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이야기 3 - 부차 드디어 서시에 빠지다.

2009. 8. 25. 07:39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여인 열전

 

원래 여인을 맞이할 때는 필부일지라도 길일을 잡아 머리를 올려주는 게 기본 예의인데

부차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도 못했습니다. 이유야 뻔하지요.

적당히 어전 회의를 마치고 바로 서시의 숙소로 달려갑니다. 

이렇게 급한 부차에게 오자서가 붙잡고 이러쿵저러쿵 했으니

눈치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꿈같은 하룻밤을 지내자 부차는 완전히 서시의 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서시의 사랑의 노예가 됩니다.

온갖 교태와 뛰어난 기술과 현란한 몸짓과 노래하는 듯한 교성에

밤은 왜 이렇게 짧기만 합니까?

세상이 모두 잠든 밤... 부차는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제왕에게는 밤이나 낮이나 백성을 기쁘게 해 줄 의무가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부차를 호색한이라고 합니다만 그것은 부차의 잘못이 아니고

아버지인 합려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인자로 인해 곰의 허리와 지치지 않고 밤을

세워 일할 수 있는 말의 정기를 타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부차만 너무 탓하지 마세요. 화수분처럼 샘 솟는 욕망을 어쩌라고요.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리고 작은 부자는 본인이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지요?

체력도 그렇습니다.

 

아침 조회에 나가기도 싫습니다. 눈동자도 풀어졌습니다. 다리마저 왜 휘청거립니까?

아무리 타고난 곰의 허리와 말의 정기를 타고 난 체력도 오버하면 그리될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앉으나 서나 서시 생각, 뒤비 지나 물구나무서나 서시 생각....

온통 일을 하면서도 눈 앞에 서시만 아른거리는 겁니다.

게다가 서시가 하는 말은 우아하고 교양 있는 말만 골라서 하니

지금까지 이런 대화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마치 부차 자신의 삶의 질도 한층 업 그레이드 되는 것 같습니다.

서시가 그야말로 부차에게 기쁨 주고 칭찬받는 일만 골라서 합니다.

 

부차는 환장하겠습니다. 일도 하기 싫습니다. 종일 그녀와 함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데 서시와 단 둘이 몰디브라도 석 달 열흘 정도

푹 쉬었다 오고 싶습니다.

고사를 인용하며 하는 말은 부차 밑에서 함께 국사를 논의하는 모든 대신들보다 뛰어났고

합리적이고 게다가 조리 있게 하는 말은 어떤 자도 서시의 발뒤꿈치 때만도 못 합니다.

그래서 국사를 논의하는 일까지도 점차 서시의 말을 따라 처리할 정도입니다. 

 

이제부터는 서시가 없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서시의 말만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데 그냥 떡이 아니라 꿀을 듬뿍 묻힌 떡입니다.

화장실에 앉아 서시 생각을 해야만 응가가 제대로 나와 변비가 생기지 않고

잠자리에 누워 그녀의 향긋한 살 냄새에 취해야만 잠을 청할 수 있습니다.

부차는 "只 要 站 在 你 面 前 我 就 觉得 自己 很 渺 小...(그대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가?) 只要 站 在 你 背 面 禁不 住 热 泪 盈 满 眶(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드는가)"를 읊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랍니다.

 

 

하루는 서시가 스토커보다 더 따라다니는 부차에게 말합니다.

"폐하! 소첩을 총애하시는 마음은 알겠지만 이러시면 큰 일을 그르치십니다. 

폐하는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폐하를 이해하시는 사람들이야 폐하가 소첩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소첩을 매희나 달기 정도로 생각을 하실 겁니다.

이는 폐하나 저에게 모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와의 정사만 생각하지 마시고 나라의 정사를 돌보세요. 네?"

 

서시의 말 하나하나가 어디 이치에 어긋나고 틀린 구석이 한 마디라도 있습니까?

여불위가 많은 공을 들여 펴냈다는 '여씨춘추'라는 책이 있지요?

여불위는 많은 돈을 들여 책을 만들었고 그 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성문 앞에다가

책을 공개하며 만약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뺄 수 있는 자에게 천금을 내리겠다는 오만한

이야기인 일자천금(一字千金)일지라도 서시가 말하는 이야기에 비하면 허점 투성이입니다.

