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30. 09:00ㆍ발칸반도·모스크바 2018/크로아티아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두브로브니크의 최전성기는 아마도 라구나 공국 시절이었지
싶고 그때는 해상무역을 통해 아드리아해를 통해 유럽으로 향하는 많은 배가
이곳을 거쳐야만 했지 싶은데 마치 중세 이전에 동서양의 교역이 육로인 실크로드를
통해 오스만 튀르크의 이스탄불을 거쳐야만 했듯이...
오늘은 이곳의 젖줄이었던 항구를 위주로 구경하려고 합니다.
필레 문을 들어와 플라차 대로를 걸어 막다른 곳에 도착하면 오른쪽으로는
성 블라호 성당이 보이고 그 끝으로는 대성당이 보입니다.
왼쪽에 스폰자 궁이 보이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도미니크 수도원을 지나
성벽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직진을 하면 두브로브니크의 옛 항구(Old Port)로 나가는 폰타 문(Ponta
gate)이 있고 광장을 벗어나 종탑 아래로 난 문을 빠져나가면 항구가 보입니다.
옛날 라구사 공국 시절에는 이곳이 해상 무역의 근거지로
엄청난 재화를 끌어모은 곳이라지요.
지금은 그냥 작은 항구로 주로 유람선 투어를 하는 관광객이 타고 내리는
그런 곳이 되었는데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대량으로 돈을 버는 그런 장소임에는
분명한데 지금 크루즈선 등 많은 배는 이곳이 아니라 새로 만든
여객선 터미널에서 운행하더라고요.
항구를 끼고 오른쪽으로 계속 나가면 요새 부두 끝에 위의 사진처럼 붉은색 등대가
보이는데 포포렐라라고 부른다네요.
이곳이 걸어갈 수 있는 막다른 곳이네요.
등대는 예쁘지만, 그 앞에 위의 사진처럼 무식하게 크고 우람하게 생긴
성 요한 요새가 있는데 이 요새의 역할은 마치 항구로 들어오는 배를 감시하고
겁을 주려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고 이 요새 위에는 해양박물관이 있더라고요.
건너편에는 레벨린 요새가 보이는데 성 요한 요새와 더불어 두브로브니크를
지키는 수호신의 임무를 맡고 있는 듯합니다.
이 부두에는 주변 섬으로 오가는 배를 탈 수 있고 투어를 할 수 있는 배도 있네요.
건너편에 붉은색 지붕이 길게 보이는 건물이 세계 최초의 검역소가 있던 곳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성 외곽에 검역소를 둔 이유는 미리 항구로 들어오기 전에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겠지요.
무역으로 먹고살았던 라구사 공국에서는 외국과의 빈번한 교류는 필수잖아요.
그렇다고 무조건 차단할 수는 없고...
궁여지책으로 이렇게 예방목적의 검역소를 만들었나 봅니다.
만약 병이 있는 사람이 두브로브니크에 들어오려면 이곳 검역소에서 40일을
머물어야만 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격리를 뜻하는 단어인 쿼런틴(Quarantine)이라는
단어는 바로 40일이라는 의미인 쿼런타 조르니(Quaranta giorni)에서 유래했다지요?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을 휩쓴 흑사병의 시작이 이곳에서부터였다고 합니다.
이는 해상무역을 통해 크림에서 발생했던 흑사병이 이곳에 정박했던 선원을 통해
이곳에 제일 먼저 전해졌고 계속 북상하며 전 유럽으로 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검역소 설치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또 이때 발생한 노인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요양원을 만들었고...
이 일로 인해 유럽의 인구가 급감하며 유럽의 공중위생이
발전하게 되었다니 말입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로크룸 부두에서 보면 세 개의 커다란 아치 모양으로 생긴
큰 건물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은 아르세날(Arsenal)이라는 곳으로 예전에 배를 만들던
곳으로 이곳이 지금은 아르세날이라는 레스토랑으로 사용되지만,
예전에는 배를 만들던 조선소였다네요.
예전에 세관 역할을 했던 관세청이었던 곳은 지금은 스폰자 궁이라고 부르더라고요.
16세기에 만들었지만, 1667년 이곳에 닥친 지진에서도 그대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로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건너편에는 검역소로 사용되었던 옛 건물도 그대로고요.
종탑이 보이는데 종탑이 어느 건물에 속해있는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스폰자 궁에 소속이라네요.
53m나 되는 제법 높은 종탑입니다.
그러나 지진이 나며 이곳에 있는 종탑은 사라지고 지금의 새로운 종탑을 세웠다고 하네요.
종의 무게가 2톤이나 된다네요.
지금도 매시간 종을 울리는데...
올려다보면 두 사람이 해머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군인의 모습으로 두 사람을 각각 마로와 바로라고 부른답니다.
유럽의 이런 종탑에 종을 치는 조각을 이슬람인으로 만든 곳이 많더라고요.
이는 십자군 전쟁을 하며 서로 적으로 싸웠던 사이라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요?
밀라노의 조각가로 유명한 보니노가 만든 조각상으로 두브로브니크 공공장소에
세운 조각상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합니다.
시계탑을 보면 제일 위에 종이 달려있고 그 아래 밤낮을 구분하는 둥근 원판이 보입니다.
그 아래는 로마 숫자로 시각을 표시했는데...
이것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인가요?
시각을 알리는 역할을 하며 동시에 예전에는 라구사 공화국 시절에는
의회를 소집하거나 화재나 외침을 알리는 경보의 의미로 종을 울렸다고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라구사 공화국은 1238년부터 50세 이상의 귀족 중 한 명을 선출해, 한 달 동안
렉터의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네요.
비록 귀족 중 한 명을 선출해, 한 달 동안 지도자 업무를 맡겼지만, 종신제나
세습제가 아닌 선출직으로 지도자를 선출했다고 하니 민주주의의 기틀은
이른 시기에 마련했다는 말이지 싶습니다.
렉터에 선출된 사람은 렉터 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궁 안에 머물며
오직 시민을 위한 업무만 보아야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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