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르 티무르(Amir Timur)의 도시 사마르칸트

2019. 11. 14. 09:00우즈베키스탄 2019/사마르칸트

의자에 앉아 사마르칸트 시내를 굽어보는 청동 조각상이 있습니다.

이 조각상의 주인공은 바로 티무르(Timur)입니다.

세계사를 통틀어 한시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풍운의 인물이 아닐까요?

 

티무르는 인물에 대해 아주 평가가 상반된 사람이라지요?

오늘은 티무르가 지배자로 시작했고 사랑했던 도시 사마르칸트의 이야기입니다.

티무르 동상 앞에 보이는 아이 러브 사마르칸트라는 사인을 보며

2019년 4월 28일 일요일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침을 숙소에서 먹고 제일 먼저 티무르 청동상이 있다는

사마르칸트 대학교가 있는 곳으로 갑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숙소 대부분은 저렴한 숙박비지만, 아침 식사가 포함되었습니다.

반대로 코카서스 3국의 숙소는 대부분 아침 식사가 불포함이며 별도로 식대를 지불해야만

먹을 수 있는데 비싸더라고요.

 

우리가 알기에 칭기즈칸처럼 몽골계가 이룩한 나라의 지도자를 칸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몽골의 칭기즈칸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했던 중앙아시아의 맹주였던 티무르는

칸(Khan)이 아니라 아미르 티무르(Amir Timur) 또는

에미르 티무르(Emir Timur)라고 부른다네요.

 

옛날에는 카라반이 쉬어가던 작은 오아시스 마을이 지금의 큰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티무르가 이곳을 도읍으로 삼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그 이전인 기원전 8세기경에는 아프로시압(Afrosiyob)이라는

고대 나라가 있기는 했지만요.

 

사마르칸트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이야기되는 인물이 바로

티무르(Timur : 1336년~1405년)가 아닐까요?

티무르라는 말은 강철을 의미하는 말이라 합니다.

따라서 당시에 티무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 돌쇠처럼 많은 사내가

사용했던 흔한 이름이었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티무르의 의미는 돌쇠가 맡네요.

 

사마르칸트가 티무르고 티무르가 사마르칸트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그러나 이곳 사마르칸트에 티무르가 머문 시간은 재위 기간 35년(1370년~ 1405년) 중

겨우 2~3년이었다는 사실.

그는 언제나 말 위에서 세월을 보냈던 정복자의 삶이었다고 하네요.

세상을 정복하는 것은 말 잔등 위지만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출신 자체가 유목민족인 몽골계였기에 한곳에 정착하며 산다는 것이

어울리지는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 싶습니다.

전쟁이 없어 쉴 때도 말 먹이기 좋은 초원을 찾아다녔고 쉬고 난 후는 또 전쟁 길에 나섰고...

그러니 전쟁이란 티무르의 삶이고 인생 최고의 덕으로 삼았을 듯합니다.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아시아는 몽골제국의 칭기즈칸이 휩쓸고 지나간 후

50년간이나 혼란이 지속한 혼돈의 시기였으며 그러던 중 칭기즈칸의 둘째 아들인 차가타이 칸이

이 지역의 새로운 맹주로 서서히 자리 잡은 차가타이한국이 뿌리내리며

새로운 세상을 준비할 시기였다고 하네요.

 

이 시기에 이슬람의 문화가 서서히 유입되면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정착하려는 부류와

보수적인 몽골의 유목 생활을 이어가려는 두 부류로 나누어지며 이 지역의 왕족들마저도

부족민을 이끌며 나누어지기 시작했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으로 나누어지니 나라 자체도 다른 칸을 옹립하며 대립하기 시작했으며

이때 이런 혼란한 시기를 잠재우려고 나타난 인물이 바로 티무르였다고 하네요.

 

그는 이슬람 영향을 받은 몽골 계통의 부족원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소수의 몽골의 후손이 지배계급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다수의 이슬람 세력을

포섭하는 과정에 몽골 출신이 이슬람으로 개종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한다는 속담처럼...

 

예전에는 이름이 있는 집안이었지만, 몰락한 가문으로 젊은 시절 남의 말이나 양을

약탈하는 도적단의 두목으로도 살았다네요.

동서로 나뉘어 서로 다른 칸을 내세우며 대립했던 시기에 동한국의 지도자

투굴루크 티무르 칸을 따라 서한국으로 진격해 잠시나마 통일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티무르는 지방 호족 후세인과 손을 잡고 그가 모셨던 동한국의 칸에 대항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되었고 지금의 타슈켄트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그는 참패하고

말았지만, 마침 그때 사마르칸트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나는 바람에 얼른 말머리를 돌려

사마르칸트로 들어와 수비대와 폭동 세력 모두를 제압하고 사마르칸트를 손안에 넣게 되었답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했다는 의미지요?

 

그러나 마지막까지 연합했던 지방 호족인 후세인과도 다시 대립하게 되었고...

패주하는 후세인의 뒤를 쫓아가 척살해 버리고 만 겁니다.

목적을 위해 그동안 함께 싸웠던 후세인은 도구로 전락하고 만 셈이지요.

 

이렇게 사마르칸트 주민의 지지를 얻은 티무르는 후세인 세력을 쉽게 잠재우고

명실공히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하는 이 부근지역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며

웅비의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아름다운 사마르칸트를 프랜차이저로 삼으면서...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 사냥이 끝나면 그동안 함께 토끼 잡으러 다닌다며 견마지로를 다했던 사냥개는

더는 쓸모가 없어 삶아 먹는다는 말이 아닌가요?

티무르는 후세인을 이렇게 용도폐기해 버렸습니다.

도적 떼의 보스로 살아왔던 자신에게 여동생까지 주며 처남, 매부하고

살갑게 대했던 처남을 이렇게 팽 시켜 버리며 천하를 움켜쥐기 위해 함께 뛰어다니며

디딤돌로 삼았던 처남이 걸림돌이 되었단 말입니까?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