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원의 인수전과 문창원

2012. 1. 13. 08:00중국 여행기/베이징(北京)

이제 이화원으로 들어가 보렵니다.

시내버스 종점에 내리면 바로 앞에 위의 사진처럼 파이러우(牌樓 : 패루)가 보입니다.

지금까지 보아온 패루 중 아름답게 꾸민 것으로는 으뜸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크기도 크고 아름답습니다.

이화원은 처음에 청의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합니다.

이 의미는 물놀이하는 곳이라는 의미라 하네요.

 

원래 파이러우(牌樓 : 패루)는 원림의 입구에 세우는 표식이랍니다.

이화원 동궁문 앞에 세운 대패루는 그 크기와 화려함에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다만,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청조가 사라지는 순간부터 누가 보수하지 않아

흉물스럽게 변해간다는 것이지요.

이미 대패루는 기울기 시작해 버팀목을 세우지 않았으면 벌써 쓰러졌을 겁니다.

이런 것도 귀중한 문화재가 아닐까요?

아무리 왕조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중국을 만들었다지만, 이렇게까지 박대할 이유가 있을까요?

 

용과 봉황이 정교하게 조각된 대패루는 정면에는 호수의 물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함허(涵虛)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오늘도 수만 명의 관광객이 밀어닥쳐 입장료 수입으로 군함 몇 척을 살 수 있지만,

중국 정부는 돈만 세나요?

 

전혀 보수하지 않고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단지, 버팀 기둥만 세워놓았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재 보호 수준이 겨우 이 정도였나요?

뭐... 사실 이화원을 보기 위해 사람이 오지 대패루를 보기 위해 오는 것은 아니죠.

 

뒷면에는 엄수(罨秀)라고 만수산을 암시적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그러니 앞에 호수 파서 뒤에 산을 만들었다는 말인가요?

도대체 대패루 앞과 뒤에 쓴 이 말이 서로 관계를 맺어야 할 듯한데...

 

이제 문표를 사서 동궁먼(東宮門 : 동궁문) 안으로 들어갑니다.

입장료 60원으로 또 할인되지 않습니다.

통표가 60원이었는데 사실 통표를 살 필요가 없더군요.

안에 들어가 보고 싶은 곳은 따로 돈을 내고 들어가는 게 유리할 겁니다.

그러면 본전 생각이 나서 아주 천천히 자세히 돌아다니며 보렵니다.

동궁문은 이화원의 동쪽 정문입니다.

베이징 시내에서 오게 되면 대부분 이 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예전에는 이 문은 황제나 황후만 드나들었기에 어로(御路)라 하여 다른 사람은

가까이하지 못하였지만, 지금은 문표만 사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문 위에 걸린 편액에 쓴 이화원이라는 글은 청나라 광서제가 썼다고 합니다.

광서제는 서태후에 밀려 유배생활을 오래 하며 글만 썼나 봅니다.

 

광서제가 누굽니까?

서태후의 조카이며 함풍제의 조카이기도 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서태후에게 권력을 모두 빼앗기고 바지저고리 황제로 지내며 사랑했던 여인인 진비마저

서태후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정도로 불쌍하게 생을 마친 비운의 황제였지요.

특히 문짝 위에 가로로 배열된 아홉 줄의 도금된 구리 못은 최고 권위의

황권을 상징하는 것이라 합니다.

아홉이라는 숫자는 황제의 권위이지요.

 

그러나 황제란 이렇게 현판에 박힌 구리 못보다도 못한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담장에 용을 그렸지만, 광서제라는 황제란 바로 담벼락에 바짝 엎드린 박제된 용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기회는 있었지요.

위안스카이가 변절하며 그 꿈이 사라져 버렸지만...

위안스카이는 우리 고종황제를 알현하며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후레자식입니다.

공자가.. 맹자가...

아무리 예를 중시하고 효를 중시하며 가르쳤지만, 다 쓸데없는 이야기입니다.

 

동궁문을 통하여 들어가면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 런서우덴(仁壽殿 : 인수전)입니다.

원래는 근정전이었다고 합니다.

황제가 이곳 행궁에 머물 때 정사를 보았던 곳이라네요.

그러나 광서제가 이곳에 유폐된 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인수전은 이화원의 여러 곳 중 주로 정치활동을 한 곳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앞에 버티고 있는 황제를 상징하는 고동보정(古銅寶鼎)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쓰다듬어 반질거립니다.

 

인수전은 1860년 화재로 소실된 후 다시 지으며 기분이 나빠 이름을 바꾸었다 합니다.

그날이 바로 서태후의 회갑 날이었다 하네요.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는 의미인가요?

그래서 서태후는 오래 살았나 봅니다.

 

이곳에서 서태후가 국사를 논하고 정무를 보았던 곳이라나요?

수협인부라고 쓴 편액 아래에는 옥좌도 아니고 화려한 의자도 아닌 그냥 소파 같은 의자가

놓여 있는데 어질고 오래 사시라고 인수전이라 개명했나요?

