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도지죄(餘桃之罪)

2024. 4. 3. 04:00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佳人의 이런 저런 그런 이야기

 

이제 4월이 오니 복숭아꽃이 필 시기가 도래했네요.

그래서 오늘은 복숭아와 연관된 이야기인 여도지죄(餘桃之罪)라는 말을 할까 합니다.

이 말은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죄’라는 뜻으로 애증지변(愛憎之變)이라고도 하며

같은 행동일지라도 사랑을 받을 때와 미움을 받을 때가 동전의 양면처럼 상대 입장에서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라고 하지요.

 

 

이 이야기는 한비자(韓非子)가 쓴 유세(遊說) 지침서 ‘세난(說難)’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국시대의 위(衛) 나라에 미자하(彌子瑕)라는 미동(美童)이 있었답니다.

너무 잘 생겨서 위나라 임금 영공의 총애를 받았다는데 영공이 부인을 멀리하고 미자하를

가까이할 정도였다고 하며 벼슬은 폐대부(嬖大夫)에 올랐다는데 폐(嬖:사랑할 폐)는

폐신(嬖臣), 폐첩(嬖妾) 등과 같이 아첨을 잘하여 총애를 받는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미자하는 어느 날 과수원에서 임금과 산책하다 복숭아를 하나 따서 한 입 베어 먹다가

너무 맛있자 자신이 먹던 복숭아를 임금에게 드렸답니다.

이런 행동은 불경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 중대한 일로 신하들은 그동안 임금의 총애를

독차지했던 미자하를 눈엣가시로 여겼기에 이번에야 말로 미자하의 죄를 물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답니다.

 

 

하지만 임금은 오히려 “나를 사랑함이 지극하구나. 자신이 큰 죄를 짓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맛있었으면 자신이 다 먹지 않고 나에게 주다니...”라며

오히려 흐뭇해했다고 하네요.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어느 날 한 밤중에 미자하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미자하는

급한 김에 임금의 수레를 타고 궁궐을 빠져나와 어머니 병을 간호하고 돌아왔다고 하네요.
당시 위나라 국법에 따르면 국왕의 수레를 함부로 쓰면 '월형(刖刑)'이라는 형벌을

받게 되는데 월형은 발뒤꿈치를 잘라내는 신체 절단 형벌로, 한마디로 말해서

아킬레스건 주변을 통째로 잘라 평생 장애인으로 살게 하는 무서운 벌이라고 하네요.

 

 

신하들은 미자하의 행동이 임금에 대한 불충 죄가 너무 크다며 나랏법에 따라 엄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에도 임금은 죄를 묻기는커녕 “효성스럽도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에 허락 없이 내 수레를 타고 가면 발목이 잘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레를 타고

가다니...”라며 오히려 미자하를 칭찬했다고 하네요.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용모가 시들자 임금의 총애도 점점 식어갔으며 그러던 어느 날

미자하가 사소한 죄를 짓자 임금이 호통 치며 “네 이놈, 너는 전날 허락도 없이

내 수레를 함부로 훔쳐 탔고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내게 주었던 놈 아니냐.

고얀 놈이로구나!”라며 중한 벌을 내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바로 여도지죄(餘桃之罪)라고 합니다.

‘먹다 남은 복숭아(餘桃)를 임금에게 준 죄’라는 뜻이지요.

눈에 쓰인 콩깍지가 벗겨지면 어떻게 되는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지요.

 

 

미자하의 행동은 변함이 없었으나, 바뀐 것은 권력자인 임금의 마음이었습니다.

신하가 왕으로부터 사랑받을 때는 그 모든 것이 맘에 들 것이나 미워하게 될 때는

모든 것이 버림의 대상이다.
이게 어디 군신 간에만 생기는 일이겠어요?

우리가 사는 동안에도 같은 이론이 성립되잖아요.

 

 

한비자는 이 고사를 평하기를 “미자하의 행동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가?

변한 것은 군주의 마음이다.

예쁠 때는 뭔 짓을 해도 예쁘지만 눈 밖에 나면 그 행동이 다 미워지는 법이니

무슨 말을 할 때는 군주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상황 봐 가면서 해야 할 것”이라 했다네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의 마음이 변하면 예전의 일과 같은

일일지라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완전히 달라지게 되지요.

 

 

먹다 남은 복숭아도 그럴진대 그런데 먹다 남은 애플은 어찌된 일일까요?

세상을 평정하고 승승장구하고 있네요.

이 또한 소비자의 사랑이 식으면 사라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