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Khan)이 되지 못한 정복자 아미르 티무르(Amir Timur)

2019. 11. 18. 09:00우즈베키스탄 2019/사마르칸트

태어나 평생을 정복과 출정으로 보냈기에...

그는 정복지에서는 매우 가혹한 행동을 했다네요.

일단 새로운 지역을 침공하면 그곳에 설비된 모든 관계시설을 파괴해

비옥했던 곳을 황무지로 만들고...

 

초토화 작전이 그의 주전술이었다고 합니다.

대항했던 도시의 주민은 무자비하게 살해해 시신으로 탑을 만들고...

특히 페르시아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페르시아로 들어가 주민 모두를 살해하고

성 밖에 시신을 쌓아 산으로 만든 적도...

 

그러나 그런 그도 단 하나...

기술자들만 살려두었답니다.

그는 사마르칸트를 아름답게 꾸미는데 필요한 기술자는 살려두라고 했답니다,

그런 이유로 지금 우리가 이런 대단한 유적으로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늘 이렇게 이야기하며 정복 길에 나섰다고 합니다.

"이제부터 내 말발굽이 닿는 곳은 모두 우리의 땅이다. 먼저 주민이 남긴 흔적은

철저하게 파괴하라. 그리고 그곳에는 아무것도 짓지 마라!!!"

 

티무르는 이란과의 전투에서 오른손과 발을 심하게 다쳐 다리 길이가 5cm 정도 짧아

평생 절름발이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사마르칸트에 있는 그의 청동상도 다리 두 개를 나란히 만들지 않고

하나는 바닥에 내려놓고 다른 하나는 조금 높은 곳에 올려두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절름발이 구르에 아미르라고 불렸답니다.

 

실제 러시아에서 1941년 6월 22일 그의 유해를 러시아로 옮기려고 무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시신의 손과 발이 다쳤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합니다.

무덤에는 "누구든지 내 무덤을 훼손하는 자는 전쟁의 악마가 그 나라에 닥칠 것이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어 러시아는 그의 유해를 꺼내려다가 건드리지 않은 척 얼른 시치미 떼며

무덤 안에 다시 넣어버렸다고 하네요.

 

전쟁이 신인 듯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마치 중국의 오기장군처럼...

제갈공명을 지치게 만들어 죽음으로 몰았던 사마 중달은 지는 전쟁은 하지 않았기에

패한 적이 별로 없기는 하지요.

동로마제국을 침공하려고 했던 당시의 막강한 오스만 제국과의 앙카라 전투에서조차

오스만 제국의 황제 바예지드 1세를 포획할 정도로 전투의 달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랬던 그도 명나라를 치기 위해 출정했던 1404년 겨울이 그의 마지막 출정 길이 되고 말았고

명나라 침공을 계획하게 된 것은 아마도 그가 칭기즈칸의 후예를 자부했기에

필생의 일로 조상인 원나라가 지배했던 중국 본토 정벌이었지 싶습니다.

또 원나라의 복수도 하고 싶었을 것이고요.

 

따라서 명나라로의 침공은 고토 회복이라는 인생 최고의 선으로 생각했고

또 명분도 충분했잖아요.

또 다른 생각은 바로 중국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겠다는 결심 때문이겠지요.

만약 티무르가 중국 정복에 성공해 이슬람으로 개종시켰다면

우리도 지금쯤 모두가 이슬람 신자가 되었을까요?

 

그의 원정길을 막아선 것은 명나라 군사가 아니라 살을 에는 듯한 모진 추위였습니다.

눈보라 속에서 그의 용맹한 병사도 하나둘 얼어 죽기 시작합니다.

설상가상으로 티무르마저도 추위 앞에 병을 얻어 쓰러지고...

전쟁의 달인이 전투 시기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아마추어처럼 이게 뭡니까?

 

이렇게 69세의 티무르는 명나라 출정 길에서 병을 얻었고 생전에 세상을 그의 말발굽 아래

두었지만, 몸 안의 작은 고뿔 하나도 이겨내지 못하고 1405년 2월 18일 숨을 거두었답니다.

세상은 티무르 앞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티무르는 하찮은 고뿔 앞에서

그의 무릎을 꿇고 만 셈입니다.

이 아름다운 사마르칸트를 두고...

 

그는 평생 명예로운 칸이 되지 못한 채 죽었답니다.

칸이란 유목민족의 최고 지도자를 칭하는 말인데 몽골 제국에서는 칭기즈칸의 혈통만이

칸이라는 칭호를 붙인다는데 그래서 티무르는 자신이 스스로 이 규칙을 받아들였고

대신 칭기즈칸의 후손 가운데 하나를 허수아비 칸으로 만들었다지요?

 

더불어 자신은 칭기즈칸의 후손 가문의 여자와 결혼함으로 부족의 흉내는 내게 되었고

그래서 그는 스스로 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꿩 대신 닭이라는 의미로

지도자를 의미하는 아미르(Amir)라는 호칭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구국의 영웅이며 국부로 존경받지만, 침공당한 주변 나라에서는?

당연히 좋은 평가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를 일컬어 너무 잔인한 정벌을 했기에 도살자나 인간 백정으로도 불린다네요.

 

누구나 어디에 서서 바라보냐에 따라 다른 평가가 있을 듯합니다

죽은 후 그의 유해는 고향 땅인 케쉬라는 곳에 안장하려고 했지만, 그가 죽든 해는

이 지역에 엄청난 눈이 내리는 바람에 유해를 운구해 산을 넘을 수 없어 위의 사진에 보이는

사마르칸트 이곳에 임시로 안치했다고 하는데...

임시 유해 안치소가 영원한 안식처가 되고 말았습니다.

 

구르 티무르 즉 티무르 영묘라는 이곳.

우즈베키스탄 국민에게는 신성한 곳이며 누구나 존경해마지 않을 곳이죠.

신성한 장소로 찾아오는 곳이라네요.

코발트색의 돔이 눈길을 끕니다.

마치 즙을 짜는 스퀴저처럼 생긴 돔의 주름이 모두 63개나 된다는데 이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열반에 든 나이가 63세이기에 이렇게 만들었다네요.

 

저 돔을 지은 지 600여 년이 흘렀지만, 처음 만들 때의 화려한 색감은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최근에 만드는 저런 종류의 타일은 얼마 가지 못해 색깔이 바랜다고 하는데...

뭐 보석을 갈아 만들었다나 뭐라나???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가 흔히 티무르가 세운 나라를 그냥 티무르 제국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스스로 칭기즈칸의 후예라고 한다지만, 사실은 다른 부족이라고 하네요.

좌우지간, 칭기즈칸의 후예임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기에 그 조상의 영토를 회복한다는

자부심으로 좌충우돌하며 세상을 전쟁터로 만들었지 싶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세운 나라의 이름을 특별히 정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후세에 이르기를 티무르가 지배했던 시대의 나라 이름을

그냥 티무르 제국이라고 부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