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이야기 둘

2008. 12. 4. 01:00중국 여행기/소주, 항주, 상하이 여행

오늘은 어제에 이어 서시 이야기좀 더 해야 하겠다.

적당히 이쁘면 하루에 끝낼려고 했는데 워낙 이뻐서 하루 더 쓴다.

범려는 비밀로 훈련시킨 여자 스파이들을 이끌고 오나라로 가는 도중에 고민이 생겼다.

문제는 임신한 서시였다.

 

범려야 ~~  이럴때는 잔머리를 굴려야지....

범려는 서시가 풍토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핑계로 반년간의 적응기간을 요청했고

결재를 득한후 그래서 그곳에 머무를 수 있었다.

오나라의 도읍이 수저우고 월나라의 도읍 항저우다.

두 도시간 거리가 100km 남짓한데 무슨 풍토병이고 적응기간이 필요하냐?

너무 속 보인다.

 

범려씨 !

혹시 이런 사실을 부차도 알고 구천도 아니?

 

결국 서시는 적응기간이라고 거짓말을 한 기간에 범려의 아이를 낳았다.

그럼 떠날때가 산달이 가까웠다는 이야기가 아니냐.....

6개월 내에 아이 낳고 산바래질까지 다 했으니....

그럼 언제 사고 친게야?

 

그러나 부모 잘못 만난 아이는 가련하게도 이 어린 생명은 부모에게 선택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그만 불귀의 객이 되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길래 佳人이 뭐라고 했냐?

미리 미리 예방을 잘 하라고 일러주지 않았느냐....

 

자기 새끼 하나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녀석이 무슨 국사를 논하겠다고....

범려야~ 佳人이 한마디만 하자.

修身齊家 연후에 治國 平天下란다. 너는 수신이 목욕 잘 하라는 하는 말인지 알고 있니?

 

일국의 대부(大夫)로서 자기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지도 못하고 그들의 사랑을

무정하게 버리고 말았으니 그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고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었다.

드디어 범려는 서시 등을 데리고 고소대(姑蘇臺)에서 부차를 알현하고 그녀들을 선물로 바쳤다.

사람이 무슨 물건이냐? 주고 받게.....

이런일을 우리나라 여성부에서 알면 범려는 죽는다.

혼인 빙자 간음죄에 국정에 중대한 책무를 지닌 공직자가 여자관계가 이리도 복잡하면

국회 청문회에서 절단이 나고 네티즌에게 매장 당할 녀석이다.

 

과연 오왕 부차는 오나라의 모든 미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서시와 정단을

보자 첫눈에 반하였다.

사실 정단은 기분이 무척 나쁘다고 옆에서 佳人에게 투덜거린다.

정단도 부차가 첫눈에 반할 정도로 아름다웠는데 후세 사람들은 맨날 서시만 이쁘다 하고

중국 4대 미녀니 뭐니 떠드는데 왜 자기는 후보에도 올려주지 않느냐고 佳人에게 투덜거리며

하소연 하더라.

그래서 그게 다 범려라는 백 그라운드라고 투덜이 정단에게 타일러주고 왔다.

원래 조금 못생겨도 능력있는 매니저를 만나고 매스컴에서 띄워주면 금방 스타된다.

  

이때 오나라 태재 백비 등은 그 광경을 보고 매우 즐거워하였으나 오나라의 상국(相國)

오자서(伍子胥)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넋이 나간 듯이 미인들을 바라보고 있는 부차에게

간언하였다.
원래 이 세상에는 모두가 "Yes"라고 할때 혼자만 "No"라고 하는 사람이 꼭 있다.
"신이 듣기로 하(夏)나라는 말희 때문에 망하였고 은나라는 달기 때문에, 주나라는 포사 때문에

망했다고 합니다. 미녀는 군주를 주색에 빠지게 해서 결국 나라를 망하게 하니 이들을 그만

돌려보내야 합니다."

오자서야! 왜 지금까지 보낸 여자들은 다 받고 이제 막 도착한 신제품 여자들만 타박이냐?

역사에 기록되고 튀어볼려고 그러는게지?
 

