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갖는다는 것....

2009. 5. 30. 00:03동남아시아 여행기/베트남 종단 배낭여행

오후 내내 초대받은 베트남 가정에서 빈둥거리며 놀다가 저녁이 되자 우리 부부는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숙소로 돌아오려는데 우리 부부가 무척 걱정되나 보다.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 나와 우리를 배웅하면 괜찮겠냐고 몇 번을 물어본다.

끝내는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그녀는 3년 전 한국을 떠날 때도 울 마눌님을 안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유난히도 눈물이 많은 베트남 여인....

 

친구를 갖는다는 일....

그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인생을 갖는 일과 같은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며 친구가 없다면 정말 삭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친구란 부부간에도 될 수 있고 외국인 여자도 될 수 있다.

 

"떠나는 님 보내오며 서러운 마음에 끝내는 눈물 흘리고 말았지요...

눈물 보이지 않으려고 돌아서서 소매로 슬며시 훔쳐버렸지요.

소매가 더러워질까 봐 그러는 게 아니라 맺은 정 끊어질까 두려워서 그러지요."

 

"그래요 그것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만남이 아니지요.....

당신의 마음속에 우리 부부가 있듯이 우리 마음속에 늘 당신이 함께 하지요.

당신이 우리를 기억하는 한 당신은 영원히 우리들 마음속에 함께 하지요.

 

내 마음의 텃밭이 하나 있어 그곳에 영원히 당신을 심고 가꾸어 나갈 거예요...."

만남은 이별을 예고하고 이별은 다시 만남을 약속한다.

그녀의 희망 중에 하나가 한국을 다시 오는 일이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찾고 17번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간다.

이미 날은 어두웠다.

 

버스를 타니 또 젊은이들이 자리를 양보한다.

이곳에서는 나이 든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이 아직 살아있다.

공자님이 계시니까....

문묘에 갔을 때 한국에 같이 가자고 말씀드렸더니 기다리고 계셨다는 듯이 따라나서시려고 하셨는데....

 

베트남 공자님은 한국 비자와 비행기 표를 사야 같이 가실 수 있는 것을 모르고 계셔서

그냥 계시라고 하길 잘했다.

한국 공자님은 베트남에 가실 때 15일간 무비자가 주어진다.

같은 공자님이라도 어느 나라 여권을 가지고 계시는가에 따라 비자 때문에 열 받으실 수 있다.

공자님이 세상의 지식을 다 아신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세상은 이렇게 빨리 변한다.

그래도 공자님은 세상의 지식을 반 밖에 모르신다고 문묘 앞에 있는 연못을 半池를 만드셨다.

겸손도 하셔라~~

그러면 佳人은?

반지 옆에 있는 모래란 말인가?

공자님~ 쓰신 김에 조금만 더 쓰시지....

 

7시경에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오니 공항이다.

거의 도착할 무렵 버스에는 승객도 없다.

 

8시에 공항에 도착하니 아직 보딩 카운터는 열리지 않았다.

1시간 동안 공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샅샅이 구경을 한다.

울 마눌님께서는 한국 단체 관광객을 만나 한참 수다를 떤다.

그것도 아주 유창한 한국말로....

 

이윽고 9시가 넘으니 카운터가 열린다.

그곳에서 인쇄된 티켓을 주고 탑승권을 받아 들고 입국 수속을 마친 후 탑승 대기실로 들어간다.

이곳은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가 3편이나 거의 비슷한 시각에 출발한다.

대한 항공, 아시아나 그리고 베트남 항공....

대부분이 한국사람들이다.

 

거의 10분 간격으로 떠나면 서로 누가 빠르나 시합하나?

베트남 항공이 제일 빨리 출발한다.

뭐~ 어쩌겠는가?

자기네 동네인데....

 

공항 출국장 안에 있는 면세점은 이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

면세일지는 모르겠지만 가격이 엄청 비싸다.

만약 쓰다 남은 베트남 동이 있다면 시내에 있는 동안 모두 사용하고 버스비 5.000동만 남겨 놓으시라.

공항 면세점은 한국돈도 받겠다고 한다.

 

이윽고 정시에 이륙한다.

한국까지는 3시간 30분 만에 간단다.

무슨 버스가 이렇게 빨리 가나?

