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그렇게 살았다는데...

2012. 7. 7. 08:00중국 여행기/하남성(河南省)

이제 카이펑에서 개봉부를 보았고 하남성의 삼총사인 뤄양, 정저우 그리고 카이펑을 지나며

여행이 막바지로 이르자 구경도 적당히 그리고 이야기도 적당히 대강하며 지나가게 되네요.

여행도 이렇게 끝날 때가 되어가면 듣는 분도 이야기하는 사람도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지지요.

 

이렇게 오래도록 글을 쓰는 佳人도 지루한데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얼마나 지루하실까요? 

이제 이곳을 떠나 산동성에 있는 취푸(曲阜 : 곡부)로 올라가 마지막으로

만세사표라는 공자나 만나야겠어요.

여행이 거의 끝나가니 너무 지루하시죠?

 

산동성으로 넘어가며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옛날, 힘의 논리가 지배할 당시는 중국처럼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는 주변의

작은 나라와 교역을 할 때 일반적인 무역 외에 조공이라는 게 있었잖아요. 

그런데 조공문화를 약소국에서는 무척 수치로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중국의 일부 역사학자나 배운 사람은 최근에 중국으로 불어오는

작은 나라의 한류 자체를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그 저변에는 예전에 조공이나 바치던 나라의 문화에 문명국이었던 중국이

환호하는 일이 비위에 거슬린다는 생각이겠지요.

사실 중국의 시골 마을로 다니다 보면 중국의 젊은이들로부터

한류의 힘이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조공에 대한 부끄러운 생각은 주변에 워낙 덩치 큰 나라가 있었기에

우리 국민들조차 그런 생각을 하곤 하잖아요.

사실 힘의 균형에서 어쩔 수 없는 궁여지책이 조공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조공이란 힘의 역학관계에서 센 놈은 자기 과시를 하고 싶고 약한 놈은 눈치를 봐야 하기에

나온 방법이 아닌가요?

부정하고 싶지만, 그게 현실이었으니까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게 아니겠어요?

지금 위구르 족이나 티베탄의 슬픔을 보면 분명한 사실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이게 무슨 학교 폭력도 아니고 힘센 놈이 두드리며 가져오라 하면 약한 아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엔 없습니다.

힘센 놈이 팬다고 하면 그놈에게 잘 보여야 맞지 않고 살아가잖아요.

학교 폭력은 잘못된 것이라 누구나 말하지만, 국가 간의 역학관계는 쉽게 풀어가기 어렵습니다.

아시아의 일진이라는 불량서클의 짱이 바로 중국이었으니까요.

중국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인구 때문입니다.

물론, 제일 미련한 방법이었지만, 그게 당시로는 대책도 없는 절대 힘이었으니까요.

 

당시에 군사 숫자가 많으면 대국이라고 했잖아요.

사실 군사로 힘을 따진다면 깡패의 생각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국이라는 나라는 아직도 그때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요즈음에도 목에 힘을 주더군요.

그게 어거지고 바보스러운 생각일지라도 구태를 버리지 못하더군요.

 

그러나 조공이라는 것도 돌이켜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수치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으며 작은 나라에서 큰 나라에 가지고 가는 물품은 사실 보잘것없는 게 대부분입니다.

대부분 지금으로 말하는 1차산업 제품이지요.

 

그러나 중국이라는 큰 나라에서는 찾아온 사신에게 융숭한 대접과 돌아갈 때

돌려보내는 선물은 호화롭고 그 양도 어마어마하여 작은 나라에서는 밑지는 장사가 분명 아닌

남는 장사가 틀림없습니다.

그놈의 체면이 무엔지 말입니다.

물론 어느 시대나 그렇게 융숭한 대접을 하며 보낸 것은 아니겠지만...

 

큰 나라는 대국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사절로 온 작은 나라에 바리바리 싸서 보내듯

그렇게 보내야 합니다.

그러니 그놈의 체면이 무엔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먹여주고

말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싸서 보냈습니다.

