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烏山 禿山城과 洗馬臺址)

2022. 3. 7. 06:00금수강산 대한민국/경기, 인천

집에서 멀지 않은 오산에 있는 산성인 독산성에 올랐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삼국시대에 백제가 돌로 쌓은 석축산성이라고 하니 무척 오래된 산성이네요.

산성의 규모는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원래의 둘레가 3.6km에 이른다고 하며

지금은 약 400여 m만 남아있는 유적으로 복원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어

제법 옛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더라고요.

 

사적 제140호로 지정되었고 독성산성(禿城山城)이라고도 불린다네요.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돌의 생김새에 따라 그 모양대로 쌓은 모습이 보이네요.

 

현재 약 400m 정도의 성벽과 성문 4곳이 남아 있어 그나마

옛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네요.

그러나 쌓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하였으므로,

한강 하류에 도성을 두었던 백제시대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네요.

 

지리적으로는 요충지라 산성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 산성이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시기는 조선시대로 독산성이라 불려왔으나

특히 임진왜란 때라지요?

 

권율 장군이 폈던 진묘(眞妙)한 병법 전략에 연유해 지금은 세마산 또는 세마대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정상에는 이승만 대통령 친필의 세마대라는 현판이 붙은 누각 건물이 있습니다.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글이 바로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입니다.

 

중요한 위치에 큰 역할을 했던 산성이나 이 산성의 가장 취약점은 물이 없다는 점이랍니다.

지금의 성곽을 둘러보니 4 개의 성문이 있고 암문 하나가 보이더군요.

 

독산성은 군사기지로서의 주요 위치에 놓여있긴 하지만,

샘물의 부족이 흠으로 지적되고 있다고 하네요.

그러니 만약, 적의 공격으로부터 오래 버티기는 쉽지 않은 곳이라는 의미겠지요.

 

이 때문에 1593년(선조26) 명나라 원군이 평양을 수복하고 남하함에 전라도 순변사이던

권율 장군이 명군과 호응하여 서울을 수복하고자 2만 명의 군사로 이곳에 진을 치고

대군과 대치한 적이 있었답니다.

이를 독산성 전투라고 불렀다는데 이 전투는 너무나 유명한 일화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이끈 왜군은 이 벌거숭이산에 물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탐정군사에게 물 한 지게를 산 위로 올려 보냈다네요.

그러나 권율장군은 왜군의 의도를 꿰뚫어 보고 권율은 물이 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백마를 산 위로 끌어 올리고서 목욕시키는 것처럼 흰 쌀을 끼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이를 본 왜군은 말을 씻길 만큼 산 꼭대기에 물이 풍부하다고 생각하고는 물러났다고 하네요.

세마대는 1957년에 복원되었답니다.

이와 같이 샘물의 부족한 단점을 권율 장군이 오히려 슬기롭게 극복한

세마대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 곳이라네요.

 

이 산성은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다고 하니

오래도록 지형적인 이점이 있는 곳이겠네요.

 

1593년(선조 26) 7월에 전라도관찰사 겸 순변사였던 권율(權慄) 장군이 근왕병 2만 명을 모아

북상하다가 이곳에 진을 치고서 왜적을 물리쳤고, 이듬해 9월 11일~14일에는 백성들이 힘을 모아

불과 4일 만에 고쳐 쌓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주변에 알려져 금지산성(衿之山城)에서도 군량을 모으고 병사를 훈련시켰으며,

월계산성(月溪山城)과 파사산성(婆娑山城)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나중에 파사산성에도 다녀오려고 합니다.

 

1595년에는 포루(砲樓) 시설을 갖추었고, 1597년 2월에는 왜병이 쏜 조총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성벽 안쪽에 평평한 집을 지었으며, 석차(石車)와 함께 투석용으로 쓰던

포차(抛車)를 배치하면서 성 밖에 목책을 세우려고 계획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전략적 위상이 계속 중시되어, 1602년(선조 35)에

변응성(邊應星)이 수리하여 쌓았다지요.

1796년(정조 20)에 수원성 축조와 함께 고쳐 쌓아 오늘에 이르는데,

당시 성의 둘레는 1,800보이고 성문 4곳이 있었다고 하네요.

 

이 산성은 많은 군사들이 주둔하기에는 물이 부족한 편이라고 합니다.

이런 불리한 지형이 오히려 세마대(洗馬臺)에 얽힌 이야기를 낳았다고 보입니다.

 

산성 안에는 규모가 작은 절이 하나 있습니다.

보적사(寶積寺)는 현재 독산성(禿山城) 동문 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창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백제 아신왕 10년(401)에 전승(戰勝)을 기원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고 하네요.

 

보적사라는 명칭에는 재미난 유래가 전해지는데 옛날 삶이 궁핍한 노부부가 쌀 두 되만 남게 되자

구차하게 굶어 죽느니 부처님께 공양하기로 마음먹고 공양 후 집에 돌아오니

곡간에 쌀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열심히 공양하면 보화가 쌓이는 사찰이라 하여 보적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니

이름에서도 알 수 있네요.

이런 보적사 또한 다른 사찰들처럼 여러 차례 전란을 겪으면서 중건과 재건을 거듭하였고

현재는 대웅전과 3층 석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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