이러한 오자서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부차는 이렇게 답하였다.
"나는 걸왕(桀王) 도 주왕(紂王)도 아니고 주(周)의 유왕(幽王)도 아니니 오상국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그러니 나는 세상에 하나뿐인 나란 말이지?

사실 옛날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 열 계집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백제의 의자왕은 3.000명이나 궁녀를 거느렸다.

그러나 당현종은 50.000명의 후궁울 두었다고 한다.

많으면 무엇하나.... 현종은 양귀비의 치맛폭에서만 놀았는데....

그리고는 월나라에서 바친 미녀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그럼 그래야지 이야기는 계속되지..... 

부차는 그 중에서도 특히 서시를 좋아하였으며 서시의 미모를 한없이 사랑하였다.

부차는 서시를 위하여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 영암산(靈巖山)에 화려한 관와궁(館娃宮)을

짓고 온갖 보석으로 호화롭게 장식하였다.

또 온갖 궁리 끝에 땅을 파서 큰 옹기를 묻어 평평하게 한 후 그 위를 다시 두꺼운 나무로 덮은

회랑을 만들게 하여 그 위를 서시가 걸어가면 공명현상으로 예쁜 소리가 난다.

그것을 '향리랑(響履廊)'이라 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빠지면 별 짓을 다 한다.

 

양귀비도 당 현종이 玉으로 만든 팔지를 여러개 끼고 다니게 하여 움직일때 마다 玉 팔찌의

소리가 듣기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양귀비의 다른 이름이 楊玉環이라고도 한다.

佳人도 옥 팔찌라도 여러개 마눌님에게 선물해 볼까나?

  

서시가 이 향리랑 위를 걸어갈 때 그녀의 발자국 소리가 영롱하게 울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인공호수를 조성하여 그 주위에 아름다운 화초를 심고 호수 안에서 배를 띄워 함께

놀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니 국정이 파탄나지....

 

다시 한번 서시 그림을 보고 가자.

역시 이쁘긴 이쁘군....

 

서시와 정단의 갖은 애교는 부차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 잡았으며 이로써 부차는 政事를 돌보지

않고 情事만 돌 보았다.

그녀들과 함께 가무와 산수를 즐기는 데만 열중하였다.

사실 노는데만 빠져 있다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서시의 부탁으로 대규모 토목공사를 함으로 나라의 곳간이 거덜나는게 더 큰 문제다. 

결국 부차는 범려의 계획대로 역대 망국의 군주들이 걸었던 길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었다.

월왕 구천은 경거망동을 하지 않고 복수의 날만 기다리면서 오나라가 대외 원정을 떠나

군사력을 소진 한 후에 오나라를 공격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마침 서시로부터 오나라가 제(齊)나라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구천은

그때를 틈타 병력을 파견하여 오나라를 도우는 척 하면서 오왕 부차의 환심을 사 두었다.

그 결과 오나라는 제나라 정벌에 성공하였으나 오나라 상국(相國) 오자서는 월나라마저

파멸시켜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월나라에서도 이러한 오자서가 그들의 계획을 성사시키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고 

오자서를 없앨 궁리를 하였다.

오자서의 제거 계획이 마련되자 그것은 서시의 임무가 되었다.

 

서시는 갖은 교태를 부리며 오왕 부차에게 오자서에 대한 험담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부차는 서시의 말에 속아 오자서의 충정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월나라 문제에 대한 토론 중에 의견 충돌이 일어나자 부차는 오자서에게

촉루라는 칼을 보내 자살할 것을 명했다.

정말 딱하다..... 부차야...  

 

성질 더러운 오자서는 그 소리를 듣자 부하에게 명하여 그가 죽은 후에 자신의 무덤 옆에 꼭 

향오동나무를 심어 그 나무로 부차의 관을 만들고 자신의 눈을 파내어 성문 입구에 걸어놓으라고

말한다.

이것은 월나라 군대가 오나라 성을 쳐들어 와 오나라가 파멸하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두 눈을

성문밖에 걸어두라고 말이다.

그리고 자결을 한다. 오자서도 한 성질한다.

그런다고 죽은 눈이 CCYV나 원격 레이다도 아닌데.... 

 

이 소리를 들고 크게 노한 부차는 그를 잔인하게 찢어 말가죽 주머니에 싸서 장강에 띄우도록 했다.