물론 아닌 나라도 있었겠지만...

더군다나 기술적인 문제도 배우고 문화도 배우고 사상이나 친교까지 쌓을 수 있으니

조공이라는 것은 하나의 교역이고 문화의 교류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지금과 같은 국가 간 무역 시스템이 없었기에

바로 조공이라는 형식을 빌려 무역을 했던 겁니다.

그러니 물물교환이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초기 단계의 국제교역인 셈이지요.

 

중국의 지정학적인 위치는 우리에게는 바로 서구나 인도 등의 문화가 거쳐오는

정류장이었을 겁니다.

서구의 문명은 대부분 중국을 통해 주변국으로 파급된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미 2천 년 전에도 진나라 때 유럽 사람이 중국 땅에 들어와 살았다고 하니 말입니다.

조공무역이라고 주눅이 들 필요도 없고 부끄럽게 생각할 이유도 없습니다.

중원의 문화도 사실은 대부분 주변의 문화가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고

인도나 유럽으로부터 들어온 문화가 아니겠어요?

 

사실 우리나라에 전파된 불교문화나 서구의 모든 문명과 이야기가

대부분 이런 사신이나 함께 따라온 장사하는 사람으로부터 전해졌으며

그게 우리 실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었잖아요.

원래 세상의 역사를 보면 이렇게 강하고 큰 나라에서 작은 나라로 문물이나 문화가

전달되었고 이 또한 옛날 무역의 한 방편이었으니까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일은 진리입니다.

 

지금이라고 뭐가 다릅니까?

우리가 기름이 나지 않기에 원유가 생산되는 나라에 비위를 맞추며 때로는

아양도 떨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게 산유국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단지 기름의 수급을 차질 없이 하기 위한 아양이지요.

우리가 어렵던 시절에 어부가 잡은 수산물을 가공도 제대로 못하고 수출하였으며,

심지어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어 수출하며 미국의 앞선 문명과 제품을

수입하기도 했던 적이 있었잖아요.

이렇게 번 돈으로 기술을 연마하고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

오히려 어마어마한 배도 만들어 팔고 첨단 전자제품도 만들어 팔지만...

 

재미있는 일은 당나라 시절에는 이웃 나라에서 오는 사신은 국경을 넘는 순간부터

모든 경비를 당나라에서 부담했다고 하네요.

그 이유는 당나라는 당시 아시아에서는 가장 번성한 나라였고

그걸 자랑질하려고 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게 바로 체면이라는 것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작은 나라에서 사신으로 따라와 그냥 눌러앉아 무위도식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답니다.

덜수처럼 말입니다.

국경을 넘는 순간부터 사신에 대한 모든 경비는 당나라에서 제공하다 보니

의식주가 모두 해결되니 뭐가 걱정입니까?

게다가 나긋나긋한 중원의 샤오지에라도 만나 결혼이라도 하여 함께 살아간다면

북풍한설 몰아치고 장독대가 쩍쩍 갈라지는 겨울이 계속되는 북방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잖아요.

그냥 포근하고 따뜻하고 뽀얀 살 냄새에 코~하고 묻혀 세월 가는지 모르게 살고 싶었을 겁니다.

 

한족의 시작이라는 유방이 세운 한나라도 북쪽의 오랑캐라 비하했던 흉노에

늘 두려움을 느끼고 제발 공격하지 말라고 중원에서 생산한 귀한 물건으로 조공을 바치고

심지어 매년 아름다운 뽀얀 피부의 미녀까지 바쳤던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한족의 시작이라는 중국의 한나라도 조공으로부터 시작한 아픈 기억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감추고 싶은 기억이지만 분명한 일이 아닙니까?

한고조는 흉노의 선우를 형으로 모신 형제의 맹약을 맺기까지 했잖아요. 

