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랑에 싼 보자기를 받고 왕이된 아이

2009. 8. 15. 00:06동남아시아 여행기/베트남 종단 배낭여행

옛날 베트남에서는 마을에 잔치가 벌어지면 처녀가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물건을 던져

배우자를 택했다고 하는데 아직 이런 풍습은 북부 고산지대의 소수민족에게 남아있다.

그리고 신부집에다 빈랑을 싼 보자기를 보내고 신부집에서 빈랑을 싼 보자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혼사가 물 건너간 것이고 받아들여지면 결혼이 성립되는 풍습이 있었다.

 

베트남에서 리(李) 왕조가 사라지고 쩐(陳) 왕조가 시작되게 된 이야기...

바로 이런 풍습이 왕조까지도 바꾸는 일이 베트남에서는 있었다.

 

1164년 중국의 송나라는 다이 비엣(大越)의 왕에게 그때까지 사용하던 쟈오 찌 군의 왕

(交趾郡王)이라는 호칭을 버리고 아인 똥(英宗)을 안남 국왕(安南國王)에 봉한다.

이는 다이 비엣을 안남이라는 독립국으로 인정을 한다는 의미다.

흔히들 우리도 베트남을 안남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중국의 영향이다.

그러나 정작 베트남 사람들은 국명이나 지명으로도 안남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가 과거 보릿고개를 겪던 시절 안남미라고 하는 길쭉하게 생기고 찰기가 없는 쌀을

먹은 적이 있는데 이게 바로 월남에서 보낸 쌀이라는 안남미다.

 

아인 똥이 죽은 뒤 꺄오 똥(高宗)이 세 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니 나라는 점차 쇠퇴의 길을 걷는다.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후에 똥(惠宗)은 무능한 왕이었다.

학문은 물론 나랏일마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만사가 피곤한 왕이었다.

맞다. 사실 베트남은 너무 더워서 사람의 진을 빼기 때문에 피곤하긴 피곤하다.

당시 다이 비엣의 실권은 쩐 투 도(陳守度)에게 있었다.

 

그러다가 만사가 귀찮다고 1224년 후에 똥은 둘째 딸인 펏 낌(佛金)에게 왕위를 양위했다.

사실 양위한 게 아니고 쩐 투 도라는 실권자에 의하여 물러났고 절에 들어가 은둔하고

지내다가 자신을 살해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살하고 만다.

무능하고 게다가 나약하기까지.....

살해당하나 자살하나 죽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때 펏 낌의 나이가 겨우 일곱 살....

그래서 펏 낌은 졸지에 찌에우 호앙(昭皇)이 된다.

그러니까 그녀는 베트남 최초의 여왕인 셈이다.

 

쩐 투 도는 여덟 살 난 조카 쩐 카인을 찌에우 호앙의 놀이 친구로 들여보낸다.

어느 날 찌에우 호앙이 수건에 싼 빈랑을 쩐 카인에게 던졌다.

여덟 살짜리 코흘리개가 그게 뭔지 알고 던졌을까?

삼촌이 빈랑을 싼 보자기를 던지라고 손에 들려 들여보냈으니

얼떨결에 시키는 대로 던졌지....

 

그리고 일곱 살짜리 여왕은 소꿉친구가 던진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았을 것이고....

그러나 역사의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이 모습을 보고 배필이 정해졌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 쩐 카인은 얼떨결에 왕이 된 얼떨리우스인 셈이다.

나중에 쩐 왕조의 초대 왕인 타이 또(太祖)이 되어 21년간이나 다이 비엣을 다스렸다.

 

베트남의 왕들은 우리말로 종(宗)으로 끝나면 모두 똥인 셈이다.

대통령도 똥통이라고 하던가?

 

(빈랑 <檳榔>은 아열대 지방인 주로 동남아시아에 자라는 나무로 씹으면 환각작용이 있고

이빨이 검게 변하는 나무로 야자수와 비슷하다.

주로 한약재로 사용하나 민간인들은 담배와 비슷한 기호식품으로 과거에는

동남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은 무척 많이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대부분 국가에서

법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