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문명의 길, 실크로드

2019. 10. 12. 09:00우즈베키스탄 2019/히바

히바 성벽은 성벽 위로 걸어볼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듯이 성벽 길은 난간이 없어 조심해야 하겠네요.

이런 모습이 개인적으로 히바는 정돈되지 않은 미완의 고성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올라갈 수 있는 곳은 북문을 나가기 전에 양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입니다.

물론, 올라가는 길이 잘 정돈된 길이 아니라 무너져 내리기 직전의 길이네요.

히바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인데

예산이 없어 이렇게 방치하듯 두었을까요?

 

지금의 히바는 우즈베키스탄 호레즘 주의 도시 중 한 곳입니다.

주도는 우르겐치지만, 히바에 예전 왕궁이 있었기에 역사적으로나 유적으로나

히바가 더 많은 여행객이 모이는 곳이죠.

기독교보다 600년이나 이른 시기에 생긴 조로아스터교의 사원터가 주마 사원으로

남아있고 과거 페르시아의 문명과 이슬람 문명, 그리고 중국의 동양 문명이

모두 이 척박했던 사막 가운데 도시인 히바를 거쳐 지나갔을 겁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성벽 안쪽인 올드타운을 이찬 칼라라고 부르더라고요.

이곳은 러시아독립국가연합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국경이

새로 정해지며 타슈켄트를 비롯한 다른 도시와의 연계 도로가 예전의 도로와는 달리

다시 재편되게 되었다네요.

 

성벽 위를 걸어볼 수 있는 곳은 위의 사진에 보이는 서문과 왕궁이 있는 곳 조금 못 미친

곳으로 이 성벽 길은 무료로 누구나 올라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히바에서 구경거리는 이 성벽을 중심으로 모두 안쪽에 있다는 말이지요.

 

호레즘 주는 아랄해로 흘러 들어가는 아무다리야강 하류에 있으며 남쪽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기다란 형태의 작은 주로 보입니다.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게 된 알지브라라는 책의 저자이며 대수학의 아버지라는

알 콰리즈미의 고향이 바로 히바이며 그의 청동상이 얼마 전까지 서문 입구 옆에

있었다는데 지금은 우르겐치로 옮겨서 더는 볼 수 없더라고요.

 

히바라는 곳은 이미 2천 년 전에 만들어진 도시라고 하며 그 이전부터 주변의 오아시스와

큰 강이 흘러 많은 사람이 자연히 모여들어 살았기에 대단히 큰 거주지였다고 합니다.

또 동서양의 교역로였던 실크로드의 가장 큰 중간 교역 장소 중 하나였으며

대상이 머물다 가는 중간 휴게소이기도 하지요.

 

따라서 대상들과 함께 많은 재화가 이동했기에 늘 주변의 도적과 이웃 나라는 호시탐탐

노리기 때문에 이렇게 성벽을 쌓고 외침에 대비하며 살았다는 의미겠지요.

또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하며 장사하는 대상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면 대상의 이동로가

다른 길로 바뀔 것이며 그들로부터 벌어들이는 돈이 없으면

이곳 주민은 살아가기가 쉽지는 않잖아요.

 

위의 지도를 보니 실크로드는 중국 시안을 떠나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를 지나며 히바를 거치며

북으로 올라가는 노선이 있고 부하라에서 이란의 이스파한을 지나 바그다드와 다마스쿠스를

통과해 남으로 내려가는 코스가 보이고 또 인도를 떠난 코스도 부하라에서 합류하네요.

그러나 어디서 출발했든 대부분 이스탄불로 들어가는 길임을 알 수 있네요.

 

가난한 주민만 있는 지도자란 의미 없는 일이기에 이렇게 성벽을 쌓아 주민은 물론, 대상들의

안전도 책임졌을 것이고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중계무역으로 이문을 남기고 매일 드나드는

대상들의 숙소와 음식을 제공함으로 돈을 벌었으며 이곳 히바는 다른 곳과는 달리

노예시장을 열어 사람을 사고팔며 큰돈을 벌었던 곳이지요.

 

성벽을 처음 보는 순간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유럽의 성들과는 달리

토속적인 냄새가 나는 토성임에 놀라게 됩니다.

어쩌면 이게 바로 진짜 성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사실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고 그 위를 흙을 덮었더라고요.

위의 사진은 집을 지을 때의 그런 형태가 있어 찍은 사진입니다.

아마도 성벽을 포함한 이곳 건축물 대부분은 위의 같은 형태로 지었지 싶습니다.

 

중국의 만리장성을 올랐을 때 느낀 점은 너 죽고 나 살자는 분위기의 방어적이 성벽이라면

이곳의 토성은 뭔가 허술해 보이고 인간적인 토속 미가 흘러 너 살고 나도 같이 살자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은 저만의 느낌이겠지요?

아무래도 성벽의 모양이 부드러워 그랬나 봅니다.

 

예전에는 크지는 않았지만, 히바는 호라즘 왕국과 히바칸국의 도읍으로 부유했지만,

주변의 힘센 나라인 부하라 왕궁에 여러 차례 점령당하기도 했고 페르시아에도

침략을 당하며 살았다네요.

작은 나라는 어디나 그렇게 고통 속에 살아갔을 겁니다.

 

사실, 세상의 풍랑은 언제나 일기 마련이고 히바라는 작은 도시는 큰 바다에 떠 있는 하나의

작은 배에 불과했으며 그렇기에 세상 풍파에 따라 큰 풍랑이 불면 작은 배는 해 볼 도리가

없기에 풍랑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러다 풍랑이 조용해지면, 다시 살아남는 것이고요.

 

히바라는 곳을 다니며 보니 마치 세상의 문명이 이곳에는 비껴 지나간 듯 예전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민속촌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네요.

따라서 올드타운을 중심에 있는 이찬칼라(Itchan Kala)라는 곳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고 합니다.

 

올드타운 대부분은 18세기에 거의 완공되었으며 19세기에 재건설된 50개 이상의 건축물이

그때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이 바로 누에에서 뽑은 실로 물감을 들여 사용하려는 실크사입니다.

 

이런 곳이기에 이 올드타운을 걷는다는 일은 몇 세기를 뛰어넘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기분이 드네요.

또 올드타운 안에는 250개가 넘는 고택이 즐비합니다.

그 하나하나가 마치 짓다가 만 토담집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찬 칼라 안에서 보았던 무덤입니다.아마도 종교 지도자나 이 지역에서

행세나 했던 사람들의 무덤으로 보입니다.

성벽 안팎으로도 많은 흙무덤을 보았듯이 히바는 산 자와 죽은 자가

시공을 초월해 함께 있는 듯합니다.

지금 우리가 우즈베키스탄 여행에서 들러볼 곳은 모두 이런 형태의 도시들입니다.

옛날에 대상이 낙타를 끌고 지나다녔던 그런 도시 말입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오아시스 자리는 부근에 숙소도 많았을 겁니다.

오늘 구경하고 있는 히바 또한 마찬가지라네요.

1920년 볼셰비키로 인해 히바 왕국이 무너질 때까지 이 지역을 다스렸던 칸의

거주지였다고 하며 그때 이곳 우즈베키스탄에는 칸이 지배했던 모두 세 개의 왕국이 있었다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그러나 그후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곳은 전혀 변화가 없는 듯 보입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그런 느낌이 강한 곳이었습니다.

히바의 이찬 칼라라는 곳은 구시가지가 마치 박물관처럼 생각되는 곳이었습니다.

옛 영화를 그리워하기에 이곳에 사는 주민은 그때 모습으로 살아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