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어 선제후 궁(Electoral Palace)과 피마르크트 광장 욕장(Thermen Am Viehmarkt)

2021. 4. 28. 03:26독일·오스트리아 2018/트리어

아름답게 꾸민 정원이 있네요.

꽃밭 너머 멀리 화려한 궁전이 보이고요.

이곳은 트리어에 있는 선제후 궁(Electoral Palace)입니다.

 

로마 시대에 지은 유적 구경을 하다가 엉뚱하게 산에 올라 포도밭은 거닐다 내려왔습니다.

여행이란 이렇게 계획에 없었던 산책도 했네요.

이제 구시가지로 다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길을 건너 구시가지 방향으로 가려고 하니 앞에 성벽이 가로막고 있고

위의 사진처럼 성문이 보입니다.

분명 옛날의 트리어 성벽은 훨씬 더 바깥에 있었을 텐데...

 

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름답게 꾸민 정원이 보이고 멋진 궁전 건물이 보이네요.

이곳이 트리에서 거주했던 선제후 겸 대주교의 거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방금 들어온 성벽은 바로 이곳 선제후 궁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담장의 역할을 했나 봅니다.

 

그러니 알프스 북쪽에 있는 가장 오래된 로마 황제가 머물던 궁전터에 지어진

선제후 궁전으로 이곳은 독일 내에 세 명의 대주교 중 한 사람이 있던 트리어이기에 대주교가

이 궁전에 머물렀겠지요.

1615년에 완공한 궁전이라지요?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중 이 궁전 또한 심한 손상을 입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

원래 모습으로 복원했다네요.

궁전 정원(Palastgarten)을 포함한 외부는 아무나 거닐 수 있고 구경할 수 있지만,

궁전 내부는 현재는 관공서로 사용 중이라 들어갈 수 없다고 합니다.

 

분홍색 외부 파사드는 궁전 건물의 색깔로는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런 곳은 대주교의 선호 색이라...

로코코와 르네상스 양식의 파사드 장식이 화려하고 예쁘네요.

 

궁전 정면으로 넓은 잔디밭을 꾸며두었고 양쪽으로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을

조각상으로 만들어 놓아 신들의 정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조각상은 모자에 날개가 달렸으니 전령의 신이라는

헤르메스가 분명하겠지요?

 

그 옆으로는 연못을 만들어 두었고요.

이 정원은 궁전 건축보다 한참 늦은 1945~1947년 사이에 만든 것이고요.

 

중앙 마르크트 광장에서도 별로 멀지 않기에 시간이 되면 빠뜨리지 말고 방문할 가치가 있습니다.

대성당에서 겨우 600m 정도 떨어져 있으니까요.

파사드 장식이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특히 이른 아침에 아무도 없는 시각에 선제후의 기분으로 정원을 거닐어 보는 일도

좋을 것으로 생각해 아침 일찍 이곳부터 찾아와 산책했습니다.

여기에 올리는 선제후 궁전 사진은 오후에 다음 날 이른 아침의 사진을

함께 섞어 올리고 있습니다.

 

궁전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보석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곳입니다.

궁전 정원은 직사각형으로 길게 만들었는데 그 끝에 분수가 있고

다시 비슷한 크기로 또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먼 곳의 정원은 인테리어를 거의 하지 않고 그냥 잔디만 깔아 두었네요.

 

선제후 궁전(Electoral Palace)은 핑크색으로 치장한 로코코식 양식의 궁전입니다.

당시 대주교란 주민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후원 아래

주민에 군림하고 지배했던 사람이지요.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종으로 생각하고 은혜를 베풀었을까요?

 

궁전 바로 옆에 위의 사진에 보이는 콘스탄틴 바실리카(Konstantin basilika)는

팔리틴 홀(Aula Palatina)이라고도 부르는데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4세기경에 접견 홀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정말 통이 큰 사람이네요.

내부 모습을 보니 방이 나뉘지 않고 단일 내부 공간으로 만든 건물이네요.

로마 시대에 만든 건축물 중 단일 건물 중 가장 큰 건축물이며

이 건물은 지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길 하나 건너 아까 지나가면 보았던 황제 욕장(Kaiserthermen)이 있습니다.

다시 구시가지로 들어가다 보니 또 하나의 목욕탕 시설이 보입니다.

피마르크트 광장 욕장(Thermen Am Viehmarkt)이라는 곳입니다.
Forum baths라고도 부른다네요.

다른 목욕탕과는 달리 시내 한복판에 있습니다.

트리어에서 만난 커다란 목욕탕만 세 곳이나 됩니다.

그러면 이곳에 살았던 당시 사람은 매일 목욕만 하고 살았다는 말입니까?

또 이렇게 커다란 욕장에 물을 공급하려면 멀리서 수도교를 통해

물을 끌어왔을 것이고 또 그물을 데우려면 별도의 시설이 있었을 것인데...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닌가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곳 목욕탕은 80년에 만든 것으로 그동안 땅속에 묻혀있다가 1987년

지하 주차장 공사를 하려고 땅을 파다가 발견한 목욕탕 터라고 합니다.

이런 지역은 마당도 함부로 쓸어서는 안 되지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 아래 어떤 유적이 묻혀있는지 모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