부차도 성질하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지?

라텍스 침대를 두고도 섶에 누워 잠을 자며 애비의 복수를 도모한 독한 놈이 아니냐... 

오자서가 죽은 후 백비가 정사를 맡음으로써 오나라는 패망의 길을 재촉하게 되었다.

형 만한 아우 없다는데...

그래서 구관이 명관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던 중 오왕 부차는 제후들의 패자를 결정짓는 황지(黃池)의 회맹에 참가하기 위하여

직접 오나라의 정예병사를 이끌고 오나라를 떠났다.

이에 오나라의 도성은 텅비게 되었으며 구천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나라의 도성을

공격해 들어가 오나라 태자를 고소대(姑蘇臺)에서 불에 태워 죽였다.


4년 후 오나라에는 큰 가뭄이 들어 백성들은 기근에 시달렸다.

이때 구천은 다시 오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오나라 군대는 성을 지키기에만 급급하여 반격할

틈도 없었다.

월왕 구천은 그 후 다시  수군을 동원하여 오나라를 다시 공격하였다.

2년여에 걸친 포위 공격 끝에 결국 오나라 성은 무너지고 부차는 고소산(姑蘇山)으로 도망가

자결하였다.

 

 

오나라나 월나라는 몸에 문신을 하고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풍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을 오랑캐라고 하는 만족(蠻族)이라 불렀으며 베트남도 이들과 같은

월족이라고 해 남월이라고 부른다.

남월이 후에 월남으로 변했지만....



그후 서시의 행방에 대해서는 전설적으로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즉 오왕 부차가 자결할 때 오나라 사람들은 그들의 뜨거운 분노를 모두 서시에게

쏟아붓고 그녀를 비단으로 꽁꽁 묶어 양자강 가운데 빠뜨렸다고 한다.

서시는 죽어도 비단에 묶여 죽는다. 

이와 관련 동파이물지(東坡異物志)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양자강에는 미인어(美人魚)가 있는데 서시어(西施魚)라고도 한다.

하루에 여러번 그 색깔을 바꾸며 살이 부드럽고 맛이 좋다.

아녀자들이 그것을 먹으면 더욱 아름다워진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것을 서시의 화신이라고 한다."

웃기고들 계시네~~

서시가 누구냐?

침어가 아니냐?

물고기들이 다 가라 앉는다는 침어....

그러면 그 미인어라는 물고기가 한 마리가 아니고 여러마리라면 범려와 서시 사이에

사랑의 씨앗이 그렇게 많았다는 말이냐?

서시가 무슨 물고기 만드는 공장이냐? 

이것은 다만 하나의 전설일 뿐 역사는 아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오나라가 멸망되는 날 범려는 고소대(姑蘇臺) 아래에서

옛날의 애인 서시를 찾아 황급히 태호(太湖)로 도망가서 그녀와 함께 일엽편주를 타고

아득한 안개 속으로 살포시 사라졌다고 한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범려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부귀영화를 버리고 이름을 숨긴 채 오호(五湖)를 유랑하면서

세상사를 잊고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냈다.

멋진 놈....

사랑이 뭐고 정이란 뭔가 알고 인연을 중히 여기는 사나이 중에 사나이... 

많은 세월이 지난 후.......

산동(山東)에 도주공(陶朱公)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부(巨富)가 나타났는데 그의 아내는 꽃처럼

아름다웠으며 부부의 금슬도 아주 좋았다.

이 도주공이 바로 범려이고 그의 아내는 월나라의 미인 서시였던 것이다.

아아~~ 정녕 서시는 팜므 파탈의 원조란 말인가~~ 

소설 같은 서시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

 

뱀다리 하나 : 손자병법 구지편 첫 머리에 나오는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도 오나라와

월나라의 이야기다.

라이벌 관계로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살아가는 두 나라도 한 배를 타고 가다 풍랑을

만나면 서로 돕는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도 국론이 분열되고 서로 적인냥 싸운다.

부디 오월동주라는 말처럼 어려울때는 서로 협력하여 난국을 타개하는 지혜를 가졌으면..

佳人의 둘째 아들 이름이 동주다.

그 아이는 9월에 태어났다.

그러면 구월동주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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