전혀 어질지 못하고 욕만 많이 먹었기에 오래 살지는 않았나요?

뭐... 욕이 배 째고 들어갑니까?

논어에 나오는 말인 인자수(仁者壽)에서 인용했다 하며

어진 사람이 오래 산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래 살아야 합니다.

 

청동으로 만든 용과 봉황 기린은 만수무강하라는 의미이며 이름도 인수전으로 하고

인수전 앞에 있는 네 마리의 길상(吉祥)들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그리고 인수문 양 앞에 있는 원숭이 모양과 돼지 모양인 두 개의 태호석이 있는데

이는 손오공과 저팔계를 의미하며 황제를 보호한다는 의미라 하네요.

 

앞에 놓인 용과 봉황은 황제와 황후를 의미하겠지만, 용은 앞발을 한 발 들고 서 있고 봉황은

두 발로 단단히 서 있으니 마치 황제인 광서제는 불안한 생활을 했음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어진 정치를 베풀면 오래 산다는 의미이기에...

그럼 서태후가 오래 살았으니 무척 어진 정치를 베풀었나 봅니다.

 

양옆으로 배전이 설치되어 있어 신하들이 이곳에 모여 국사를 논의하고

황제의 부르심에 대기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합니다.

우리 부부는 이제 왼쪽으로 빠져나갑니다.

우선 왼쪽에 있는 다리를 보고 다시 이곳으로 와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호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문창각이라는 성관(城關)이 보이고 바로 오른쪽에 섬이 하나

있는데 그 섬 안에 즈춘팅(知春亭 : 지춘정)이라 부르는 정자가 있습니다.

쿤밍후 동쪽 작은 섬에 세워진 정자로 '봄 강물의 따스함은 오리가 제일 먼저

안다(春江水暖鴨先知 : 춘강수난압선지)'라는 옛말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인데

사방으로 탁 트인 쿤밍후의 시원스러운 전경이 일품으로 꼽힙니다.

춘강수난압선지(春江水暖鴨先知)라고 했나요?

사실 오리는 한겨울에도 추위를 느끼지 못합니다.

오리는 패딩도 아니고 늘 최고급 오리털 점퍼를 입고 맨발로 다니지

부츠 신고 다니는 오리 보신 적이 있나요?

 

이름처럼 이곳은 이화원에서 가장 먼저 봄이 찾아오는 곳으로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정자 주변에

연녹색 새순과 붉은 도화 꽃이 제일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을 알려 준다고 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니 이렇게 같은 호수에 있는 곳 중에 제일 먼저 봄을 알아채는 곳도 있네요.

지금은 가을이라 확인할 수 없어요.

이른 봄에 가신 분은 이곳에 꼭 들려 봄이 제일 먼저 찾아오는지 확인 좀 해 주세요.

 

호수를 끼고 남쪽으로 걸어가면 문창각이라는 건물이 보입니다.

문창각은 이화원 내에 있는 6개의 성관(城關) 중 최고의 규모를 자랑한다 합니다. 

2층으로 안에는 동으로 만든 문창제군 외에 여러 신을 모셨답니다.

 

문창제군은 주로 문관을 대표하는 신으로 만수산 서쪽에 있는 무성을 모신 숙운첨과 함께

'문무 보필'을 의미한다 하겠네요.

문창각을 들어가기 전에 왼편을 보면 문이 하나 있습니다.

통표를 구매했으면 들어가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중국 고전 원림 중 최대 규모라 하네요.

또한 주로 왕자들의 교육을 담당한 곳이라 할 수 있다네요.

6개의 홀이 있어 지금은 궁궐에서 사용했던 옥기, 자기, 동기 등과 그림 등

각종 황가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들어가며 오른쪽 건물은 황손이 공부하는 서재(書齋)가 있습니다.

그동안 공부를 게을리 한 佳人 입장에서는 이곳이 크게 볼 것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통표보다는 그냥 일반 문표만 끊고 이화원에 들어가 불향각 하나만 따로 돈을 내고 들어가는 게

더 유리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중국을 다니다 보면 무척 큰 붓에 물을 묻혀 석판에 붓글씨를 쓰는 사람을 본 적이 많습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과 차별화 전략으로 양손으로 글씨를 써내려 가는군요.

중국어는 워낙 어렵기에 글을 잘 쓰는 일로도 대접을 받는 나라잖아요.

신중국이 탄생하기 전에는 80%가 문맹이었다고 하니

중국의 한자는 어려운 글자임에 분명합니다.

 

오늘 돌아본 곳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그러나 이것만은 꼭 기억하고 갑시다.

일찍 핀 꽃이 먼저 지는 법입니다.

남보다 먼저 공을 세우고 출세하려 하지 맙시다.

먼저 앞서 가면 먼저 지는 법입니다.

먼저 봄을 알리고 먼저 핀 꽃은 먼저 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늦게라도 피어야 하는데 佳人은 지금도 피지 못하고 나이만 먹은 고목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