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반타워(Svan tower)라고 하는 코시키(Koshki)가 있는 메스티아

2020. 3. 25. 06:00조지아 2019/메스티아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풍경입니다.

우리나라의 농촌풍경과 다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소를 모는 농부의 모습이 우리 숙소 주인과 아들로 조지아 사람입니다.

뒤로 보이는 집이 우리가 5박을 하는 숙소입니다.

 

 

아침에 계획하지도 않았던 찰라디 빙하까지 걸어서 다녀왔습니다.

많이 피곤한 듯하여 낮에는 잠시 숙소에서 쉬었습니다.

비록 힘든 아침이었지만, 오가며 보았던 야생화는 정말 아름다웠기에

피곤함도 씻어주더라고요.

 

 

숙소에서 빙하까지 왕복으로는 24km 정도밖에는 되지 않지만, 낮에 잠시 시내 산책까지

하고 들어오니 만보계를 확인해보니 오늘 걸은 거리가 30km에 육박하더라고요.

아마도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이 걸었던 날로 기억합니다.

 

 

위의 사진에 보는 건물이 메스티아 법원 건물입니다.

적의 침입에 대비해 만든 요새처럼 보입니다.

이런 무릉도원같은 곳에도 서로 간에 다툼이 있을까요?

 

 

그렇다고 저녁에 그냥 있기 섭섭해 코시키(Koshki)에 불 켜진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밤에 또 나가봅니다.

오늘 하루 다른 부부 팀과 함께했던 여성 두 사람이 밤에는 우리 부부를 따라서

야경을 보겠다고 따라나서네요.

 

 

메스티아는 캅카스산맥으로 둘러싸인 오지입니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도 험하디험한 산속 길을 따라 들어와야 하니 쉽게 드나들 수 없는

그런 험한 곳으로 주변으로 캅카스산맥이 둘러싸고 있으니 5.000m가 넘는

높은 연봉이 마치 호위나 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뭐니 뭐니해도 코시키라고 부르는 타워가 집집이 있어 특이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을로

워낙 오지기에 이 지방 특유의 고유 주거문화를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그렇기에 조지아 내에서도 특별히 보존되고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코시키라고 부르는 탑은 스반 타워(Svan tower)라고도 부른단네요.

스바네티 지방의 독특한 형태의 탑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마치 미어캣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뒤발을 들고 주위를 경계하는 모습으로

마을 곳곳에 솟아있네요.

 

 

대체로 탑은 위로 올라갈수록 벽의 두께가 얇아지며 마름모꼴 모습으로 변하는데

보통 3~5층으로 지었고 이 타워는 유네스코에서도 인류문화유산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하여 지정한 모양입니다.

 

 

우리가 온 이곳을 흔히 어퍼 스바네티라고 부른다네요.

독특한 거주를 겸한 스바네티 지방의 타워는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기이한 형태죠.

이미 4세기경 라지카(Lazika) 왕국이 이 지역을 다스렸다고 합니다.

 

 

라지카 왕국이 523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함으로 스바네티 지역에 사는 주민도

자연히 이른 시기에 기독교인이 되었겠네요.

이후 8세기경 압하스 왕국이 쿠타이시를 도읍으로 이 지역의 맹주가 되며

잠시 서부 조지아를 통치했지만, 건설자 다비드라고 부르는 다비드 왕

(David the  Builder, 재위 1089~1125)이 조지아 전역을 통일하며

지금의 조지아가 태어날 근본을 이루었답니다.

 

 

그런 이유로 이 지역의 왼쪽을 지금도 압하지야라고 부르는 작은 지역이 러시아의 후원 아래

조지아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별개로 살아가고 있게 되었다네요.

그러나 워낙 오지였기에 스바네티 지방은 파죽지세로 말고 들어왔던 칭기즈칸의 침입에서도

전 조지아가 모두 그의 말발굽 아래 엎드렸지만, 여기만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네요.

 

 

그러니 여기가 얼마나 먹을 것도 없는 오지였는지 칭기즈칸이 증명해준 셈입니다.

탑의 주거공간은 대개 2층이며 1층은 주로 가축이 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홀의 형태의

공간으로 칸막이로 분리하기도 했다네요.

탑으로 올라가기 위해 드나드는 곳은 2층으로 외침에 대비해 적의 공격으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문을 높은 곳에 만들어 두었나 봅니다.

 

 

또한 탑의 내부에는 여러 개의 층으로 나누어 위로 올라갈 때는 나무 사다리를 이용해

올라갈 수 있고 나무 사다리를 위에서 제거해 버리면 쉽게 올라갈 수 없어 방어에

도움이 되었다하며 위의 방은 사방으로 창문을 두어 외부의 적이 다가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는 관측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적이 코시키에 다가왔을 때 아래로 돌이나

나무토막을 던지거나 화살 등을 쏠 수 있도록 문을 만들어 놓았다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현재 메스티아를 중심으로 인근 지역에 이런 형태의 코시키가 200여 개나 남아있다고 하며

전통방식의 돌로 지은 집도 400여 채나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점차 이런 모습은 사라지는 중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유네스코에서 세계유산으로

지정함으로 인류의 독특한 방식의 코시키에 대한 보호 정책을 펴는 중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