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간이나 불발탄을 품었던 피의 사원

2019. 1. 7. 09:00동유럽, 발트3국, 러시아 2017/상트페테르부르크

우리가 구경하는 피의 구세주 성당의 모형입니다.

세상에 이런 모습의 아름다운 성당은 러시아만의 독특한 건축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은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렵니다.

지금은 성당으로 사용되지 않고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답니다.

 

피의 구세주 성당으로 들어가려면 성인은 250 루블/1인의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있는데 200루블을 더 내야 합니다.

우리 돈으로 각각 5천 원, 4천 원 정도 되네요.

 

훗날 황제에 등극한 알렉산드르 2세의 아들 알렉산드르 3세는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바로 아버지가 폭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던 그 자리에 성당을 지어 봉헌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있는 성 바실리 대성당(Храм Василия Блаженного) 모델로 하여

지었기 때문에 쌍둥이 건물로 보이죠.

 

아버지가 죽은 지 2년이 지난 1883년부터 짓기 시작해 1907년까지 24년간에 걸쳐 지었다 합니다.

알프레도 팔란다와 이그나타의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답니다.

특히 다섯 개의 돔은 백미라고 할 수 있죠.

 

특이한 형태의 성당 외부도 아름답지만, 성당 내부를 장식한 모자이크는 화려함의 극치라고 할 수 있죠.

성당 안에는 유명한 화가나 조각가의 작품이 무척 많이 있습니다.

특히 모자이크화는 세상 어느 곳에 있는 모자이크 화보다 아름답고 깊이가 있는 월등한 작품이라고 생각되네요.

 

모자이크의 도시라는 이탈리아 라벤나의 작품과 비교해도 절대로 뒤지지 않습니다.

또 현란한 솜씨의 프레스코화도 우리 눈을 사로잡습니다.

 

이 성당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투하한 폭탄이 지붕 가장 높은 곳인 돔에 떨어졌답니다.

다행스럽게도 폭탄은 불발탄으로 터지지 않았기에 돔 일부만 부서지고 말았다네요.

그런데 이곳에서는 성당에 폭탄이 떨어진 지도 모르고 있었다네요.

그 때문에 폭탄이 성당 돔 안에 19년 동안이나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제거되었지만...

 

아무리 몰라도 그렇지요.

어떻게 19년 동안이나 모를 수 있었을까요?

19년이 지난 후 지붕 수리를 위해 올라갔던 지붕 수리공이 위의 사진에 보듯이 불발탄을 발견하고는

대경실색하고 그대로 내려와 알림으로 세상에 폭탄의 존재가 알려졌다고 합니다.

 

사원의 높이는 총 81m에 이르고 이 숫자가 갖는 의미는 알렉산드르 2세의 죽은 해인 1881년을 의미한답니다.

수용인원은 역 1600명 정도라 합니다.

러시아에서는 유일하게 국가 지도자가 죽은 장소에 설립한 성당이라 하네요.

 

차르가 사망하자마자 처음에는 바로 그 자리에 예배당을 설치함으로

이 장소는 그때부터 소중한 장소로 보존되었다네요.

약 3년간 임시 예배당으로 보존하다가 본격적으로 1883년부터 1907년까지 24년간 공사 끝에 완공되었답니다.

황제는 폭탄을 맞아 숨졌고 성당은 폭탄을 품고 있었고...

 

차르가 사망한 장소를 보존하기 위해 운하의 일부를 매워 성당 부지로 사용함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은 그 기형적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겠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지만, 그 안에 있는 이야기는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알렉산드르 2세는 무척 많은 일을 한 군주로 특히 해방자 알렉산드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네요.

아마도 그때까지 농노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살아왔던 많은 사람을 해방한 농노해방령 때문이지 싶습니다.

법률 제도를 제정비하고 지역 재판관을 선출제로 바꾸는 등 당시로는 파격적인 행보를 했던 인물이었네요.

그러나 지금의 미국영토인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았던 인물로도 유명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