는 모습을 놀이로 생각하고 그랬나요?

아마도 지금처럼 놀잇배를 타고 놀았던 일을 수군의 훈련이었다고 적어놓았나 모르겠네요.

오늘도 젊은 중국인들은 이곳에 몰려와 돈을 내고 수군의 훈련 놀이를 열심히 합니다.

오리 모양의 수군도 있습니다.

 

요즈음 중국은 항공모함을 진수했고 첫 항해를 한다고 난리 치고 있더군요.

항공모함이라면 해군으로는 최고의 전투무기가 아닙니까?

설마 이곳에서 훈련한 것은 아니겠죠?

그런데 정말 웃기는 이야기는 우리가 이어도-독도 함대를 만든다 하니

한국이 군사적 야심을 드러냈다고 비난했다는군요.

지들이 만든 항공모함은 서태후의 놀잇배입니까? 

이런 마음을 지닌 나라가 중국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막상 청일전쟁이 터졌을 때 내륙인 베이징에서 전함을 이끌고 80km 떨어진 톈진까지 가는 사이

이미 해군 제독인 정여창이 이끄는 함대는 일본 해군에 궤멸하였다는 허탈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곤명호에서 수군의 훈련은 무척 효과가 있었지만, 실전에서는 참전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

소용이 없었나 봅니다.  

 

한 여인의 개인적인 사욕을 위해 해군력을 증강하지 못해 나라를 지킬 힘조차 없어진 중국은 늙고 병든

미련한 곰처럼 이리 터지고 저리 얻어 맞아가며 비틀거리는 신세가 되었지요.

서태후의 이름이 자희라고 했나요?

한자로 慈라는 의미는 자애롭다는 사랑을 일컫는 말이 아닙니까?

禧라는 말의 의미는 복이나 경사라는 의미가 아닙니까?

그러면 자희라는 이름은 중국에는 자애롭고 경사를 주는 사람이 되라는 말인데

반대로 중국이 그녀에게 그렇게 만들어 주었나 봅니다.

 

그녀가 진정 베푼 것은 자신의 조국인 중국 국민에게 베푼 게 아니고 자기 자신과 서구 열강에

보상금으로 백은 12억 6.500만 냥이었으며 할양된 중국의 토지만 7만 제곱킬로미터였습니다. 

혼란의 시대에 태어나 권력을 휘두르며 더 큰 위기로 몰고 간 자희는 중국을 고통과 도탄에 빠지게 했을 뿐입니다.

48년간 대국이라는 커다란 나라를 좌지우지하며 살았던 자희는 진정 행복한 여인이었을까요?

사실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이기에 일부러 절단내려고 그랬을까요?

 

쿤밍호 건너편의 탑이 하나 보입니다.

마치 항저우 서호의 육화탑을 보는 듯합니다.

이것도 흉내를 내어 지었나요?

 

쿤밍후 중간쯤 내려오면 그곳에 다리가 보입니다.

첫눈에 보아도 범상한 다리가 아닙니다.

그 이름이 스치콩치아오(十七孔橋 : 십칠공교)라고 하네요.

 

그 다리 앞에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퉁뉴(銅牛 : 동우)라고 구리로 만든 소가 누워 있네요.

1755년 만들어진 구리로 만든 소입니다.

이곳에 소를 만들어 놓은 이유는 큰 비가 내려 호수가 넘치는 것을 방비하기 위함이라 하네요.

살아 있는 소 한 마리 이곳에 둔다면 물이라도 마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지만,

어리석을 인간은 아무 쓸모없는 구리 소를 만들어 바보 같은 짓을 하였네요.

 

그러나 고대 우 황제가 쇠로 소의 형상을 만들어 홍수를 막았다는 역사적인 기록에 따랐다고 하니

아무 할 말 없습니다.

한때는 금으로 만든 금송아지라고 소문이 나 이곳을 침입한 연합군이 금송아지 찾는다고 난리법석을 피웠다

하지만, 동우는 그런 역사적인 이야기에 전혀 눈도 껌뻑거리지 않고 다리만 바라봅니다. 

