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원 위란탕(玉瀾堂 : 옥란당)에는 아픈 이야기가 있네요.

2012. 1. 16. 08:00중국 여행기/베이징(北京)

호수를 따라 걷습니다.

이화원은 바삐 구경하고 가는 곳이 아니라 천천히 산책하듯 즐기며 걸어야 하는 곳인가 봅니다.

물론, 많은 사람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갈지라도 여유롭게 돌아봐야 할 곳입니다.

아까 내려왔던 호숫가를 따라 북으로 올라가면 치열한 암투와 생존경쟁을 했다

건물이 많은 곳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우리 한국인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서 뭐든 제시간에 일을 마쳐야 하기에 핏속으로 흐르는

빨리빨리의 정신 때문에 여행도 빨리빨리 진행하게 됩니다.

 이제는 우리도 먹고살만하니 조금 더 여유롭고 느리게 여행하는 것은 어떻겠어요?

이제는 보릿고개라는 말도 없는 세상이 되었잖아요.

 

제일 먼저 위란탕(玉瀾堂 : 옥란당)이라는 곳으로 들어가 보렵니다.

이 집은 삼합원 양식으로 지어진 곳입니다.

한때 서태후에 맞서려던 광서제가 권력다툼에 패하고 서태후에 의해

10년간 유폐되었던 곳입니다.

젠장... 황제가 황제처럼 살지 못하고 금수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서태후에 물어보니 광서제가 몸이 약해 보호하고 있었다 하네요.

오호라~ 자희태후라 이름처럼 자상하기도 하여라~

국운이 걸린 마지막 개혁을 주도하다 실패한 황제를 외부와 차단하려고 두꺼운 벽돌로

외벽까지 쌓아 감시했다고 하니 살아 황제라 한들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요?

차라리 유기견이 되어 자유롭게 살아가는 게 더 행복했을는지 모르겠어요. 

 

여름에는 이곳에 그리고, 겨울에는 중남해를 옮겨 다니며 생활했던 광서제는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요?

10년간을 이런 생활을 하고 나니 서태후도 나이가 있어 이제 더 오래 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서테후는 사후가 심히 걱정됩니다.

 

가장 자신이 괴롭힌 인물이 바로 광서제인데 자기가 죽고 나면 틀림없이 권력의 전면에

광서제가 뜰 것이고 지금까지 자기가 한 모든 정치행위를 부정하고 자신에 대한 어떤 짓도

서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니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자다가도 혹시 '부관참시'라는 생각이 들면 잠이 화~아아아악 깨며 등에 식을 땀이 흐르지요.

 

죽음을 앞두고도 서태후는 이런 나쁜 생각을 한 여인이었습니다.

결국, 서태후가 죽기 바로 전날 광서제는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맙니다.

전생에 무슨 악연이 이 두 사람 사이에 있었기에 이렇게 황천길도 하루 사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갔을까요?

황천길에 동무나 하며 가려고 그랬나요?

 

38살의 젊은 오빠였던 광서제는 서태후의 서방이었던 함풍제의 동생과 자기 여동생이

혼인해 낳은 조카였습니다.

어찌 조카를 평생 이렇게 가혹하게 다루었을까요?

조카를 하루 먼저 앞세우고 북망산으로 갔어야만 했나요?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나니 마지막 황제라고 알려진 비운의 황제 푸이가 황제 자리에

오르니 이제 대청이라는 나라가 거의 종착역에 도착합니다.

 

옥란당은 건륭제가 처음에 지을 때는 사방에서 들어올 수 있도록 지었습니다.

함풍 1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불살라졌고 광서 12년에 재건하며 광서제의 침궁으로 이용된

곳이며 광서 24년 1898년 9월 16일 이곳에서 당시 병권을 장악한 위안스카이를 만나 유신 변법을

지지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러자고 한 위안스카이가 변심을 하여 서태후에 밀고함으로 무술변번이

실패하고 서태후는 이곳을 봉쇄하라 명령하니 이곳은 광서제의 창살 없는 감옥이 된

아픈 이야기가 있는 곳입니다. 

 

사합원 건물로 옥란당 동쪽에 있는 동난각은 유폐 중이던 광서제가 수라를 들던 곳이고

서난각은 황제의 침실이었습니다.

옥란당 옆의 작은 건물인 의운관(宜芸館)은 광서제만큼이나 불행했던 황후의 거처였답니다.

황제에게 시집간다고 모두가 부러워했지만, 황제도 이런 황제는 필부만도 못한 사내였습니다.

황제에 훨씬 미치지 못한 佳人에 시집온 울 마눌님도 이점에 대하여는 확실히 인정합니다.

 

맞아요.

필부라도 능력 있는 신랑 만나면 백수도 되지 못하고 은퇴 후에도 일을 한다고 아침부터

와이셔츠 다려 입혀야죠?

저녁에는 밤늦게 술에 절어 들어온 신랑 보살펴야죠?

이거 여자로는 환장할 노릇입니다.

평생을 뒤 바래질 하고 쉴 나이가 되니 또 능력 있다고 다른 곳에서 퇴직하면 바로 출근하랍니다.

