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11. 09:00ㆍ발칸반도·모스크바 2018/보스니아
두 손 모아 누구를 애타게 부르는 모습일까요?
이 모습은 아버지가 건너편에 있는 아들을 향해 소리치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바로 보스니아 내전 당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표현한 것이라네요.
당시 아버지 Ramo가 그의 아들 Nermin을 부르는 실제 모습으로 이때 아버지는 건너편에
세르비아군에 포위당한 지역에 있는 어린 아들에게 그대로 있으면
세르비아군이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고 소리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2008년 스레브레니차 근처의 집단학살자 무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시체로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당시 희생당한 어린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꾸민 추모조형물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죽은 어린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꽃을 바쳤네요.
아무리 많은 꽃을 바친다고 위로받을 수 있을까요?
당시 희생당한 어린아이들의 나이를 보면 갓 태어난 유아도 보입니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이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이 공원은 주로 스레브레니차(srebrenica) 학살 사건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내전 당시 유엔이 안전지역으로 선포한 피난민 집단 거주지인
스레브레니차 지역을 세르비아군이 경고도 없이 침공해 그곳에 있던 7.500명의
이슬람 신도를 인종청소 목적으로 학살한 사건이라고 하네요.
스레브레니차 지역은 지금은 세르비아계의 스릅스카 공화국 영토로
세르비아 국경 근처에 있는 마을이라고 합니다.
이런 잔인한 학살로 말미암아 나치 전범을 재판한 독일 뉴른베르크 재판 이후 유럽에서는
처음으로 전범 재판소가 열렸던 사건으로 당시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사령관이었던
크르스티치는 46년형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건입니다.
이를 유럽의 킬링필드니 인종청소니 하는 말로 전해오는 데 이 지역의 안전을 책임진
네덜란드 군인 400명이 마을에 주둔하고 있었으나 막지 못했다고 합니다.
막지 못한 게 아니라 막지 않은 것이겠지요.
당시 학살에 참여한 세르비아계 지도자 대부분은 종전 후 숨어들어 아직도 잡히지 않고 있다네요.
아마도 지금의 스릅스카 공화국 어딘가에 숨어 지내겠지요.
이 때문에 2002년 네덜란드 내각이 학살사건을 못 본 척했던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진 사건이랍니다.
이런 사건이 어디 이곳뿐이겠어요?
이와 비슷한 학살사건이 보스니아 곳곳에서 벌어졌고 아직도 발굴되지 못한 유해가 많다고 하니...
이 학살 사건은 저격수의 거리와 더불어 어린아이를 포함한 민간인에 대한
최악의 사건으로 불린다네요.
그러면 저격수의 거리란 또 어떤 곳일까요?
눈앞에 보이는 강렬한 색깔의 호텔.
홀리데이 호텔로 1984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마크도 붙어있네요.
이 호텔이 유명한 것은 바로 보스니아 내전 때문이랍니다.
내전 당시에 사라예보에 변변한 호텔조차 없었기에 이 호텔이 가장 큰 호텔로 외신기자들의
숙소 겸 사무실로 사용되었답니다.
그러나 워낙 시내는 교전이 수시로 일어나는 내전 상황이라 함부로 밖으로 외출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세르비아계는 거리로 나온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저격했기에 이 호텔이 있는
길거리에서조차 총알이 날아다니고...
바로 지금 위의 사진에서 보고 계시는 도로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당시의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건물이고요.
이 호텔에 머물던 외신 기자에게 이 근방에 있는 큰 건물이나 건너편 산속에 숨어있던
저격병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길거리로 나오는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조준 저격하는
모습을 이 호텔에 머물고 있던 기자가 똑똑히 보았고 그 내용은 그대로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타전되었다고 하네요.
당시의 저격 때 생겼던 총탄 자국이 지금도 이 동네의 건물 벽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물론, 많은 건물이 새롭게 지어졌지만, 아직도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건물에 눈에 보입니다.
지금 바로 앞에 보이는 산 너머가 현재 세르비아계의 스릅스카 공화국입니다.
영토는 보스니아지만, 그곳에 사는 주민은 세르비아계로 보스니아로부터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호텔 주변에는 '저격수 조심'이라는 팻말이 붙었고 그래서 이 호텔 주변의 길을
저격수의 거리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이 거리에서만 220명 이상의 사라예보 시민이
사망했으며 1.000명 이상이 총상을 입는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중 어린아이가 6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총성이 울려 퍼진 상황에서도 시민들은 집안에만 있지 못하고 살아남으려고
물과 식량을 구하기 위해 나올 수밖에 없었다네요.
목숨을 건 외출이었고 무차별 저격이 일어났던 거리라고 합니다.
또 지금의 사라예보 공항에는 전쟁박물관이 있는데 그곳에 사라예보 터널(Sarajevo Tunnel)
이라는 지하 터널이 있다고 합니다.
그 터널을 희망 터널이라고 부른다는데 그 이유가 바로 내전 당시 시 외곽을 장악한 세르비아계의
눈을 피해 외국 구호단체들로부터 생필품을 터널을 통해 몰래 공급받았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고 하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겨우 800여m에 불과한 터널이지만, 이들에게는 희망이요.
삶과 생명의 터널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건은 다시는 없었으면 합니다.
어제의 이웃이 오늘의 적이 되어 총부리를 겨누는 그런 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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