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융건릉(隆健陵)

2022. 2. 18. 05:11금수강산 대한민국/경기, 인천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요즈음 같은 시기에 딱 맞는 장소인 융건릉을 다녀왔습니다.

융건릉(隆健陵)은 융릉과 건릉 두 개의 능이 함께 있는 조선왕조의 왕릉으로

제22대 정조의 아버지 장조(사도세자)와 현경왕후를 함께 합장으로 모신 융릉과

정조와 효의왕후를 합장하여 모신 건릉을 합쳐 부르는 이름입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건릉은 10세 때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격한 아들인 정조 무덤이고,

융릉은 아버지 영조에게 죽임을 당한 아들인 사도세자의 무덤입니다.

 

당시 조선시대는 극심한 당파로 인하여 정치적으로 이합집산이 이루어져 혼란한 시기였다지요?

영조 또한 경종의 세자로 책봉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어 간신히 세자의 자리에 올랐다네요.

 

노론의 후원으로 세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소론의 반격으로 노론의 4 대신이 처형을 당하고...

왕위에 오른 영조는 소론을 배척하며 자신으로 세자 책봉까지 적극 밀어주었던 노론을 중용하지만,

정치적인 혼란을 막기 위해 탕평책을 쓸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네요.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소론을 배척하고 노론을 중용하는 과정에 이런 사실을 알아챈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가 영조의 방법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 노론에 대한 견제에 들어가자

노론이 반격하여 사도세자의 결점을 들추다가 마지막에는 몰래 왕궁을 빠져나가

문란한 행동을 했다는 엉뚱한 유언비어를 만들어 배척하기에 이르렀지요.

 

결국은 정치적은 반대세력의 모함으로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음에 직면하고...

결국, 죽은 후 이곳 융릉에 왕후인 혜경궁 홍 씨와 함께 묻히게 되었다네요.

 

혜경궁 홍 씨는 현경왕후라고 하며 사도세자인 장조의 부인이지요.

또한 정조의 생모로 80 평생 중 70여 년을 삼엄한 궁중에서 생활하며 그녀의 한 많고 힘들었던 자서전인

우리도 잘 알고 있는 한중록을 남긴 여인입니다.

 

정조는 즉위 이후 당쟁을 없애기 위해 탕평책을 펼치며 신진 세력을 등용하는 한편

화성 건축을 통해 왕권의 강력함을 보여주려 노력하게 되었지요.

 

또 아버지의 죽음에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즉위 초부터 사도세자의 복권에 공을 들였고요.

사도세자의 능은 원래 경기도 양주군 남쪽 배봉산에 있었는데 정조가 즉위하면서

아버지의 존호를 장헌으로 올리고, 1789년 이곳으로 묘를 옮긴 후 능호를 융릉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저조의 무덤인 건릉에는 그의 부인인 효의왕후와 합장한 무덤입니다.

 

융건릉은 입구에서 볼 때 왼쪽이 융릉이고 오른쪽에 건릉이 있습니다.

각각의 왕릉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왼편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음식을 장만했던 수라간이 보입니다.

그리고 오른편에는 비각이 있고 왕릉 앞으로는 제사를 모셨던 장자각이 있더라고요.

 

주차장은 융건릉 입구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고 주변에 맛집 또한 많은 곳으로

가족과 함께 나들이하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지 싶을 정도입니다.

사진 몇 장 더 봅니다.

 

성인은 입장료가 1.000원이고 6세 이하 어린이와 65세 이상은 무료입니다.

입장 시각은 오전 9시부터이고 월요일은 휴무입니다.

주차장은 입구에 무료 공용 주차장이 있어 쉽게 주차할 수 있습니다.

 

또 융건릉 입구에 보면 음식 거리가 있어 다양한 종류의 식당이 즐비하더군요.

입맛대로 골라드실 수 있지 싶습니다.

융건릉 입구 가까운 곳에 있는 색동 면옥이라는 곳을 찾아 냉면을 먹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