 

이때부터는 더 바빠집니다.

딸년 시집만 보내면 세상이 편해지는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집간 딸년은 왜 또 아이까지 봐달라고 합니까?

아니 딸년이 자기 어렸을 때 저 혼자 스스로 보기라도 했답니까?

딸년 키울 때 혼자 울면서 키웠어요.

출산 후 바로 찬물에 손 담그면 안 된다 했지만, 어디 바쁜데 찬물 더운물 가렸나요.

 

그때 산후조리 잘못해 지금도 손목이 시큰거리고 밤에 자려면 저려옵니다.

남몰래 흘린 눈물로 베개를 흥건히 적셔도 알아주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미련 곰탱이 신랑은 술에 곯아떨어져 코까지 드르렁거리며 자는 데..

아~ 동지섣달 겨울밤은 왜 이리도 길단 말입니까?

 

그리고... 봐 주면 수고비라도 두둑이 챙겨줘야 하는데 김치며 장까지

담가달라고 하니 이게 부모입니까?

아니면 가정부입니까?

이렇게 아이 키워주면 일 년에 한 번 베이징 관광이라도 다녀오시라

봉투라도 주면 어디 덧납니까?

그래야 이화원에 구경 가 광서제도 만나고 서태후 얼굴이라도 한 번 더 쳐다보고 오지요.  

그러나 애가 얼굴에 작은 상처라도 나면 갑자기 딸년은 처키 인형처럼 변하여

죄인 다루듯 애미를 심문합니다.

자술서를 쓰고 자인한다고 해도 다그칩니다.

 

사위 놈은 또 어떻습니까?

손 달린 아이가 자기 손톱으로 얼굴에 작은 생채기 정도인데 도끼눈을 뜨고

마치 평생 마음에 안고 갈 상처라고 호들갑 떱니다.

아이 봐 준 일은 하나도 없고 바로 죄인이 됩니다.

다음 아이부터는 각서라도 받고 봐줘야 할 겁니다.

아니요. 아이 봐준 공은 춘삼월 봄 눈 녹듯 사라지고 죄인으로 남는데

다음부터는 안 봐줄 겁니다.

 

세상에 똑똑한 신랑 만났다고 으스대며 지금까지 살았는데 편안해져야 할 시기가 왔는데

늘그막에 두 배로 더 바쁘니 이게 환장할 노릇이 아니겠어요? 

많이 무능한 佳人 같은 신랑 만나니 이렇게 완벽한 백수가 되어 마눌님 손잡고 주유천하 하지요.

이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반백은 어림도 없는 노릇이고 완백이 되어야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렇지요? 마눌님?

 

아들이 장가도 가지 않았기에 봐줄 손자도 없고 한 달 이상 집을 비우고 여행을 떠나며

너희 밥은 너희가 알아서 먹든지... 말든지....

푸 하하하 마눌님!

내 말이 맞지요?

적당히 무능한 남편이 노후에 오히려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그래도 여행 다녀와 점검하면 빨래도 세탁기에 돌리며 출근했더라고요.

 

의운이란 말은 책을 수장한다는 의미라 하네요.

건륭 15년에 지었고 의운관 양쪽에는 기둥이 각각 다섯 개가 있는 곁채가 있으며

동쪽에 있는 건물은 도존재이고 서쪽은 근서헌이라네요.

 

물론 함풍 10년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불타버렸으나 광서 12년에 다시 지어

그 후부터는 광서제의 황후가 살았던 곳입니다.

황후라도 서방이 변변치 못하면 누구 하나 기억해 주지 않습니다.

 

황후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찌 살았나요?"

"광서제와 Me too~"랍니다.

 

"아니? 이곳은 책을 수장한 곳이라고 하던데요?"

"얼어 죽을 책은 무슨 책입니까?"

 

"권력이란 한 번 밀려버리면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끈 떨어진 권력에 시집온 황후도 역시 개털입니다."

 

"그렇군요? 개털이시군요?"

그러니 신랑 잘못 만나 황후도 이곳에 갇혀 살았다는 말이 되네요.

 

세상은 참 냉정합니다.

아무리 곤룡포 입고 번쩍이는 황금으로 치장해도 끈 떨어진 황제는

유기견만 못한 게 맞는 말인가 봅니다.

오죽했으면, 카다피도 하수구로 몸을 숨기다 죽었을까요?

 

오늘 돌아본 옥란당과 의운관의 위치를 알아봅니다.

광서제의 아픔이 있는 옥란당은 바로 인수전 뒤에 있어 언제나 서태후가

감시할 수 있어 좋습니다.

그 왼편은 바로 호수와 접해있잖아요.

그리고 의운관은 인수전 옆에 있습니다.

내일은 제일 위에 있는 낙수당부터 돌아보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탐욕이란 일체를 얻고자 욕심내어서

도리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또 무엇인가?

세상은 언제나 그대로이고 나는 다만,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안개 같은 존재인 걸...

욕심을 부려 얻는다 하더라도 한 줌 작은 손에는 한 되의 쌀도 모두 담을 수 없는 것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