에어버스도 버스니까.... 그런데 시차의 차이가 아닌가?

어떻게 기내 방송을 알아 들었느냐고?

 기내방송을 베트남 말, 영어 그리고 우리말로도 해 준다.

 

이번에 공포의 시간이다.

지난번 이곳으로 올 때 당한 창피함을 만회하기 위해 이번에 메뉴판을 보고 佳人이 먼저 주문을 한다.

佳人 : 아주 젊잖은 목소리로 "오리엔탈 소스를 곁들인 농어 튀김....."  어쩌고저쩌고....

오~잉~~

그런데 밤에 출발하는 비행기는 그런 게 없다. 

 

여기서 잠깐 24일 전으로 돌아가 보자.

여행을 떠난 첫날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으로 오며 메뉴판이 하나씩 나누어졌다.

그때 佳人은 아무리 메뉴판을 들여다 보아도 당최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

왜 글자 위에 지렁이는 기어 다니는 게야~~

 

마치 어린애들이 볼펜으로 낙서 해 놓은 것처럼....  

佳人 : 무식한 티를 감추기 위해 찬찬히 들여다보며 신중한 선택을 하는 것처럼 위장 전술..... 

그런데......

울 마눌님 : "난 새우를 곁들인 야채샐러드에 불고기 양념 떡갈비와 쌀밥을 먹을 테니

                     당신은 오리엔탈 소스를 곁들인 농어 튀김과 야채 볶음밥을 드세요~"

                     라고 하는 게 아닌가?

 

아니?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도 아니고 새우를 곁들여?

오리엔탈 소스는 또 무슨 소리야?

 

울 마눌님이 언제 베트남 말을 이렇게 교양 있고 퍼펙트하게 이해하신대?

그럼 나 몰래 혼자 배트맨 말들을 완벽하게 공부한 게냐?  그런게야?

그럼 이번 베트남 여행은 마눌님만 푸~욱~~ 믿고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는 게야?

 

난 결혼 후 처음으로 존경과 부러움에 가득 찬 시선을 울 마눌님에게 보냈다.

여러분들도 위의 메뉴판을 보시고 이렇게 완벽한 베트남 말을 하실 수 있수?

나는 죽었다 깨나도 못하우~~

 

佳人 : "으음~~ 오우 케이!

          그러지 머...."

         그래도 꼴에 남자라고 "O. K' 하며 대답을 한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완벽한 영어가 튀어나왔다.

O. K라는 말.....  이거 영어 맞죠?

마눌님이 하면 佳人도 한다.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해 메뉴판을 덮으려고 하는데 메뉴판 맨 뒤에 한 장이 더 있다. 

그런데 그 뒷장 마지막 페이지에 아래와 같이 자랑스러운 한글로 적혀 있는 게 아닌가.....

 

마눌님~

진작 이야기나 해주지....

한글로 쓰여 있다고....

그래서 나는 이때부터 여행 내내 모든 인쇄물은 뒷장부터 읽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뒤로는 우리의 한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여행 내내 지렁이만 봐도 움찔하며 가슴이 철렁했다.

보라~~ 자랑스러운 우리의 한글에는 지렁이가 없다.

이상은 24일 전 여행 첫날의 아픈 기억이다. 

 

울 마눌님 : "그냥 하나씩 시키세요...." 

그렇다!

저녁에 출발하는 비행기에는 농어는 외출 중이고 오리엔탈 소스는 가출하고 남은 건 죽과 국수뿐이다.

그러니 농어가 인도차이나 바다로 도망가고 오리엔탈 소스는 노이바이 공항에서 바이 바이를 한 게야?

그것은 이곳으로 올 때의 점심 메뉴였고 돌아가는 저녁은 그게 아니다. 

출발할 때 당하고 그리고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도 무참히 울 마눌님에게 완패를 당했다.

역시 佳人은 영원한 하수였다.

울 마눌님은 이곳에 올 때 이미 저녁에는 뭐가 나오는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 화장실에 가면 佳人보고 "븅~~ 신"이라고 할까 봐 아예 가지를 않았다.

참자... 참아야 하느니라.... 

 

식사를 하고 나니 잠시 후 모든 기내 등은 꺼지고 승객들은 깊은 단잠에 빠진다.

佳人은 혼자 독서등을 켜고 마지막 여행 메모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예쁜 아오자이를 입은 여자가 옆에

와서 속삭인다.

