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의 황금, 아르간 오일의 고장

2024. 3. 8. 04:00모로코 여행기 2024

 

제가 오늘의 이야기 주제로 조용한 어촌마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메디나 안으로 발을 들여 넣는 순간 수많은 인파로 숨이 막힙니다.

인구 7만여 명의 작은 도시에 오늘 주민 모두가 여기에 모인 듯합니다.

 

 

역시 모로코의 축구영웅 모로코 하 씨인 하키미는 오늘도 열일하고 있나 봅니다.

모로코의 하키미는 우리나라의 손흥민보다도 더 유명인사이지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최근에 많은 선수가 축구나 야구 등에서 세계 최고의 리그에 진출했지만,

모로코는 유명 리그에 진출한 선수가 많지 않기에...

 

 

벤 유스프 모스크가 메디나 중간에 있는 문 중 하나 옆에 보입니다.

무슬림의 나라이기에 모스크는 이들에게는 생활의 일부분이지요.

어딜 가나 눈에 보이는 모스크의 첨탑인 미나레트.

 

 

역시 시장은 이런 풍성함이 우리 눈을 즐겁게 합니다.

시장 구경은 입장료 없이 그곳을 가장 잘 알게 해주는 살아있는 박물관이지요.

여러 종류의 올리브 열매가 보이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가게는 바로 아르간 오일을 파는 가게로

시장 안에는 가게가 많이 보입니다.

아르간 오일은 이 근방에서는 특산물로 많이 생산하는 오일이라고 하지요.

 

 

바로 우리가 에사우이라로 오는 길에는 아르간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아르간 나무는 유일하게 모로코 남서부지방에서만 자란다고 합니다.

따라서 에사우이라 부근에서 잘 자라는데 유네스코에서는 보호지역으로 정했다네요.

 

 

아르간 오일은 모로코에서는 큰 수입원이 되기에 모로코의 황금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식용으로는 착한 지방이라는 불포화 지방산 여러 종류의 오메가를 함유한다고 하네요.

특히 콜레스테롤 등 요즈음 성인병이라는 질환에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하니... 

 

 

아르간 열매의 사진입니다.

이 열매에서 씨만 골라 착즙을 하여 기름을 짠다고 합니다.

그러나 적정 복용량 500mg/day을 지켜야지 많이 먹으면 복통, 설사, 소화불량 등

위장관에 해를 끼친다고 합니다.

 

 

식용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네요.

여성의 피부나 모발관리에도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두피나 손톱에도 좋다고 하고요.

 

 

원래는 염소가 아르간 열매를 즐겨 먹기에 아르간 나무가 가시가 있을지라도 나무를 잘

탄다는데 그러면 열매를 따먹은 염소는 씨는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그냥 뱉어버린다고

하는데 그런 씨를 인간이 모아서 오일을 짠다고 하니....

 

 

이런 것도 관광객에게는 돈벌이가 되기에 일부러 염소를 나무 위에 올리고

사진을 찍게 한 후 사진 촬영비를 챙긴다고 하니 아르간 농장을 하시는 분은

아르간 열매를 팔아서 돈을 벌고 또 다른 부수입까지 챙기나 봅니다.

 

 

보통 열매 하나에 3개 내외의 씨가 있다는데 이 씨를 압축해 짜내는 오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메디나 안에서 판매하는 아르간 오일은 다른 곳보다는 조금 비싸다고 하니...

아무래도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에서는 당연한 일이 아니겠어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커다란 건물은 멜라라는 지역에 있는 건물인데 이 메리다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지역으로 옛 유대인의 집단 거주지라고 합니다.

이 근방에 유대인 교회당인 시나고그가 아직도 두 개나 남아있습니다.

 

 

모로코는 무슬림이지만, 이교도에 대한 배척은 심하지 않고 예전부터 함께 거주했다고

하는데 이들이 과거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해 수백 년을 살았던 무슬림을 따라 건너가

그곳에서 새로운 왕국을 이룬 왕궁의 살림살이는 물론 왕족이나 귀족의 살림을 도맡아

처리했기에 무슬림들의 입장에서는 유대인의 능력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고 하네요.

 

 

시나고그 출입문 위에는 유대교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다윗의 별이 딱!!!

그러나 718년부터 벌어진 이베리아 반도의 국토회복 운동이라는 레콩키스타로 1492년을

끝으로 지중해를 건너 다시 아프리카 땅으로 돌아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았다고 하고요.

 

 

그래서 여기 에사우이라에도 유대인의 흔적이 지금까지도 남았고 그들의 종교시설인

시나고그는 유대인의 가장 대표적인 흔적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무슬림이 다른 종교인 유대인의 종교를 인정하고 살았다니...

 

 

드디어 마지막 남았던 무슬림의 점령지역인 그라나다를 빼앗기고 바다 건너

다시 돌아왔다는데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지금의 쉐프샤우엔에다가 둥지를 틀었다고

하며 쉐프샤우엔은 그들이 살았던 이베리아 지형과 유사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레콩키스타는 우마이야 왕조인 무슬림과 먼저 이베리아 반도에 살았던 가톨릭 세력과의

종교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는데 사진 멀리 보이는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 아래에 

백마를 탄 이사벨 여왕의 모습과 검은 말을 탄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술탄인 보아브딜이

떠나는 모습으로 말도 당시의 상황을 아는 듯 각각 고개를 쳐들고, 또 숙이고 있지요.

 

 

이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을 때 이들의 왕들은 유대인을 적극 고용해 집사로 삼았고

왕실의 재정을 맡기기도 했다는데 이는 유대인의 경제개념을 높이 샀기에 그랬다고 하지요.

이스라엘로 이주하기 전까지는 이 지역에 유대인이 집단거주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위치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메디나로 들어가는 북문인 두칼라 문(Bab Doukkala) 부근입니다.

 

 

이제 두칼라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곳은 옛 에사우이라로 메디나라고 한다는데 그야말로 시장 골목길입니다.

사진으로 튼튼하게 쌓았던 성벽의 두께가 느껴지십니까?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무슬림이 북아프리카를 떠나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해 왕국을 꾸미고 살기 800여 년

그러나 원래 이베리아 반도에 살았던 가톨릭 세력은 그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살았지만,

국토를 수복해야겠다는 생각에 드디어 군사를 모아 북에서 남으로 하나씩 무슬림 세력을 

요절내기 시작하며 1492년 마지막까지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에 마지막으로 똬리를 틀고

살았던 무슬림을 1년여 궁전 아래 진을 치고 버티기 작전으로 드디어 항복을 받아냈답니다.

 

조건은 안전하게 퇴로를 열어주어 북아프리카로 돌아가는 길을 보장하고 그 대신

알람브라 궁전은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는 조건이라고 했던가요?

그 덕분에 지금 우리는 아름다운 알람브라 궁전을 옛 모습 그대로 구경할 수 있게 되었지요.

유럽에 남아있는 유일하게 아름다운 이슬람 양식의 궁전이 바로 알람브라가 아니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