 

"오잉? 예쁜 것이 착하기까지? 서시! 그대를 만난 후부터 온통 짐의 마음에는 그대가

가득 들어와 있소. 짐이 누구요? 세상의 영웅이며 천하를 호령하고 있는 부차가 아니겠소?

그것은 사랑이 뭔지도 쥐뿔도 모르는 녀석들이나 지껄이는 말이오. 그러니 염려 붙들어 매시오!

지금 오나라는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소. 지금 그대와 사랑을 누리지 않으면 언제

즐길 수 있단 말이오. 영웅은 미인을 기다리지 않고 영웅이 미인을 취한다고 했소." 

부차는 이렇게 신종 플루보다 더 무서운 서시와의 사랑의 열병에 걸려 갑니다.  

 

"폐하! 진정 저를 사랑하신다면 제후국들을 다스려 진정한 소첩의 영웅이 되시옵소서."

"물론 과인에게도 챔피언 타이틀이 필요하나 아직 때가 아니오."

"폐하! 진정한 영웅은 눈이 녹기를 기다리지 않고 눈을 치우며 전진한답니다.

소첩의 생각으로는 지금이 천하를 얻을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되옵니다."

이것은 분명히 서시의 잘못된 비유입니다. 오나라와 월나라는 눈이 

거의 오지 않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월견폐설이라고 월나라 개가 눈이 오면 이상하게 생각하여 짖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설령 눈이 오더라도 내리면서 금방 녹아 눈 치울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럼 혹시 좋은 아이디어라도?"

 

서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거침없이 말을 이어갑니다.

"지금 한 번 천하의 구도를 살펴볼까요?" 구글 위성지도를 놓고 브리핑에 들어갑니다.

부차는 구글 지도를 보는 순간 뒤로 자빠질 뻔했습니다.

세상에 천하가 바로 서시가 펼쳐놓은 지도 속에 모두 들어있는 겁니다.

 

 

"우선 초나라와 진나라부터 분석 들어갑니다.

초나라는 지난번 전쟁에서 패한 후 아직 비틀거립니다.

진나라도 갈수록 허약해져 예전의 패자다운 맛이 없지요? 모두 허깨비들입니다.

오히려 그 나라의 민초들은 삶에 지쳐 새로운 영웅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영웅은 스스로 탄생하는 게 아니고 세상이 영웅을 원하기에 영웅이 나타나는 겁니다.

세상 일이란 이렇게 시기가 있고 타이밍이 맞아야 되는 겁니다.

세계 경제위기니 뭐니 하며 세상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떨고 있을 때 큰돈을

벌 수 있는 것이지 호황이라는 시기에는 그냥 먹고만 삽니다."

"그렇지 그렇고 말고." 지금까지 부차의 똘마니들 중에 세상의 세력구도를 놓고

이런 진지한 브리핑을 한 녀석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서시에 빠질 수밖에요.

 

그야말로 서시는 하늘이 부차에게 내린 속이 꽈악~찬 맞춤형 선물입니다.

게다가 포장도 얼마나 예쁜지....

그런데 대신들 중에는 속이 빈 과대포장도 있고 포장지만 그럴듯한 불량 제품도 있습니다.

물론 유효기간이 지난 녀석들도 있고요.

 

겨우 고사 몇 마디 달달 외워 그 범위만 넘어서면 얼굴이 벌게져 답변을

내일로 미루기도 합니다.

그 녀석들을 모두 일괄 사표를 받아 잘라버려 하루아침에 백수로 만들어버리고 싶습니다.

 

서시 하고만 대화를 나누면 이미 천하는 부차의 손아귀에 거의 들어온 듯합니다.

물론 이 대목에서 부차는 서시를 한 번 품에 안아줍니다. 왜요? 예쁘니까요.

아무리 함께 오래 살아왔더라도 배우자가 예쁘고 고마울 때 여러분도 한 번씩 안아주세요.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가끔은 행동으로도 보여주어야 합니다.

특히 여자에게는 필요합니다.

"왜 이러세요? 징그럽게~"라고 말하지만 부인은 돌아서서 미소를 짓습니다.

그리고 밥상에 오르는 반찬이 한층 업 그레이드 되기도 합니다.

 

어떻게 연약한 여자의 몸에서 어찌 천하를 논하고 미래를 예단하고 국가 간의

세력과 힘의 균형을 예측하고 남자들도 하기 어려운 전략전술을 거침없이 쏟아낸답니까?

서시의 브리핑은 내일도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