 

구름 문양이 조각된 청색 받침대 위에 앉은 이 황소는 등에 전문(篆文)으로 쓰인 80자의 금우명(金牛銘)이란

글이 새겨져 있는데 1755년 쿤밍호를 대대적으로 확장 보수한 건륭제가 大禹治水의 고사를 인용해 이곳에

청동 황소 상을 설치하고 동쪽 제방이 수해로부터 안전하길 기원한다는 뜻에서 이 글을 지었다 합니다.

잘난 척하느라 글씨도 알아볼 수 없게 전서체로 썼군요?

그냥 써도 사실 못 읽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리 동쪽에 꾸어로팅(廓如亭 : 곽여정)이라는 정자가 하나 있습니다.

 곽여정이라는 정자는 8 각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는 중국에서 가장 큰 정자라 합니다.

 

이제 스치콩치아오(十七孔橋 : 십칠공교)라는 다리를 건너 섬으로 들어가 보렵니다.

쿤밍호 동쪽 제방과 호수 위의 남호도를 연결하는 다리로 교각 사이의 구멍이 열일곱 개가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라네요.

길이 150m 폭이 8m로 이화원에서는 가장 긴 다리입니다.

아마도 아름다운 옛 다리인 소칠공을 흉내내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다리 난간의 석주에 모두 544개의 사자 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 모양이 모두 다르다 합니다.

이 다리도 서호에 있는 다리를 흉내 냈을 겁니다.

아니군요?

바로 어제 다녀온 노구교? 

그렇다는군요.

 

사실은 중일전쟁의 도화점이었던 노구교(盧構橋)를 흉내 낸 것이라 하네요.

그 모습이 마치 날아갈 듯 걸린 무지개처럼 가볍게 섬과 육지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섬의 이름은 남호도(南湖島)라는 섬으로 17 공교를 통하여 들어갑니다.

남호도는 호수의 중앙 부근에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17 공교와 연결되어 곽여정이라는 정자가 있는 제방과 걸어서 다닐 수 있습니다.

이 섬은 반대편 언덕에 멀리 떨어진 만수산과 아주 잘 어우러진 완벽한 정자와 다리 등이 있지요.

 

섬 안에는 세상을 모두 담겠다는 함허당(涵虛堂)이나 월파루(月波樓) 등 볼거리 또한 많습니다.

천천히 걸어 다니며 산책하듯 구경하는 일도 좋습니다.

누가 따라오는 일도 없고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걸어도 좋을 곳입니다.

 

여기는 서태후와 광서제에 얽힌 이야기가 없나 봅니다.

두 사람은 아마도 전생에 부부였는지 모릅니다.

너무나도 사랑한 부부 사이였기에 이승에서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살다가

조카 먼저 큰어머니이면서 이모 먼저 하면서 하루 사이로 세상을 버렸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승에서 광서제가 하루 먼저 죽었으니 저승에서는 하루 뒤에 따라온 서태후를 혼내고 있을지 모릅니다.

저승에서는 선입이 적용되어 군기반장을 시켰을지 모르잖아요.

이승에서 받은 박해와 설움을 따따블로 말입니다.   

 

오늘 돌아본 곳입니다.

위치를 보시면 그냥 길을 따라가다 보면 모두 눈에 뜨이는 곳에 있지요.

이제 우리 부부는 다시 이곳을 나와 호수를 따라 북으로 올라가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왔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사람은 방법을 찾아내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사람은 구실을 찾아낸다고 했습니다.

서태후처럼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이화원 곤명호에 배를 띄워도 처음에는 해군이라 하고 띄웠습니다.

그곳에서 하는 뱃놀이도 해군의 훈련이었습니다.

좌우지간, 방법이든 구실이든 찾는 사람에게 기회가 있는 겁니다.

아무것도 찾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