여자 : @#$%& 소곤거리며...

佳人 : 뭐.. 라.. 고.. 요? 원래 누가 소곤거리며 물어보면 나도 모르게 같이 소곤거리며 대답을 하게 돼있다.

야심한 시각... 모두가 곤히 잠에 곯아떨어져 있는데 베트남 처자가 야간 데이트라도 신청하는 게야?

 

여자 : &%$#@ 그리고 커피라는 말이 들린다.

佳人 : "커 피로  주 세 요" 

모두 잠든 야심한 시각에 혼자 불 켜놓고 앉아 있는 불면증 환자가 측은해 보였나 보다.

사진에는 커피 다 마시고 없다~~

음식 사진은 비록 커피일지라도 먹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 남는다. 

 

메모 수첩이 너덜너덜 해져 버렸다.

그리고 더 이상 쓸 여백도 없다.

이렇게 佳人의 여행도 더 이상의 여백을 남기지 않고 모두 소진해 버렸다.

가는 곳마다 시간이 있으면 가능하면 메모를 했으며 느낌을 남기려고 했다.

그러나 능력과 기억과 글재주의 한계로 이렇게 횡설수설하다가 끝을 맺게 된다.

 

24일간 佳人부부의 첫 배낭여행....

이제 막을 내린다.

배낭여행... 젊은이들만 하는 게 아니다.

우리처럼 연식이 오래되고 영어가 서툴러도 할 수 있다.

새벽 5시가 조금 지나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인천공항에 무사히 안착한다.

마치 여행의 기억들이 희미해진 듯 창을 통해 내다본 한국의 새벽도 안개로 자욱하다.

 

그러나 잠시 후면 먼동이 트고 그때가 되면 다시 佳人의 기억도 밝아지리라....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장으로 향하는 시각....

지금 새벽 5시 29분임을 알려준다.

더운 나라에서 한국에 도착하니 춥다.

한국은 온통 전국에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 추운가 보다.

오늘은 11월 23일 새벽이다.

 

무릇 여행이란 미지의 세계로 나 자신을 던져놓고 나를 한 걸음 더 세상 속으로 다가가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 자신이 살아있음을 자각하고....

다시 일상이 그립고 이웃과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어 그래서 좋다.

 

두 눈이 있어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었고,
두 귀가 있어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두 발이 있어 가고픈 곳을 갈 수 있었고,
가슴이 있어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의 사선을 넘어 건강을 회복한 마눌님과 함께 무사히 긴 여정을 마칠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처음 떠난 배낭여행이라 걱정과 우려가 가득 찬 마음으로 떠나 많은 느낌을 담아오지는 못했다.

더군다나 나이가 들어서 떠난 첫 배낭여행이라......

다시 佳人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념무상의 빈 마음으로 무소의 뿔처럼 그리 떠나련다.

 

빈 마음으로 떠나야 눈으로 여러 가지 색깔을 그리고 마음으로 많은 느낌들을 가득 지니고 돌아온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며 여행을 통하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우리의 삶도 한층 더 윤택해지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적은 비용으로 아끼고 다녀 여행 경비가 남았다.

마눌님~ 남은 경비로 우리 다음에 어디로 가지?

 

그동안 지루하고 재미없는 글을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늘 함께 하시며 佳人이 지쳤을 때 격려해 주시고 주저앉았을 때 손을 내밀어주신 여러분들....

늘 즐겁고 행복한 꿈만 꾸시기를 기원합니다.

비록 여행 이야기 속에서의 동행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에서도 동행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고

재미없는 길이겠습니까?

 

베트남은 우리 교민이 동남아시아에서는 필리핀 10만여 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75.000여 명 정도란다.

이 숫자는 태국에 사는 교민들 숫자인 2만여 명 보다 많단다.

또한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신부들의 숫자가 75.000여 명..... 

점차로 우리나라에서 베트남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동남아시아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은 베트남을 반드시 보아야 할 이유가 아닐까?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 인생 자체가 여행이다.

메일 메일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여행이란 떠나가 위해 가는 게 아니고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인생이란 편도표 한 장 달랑 들고 가는 길이지만

여행이란 왕복표를 들고 갔다 오는 일이니 이 또한 행복한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 자체가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