 

우리는 이 이야기를 원제가 중국이 자랑했던 사대 미녀 중 하나인 왕소군 보냈다는

역사를 통하여서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원제가 얼마나 열 받았으면 뇌물을 받고 엉터리 그림을 그려 보고한 황실 전용 화공인

모연수에게 책임을 물어 참형했다잖아요. 

당시 흉노가 얼마나 강대했으면 지금도 우리가 쓰는 말인 "민심이 흉흉하다."라는

말이 생겼을까요?

흉흉이라는 이 말의 의미는 바로 흉노라고 지칭했던 민족에 대한 두려움의 표시입니다.

흉노가 준동하는 말이 살찌는 가을만 오면 중원의 나라는 식겁의 계절이 시작되는 겁니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란 중윈에서는 두려움의 계절이었습니다.

 

지금도 사실 국제정세로 볼 때 큰 나라와 작은 나라 사이에 방법만 조금 달라졌지

과거의 조공무역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지금은 국가 간의 교역이 정확한 셈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밖에 차이 나는 게 무엇입니까?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고 으스댈 일도 아닙니다.

조공이란 바로 국제무역의 한 가지였다고 생각됩니다.

세상의 어느 나라나 다 그런 시절이 있었잖아요.

 

지금도 땅속에서 뽑아낸 시커먼 원유 팔아 다른 나라로부터 앞선 기술로 만든 전자제품에

자동차를 수입하는 중동국가를 보면 오히려 더 큰소리치고 살더군요.

사실, 사막에 일정한 거처조차 없이 돌아다니며 살던 그런 부족이 지금은 왕족이라

으스대고 기름 팔아 부자나라가 되었잖아요.  

세상은 그렇게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되듯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앞으로 얼마 후 기름도 떨어지면 그 후에는 중동국가들은 어떻게 살아갈까요?

 

손바닥만 한 나라가 큰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중국도 그런 소국에 머리 조아리며

기름을 구걸하다시피 사오잖아요.

지금 중국도 이런 원유와 광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까지 날아가

학교도 지어주고 병원도 먼저 무상으로 지어주며 아양까지 떨어가며 과거 대국으로 살았다

자존심마저 모두 버리고 자원외교를 다니고 있는 겁니다.

 

가까이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 얽히는 게 많다는 의미고 또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까

부딪히는 건 또 왜 그리 많습니까?

그래도 지리적인 것 때문에 피할 수 없다면 그래도 함께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게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옛날에 폼 잡던 생각이나 하고 자빠진 그런 사람이 중국에는 많다는 점이지요.

그런 사람이 어디 중국 뿐인가요?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생각에 민족이 다르면 다른 나라라 생각하고 살지만,

여러 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나라에서는 민족이라는 게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점이겠지요.

그러니 아직 고유한 민족정신을 잇고자 하는 곳에서는 여태껏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다만, 그런 다민족 국가가 국가의 명예에만 집착하여 주변에 있는 나라를 인정하지 않고

독선적으로 나아갈 때 서로 간 불편한 문제만 생기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하나의 민족으로만 이루어진 나라가 아닙니다.

이미 결혼자의 10%가 외국인과의 결혼이고 그들이 낳은 2세는 이미 10%를 넘어서

 우리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점차 얼굴 생김새가 약간은 다르고 피부색도 다른 이웃이 점점 많아진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혼혈은 군대에도 가지 못했지만, 이제부터는 바뀌지 않겠어요?

 

잠시 옛날로 돌아가 중국에 대하여 혼자만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였네요.

여행이란 이렇게 돌아다니며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佳人의 이런 생각이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됩니다.

이제 중국 여행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습니다.

내일은 카이펑에서 공자의 고향인 취푸로 가는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 부부의 여행은 딱히 주제가 없습니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바람 따라다니는 중입니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라입니다.

지정학상으로도 그렇고 문화적으로라도 영원히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과거는 과거이고 우리는 미래를 보아야 하지 않겠어요?

너무 과거에 얽매이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과거가 없는 미래 또한 없는 일이잖아요.

이게 다 지정학적으로 가까이 있기에 서로 인정하고 이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