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 덩어리 두브로브니크의 마지막 이야기

2019. 9. 3. 09:00발칸반도·모스크바 2018/크로아티아

그동안 두브로브니크에 머무르며 여기저기 다니며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구경하며 다녔습니다.

정말 많은 여행자가 찾는 곳이라는 것을 확인했네요.

그 때문에 물가도 무척 높다는 것도 경험해 보았고요.

 

지금 두브로브니크는 라구사 공국 이후 가장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엄청나게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올드타운은 발을 디딜 틈도 없을 지경입니다.

 

그러다 보니 서유럽보다도 절대로 저렴하지 않은 물가 때문에 관광객을 상대로 하지 않은

이 지역 주민조차 힘들다고 하네요.

그러니 지금 제2의 황금기인 셈입니다.

따라서 올드타운 안의 숙박비는 물론, 모든 물가가 상상외로 비싸더라고요.

 

부자 망해도 10년은 간다고 했나요?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나라가 사라졌고 유고연방 해체 과정에 세르비아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두브로브니크...

그러나 지금의 두브로브니크는 굴뚝 없는 공장이라는 관광산업의 호조로

대단히 화려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곳이 이렇게 화려하게 꾸미고 살았던 이유는 바로 중세에 이곳을 지배했던

라구사 공국이라는 도시 국가가있어 해상 중계무역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네요.

중세는 바다를 통한 해양무역이 발달하기 시작한 시기로

줄만 잘 서면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기 쉬운 시기였다고 합니다.

 

이탈리아도 중세에는 무역으로 떼돈을 벌었던 피사, 제노바, 베네치아

그리고 아말피라는 4대 해양국가가 있었지만요.

그러나 지리적으로 이곳은 위로부터 강력한 해상 중계무역 도시국가인 베네치아 공국이

있었고 지중해를 중심으로는 오스만 튀르크라는 강대국이 있었잖아요.

 

그러니 중간에 있는 라구사 공국은 내내 줄타기를 잘해야 하는 입장이었을 겁니다.

얼마나 양쪽 눈치를 보면 줄타기를 잘했는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모습이 그 결과가 아니겠어요?

 

이렇게 외교적으로 교묘하게 버텼고 해상 무역을 통해 부를 움켜잡았어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나 봅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라구사 공국도 1667년 이곳에서 일어난 지진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겠지요.

이 자연재해가 오늘의 두브로브니크에는 첫 번째 태클이었을 겁니다.

 

여기뿐 아니라 아드리아해를 끼고 많은 지역이 베네치아 공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오히려 두브로브니크는 베네치아 공국의 지배를 축복으로 생각하고 이들의 해상무역 방법을

습득해 나중에는 베네치아보다 더 월등한 해상무역 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네요.

 

청출어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전성기에는 200여 척의 범선이 조직될 만큼 대단한 위력을 떨쳤다네요.

이렇게 세를 키워 이집트로부터 시작해 스페인이나 오스만 튀르크까지 아드리아해와

지중해를 아우르며 발칸반도와 유럽을 잇는 중계무역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합니다.

 

베네치아 입장에서는 고양이를 키우려고 했는데 호랑이가 된 셈인가요?

무력보다는 화해와 실리를 추구하는 등거리 외교로 그렇게 배알도 없이 살았기에

오래도록 그 세를 유지했지 싶기도 합니다.

주변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나라의 처세술이라고 할까요?

 

그때 한창 잘나갔던 시절의 모습을 해양박물관이라는 곳에 가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전시물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해양박물관의 위치는 성벽 길을 걷다 보면 성 이반 요새가 있는데 그 안에 있습니다.

성벽 입장권을 가지고 있으면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죠.

 

라구사 공국이 해상 무역으로 돈을 번 곳이기에 당시의 항해에 관한

많은 자료와 사용했던 기자재가 전시 중입니다.

그뿐 아니라 도시의 기원부터 라구사 공국의 소멸,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두브로브니크의 역사도 볼 수 있는 곳이죠.

 

화해와 실리를 추구했던 이들의 시민의식이 무역으로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노예 매매를 금지했고 유럽에서는 제일 먼저 노예제도를 폐지했다지요?

또한 14세기에 세계 최초로 검역원을 두어 외국과의 무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질병 예방에 관심을 두기도 했다네요.

 

두브로브니크는 가장 오래된 약국은 물론, 양로원이나 고아원도 일찍 운영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런 화려하고도 체계적인 문명은 지진으로 인한 자연재해가 앞을 가로막고 말았다네요.

 

재건 과장에서 많은 지출이 있었고 힘든 시기를 보내 다시 발판을 마련했지만,

1808년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라구사 공국은 영원히 사라지도 만 셈이네요.

그 후 유고연방의 해체 과정에 세르비아의 공격을 받아 많은 희생을 치르기도 했고요,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른 두브로브니크는 여행자의 이목을 끌만한 많은

구경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 이곳이 이렇게 인기 있는 여행지가 되었을까요?

그 해답은 직접 이곳을 찾아 하나씩 경험해 보고 매력 덩어리를 느껴보시면

 저절로 알게 되지 싶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두브로브니크에 관한 매력적인 유튜브 동영상이 있어 여기에 연결해 봅니다.

시간이 나시면 깨끗한 화질의 영상을 즐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