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백조라 불리는 카우나스 구시청사

2018. 5. 29. 09:00동유럽, 발트3국, 러시아 2017/리투아니아

카우나스 여행의 중심은 바로 구시가지겠죠?

오늘은 유럽 어디나 구시가지는 중앙광장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위의 사진은 16세기에 지은 구시청사 건물(Kaunas Town Hall/Kauno rotušė)입니다.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된 건물로 백색 이미지 때문에 하얀 백조라고 부른답니다.

백조로 보이십니까?

날씨가 맑았더라면 더 밝게 보여 백조라고 우기겠지만,

오후로 접어들며 구름이 잔뜩 끼어버렸습니다.

유럽 대부분의 성당은 마치 화재를 만난 듯 검게 그을린 모습이라

이곳을 하얀 백조라고 불러도 좋지 싶습니다.

 

1542년 최초로 이 자리에 들어선 이래 성당, 감옥 등 여러 가지 기능으로 바뀌어

내려오다가 18세기 말에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합니다.

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감옥으로 사용하다니...

 

현재는 아주 특별하게도 결혼식장으로 사용되고 있어, 주말에는 백색의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신혼부부들과 들러리들로 주변 광장이 가득 찬다고 하네요.

그러니 지금은 가끔 결혼식이나 하는 그저 그런 장소라고 하네요.

 

이곳은 구시가지의 중심인데 분위기가 썰렁합니다.

건물 아래에 유리로 덮은 곳을 내려다보니 아마도 예전에 시청사 건물을 지을 때의

주춧돌이 보이네요.

그러니 지금의 건물은 한번 파괴되어 다시 지었다는 말이 아닐까요?

 

오늘은  관광객조차도 별로 보이지 않고...

주변 모습도 그리 인상적인 게 보이지 않아서이겠지요?

 

하얀 백조로 불리는 구시청사 건물 뒤로 돌아가면 어느 집 답장에 만든 조형물입니다.

개미와 베짱이 그리고 가재가 보입니다.

우리 눈에도 아주 친근한 곤충이죠?

개미와 베짱이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기 때문이 아닌가요?

 

바로 이 집이 인형 에니메이션을 처음으로 만든 라디슬라스 스타레비치(Ladislas starewitch)라는

사람을 기리는 박물관이라 합니다.

그는 러시아 출생으로 세상에서 처음으로 인형 애니메이션을 만든 예술인이라 하네요.

대단한 인물이네요.

 

그 옆에 집은 Tadas daugirdas의 박물관이 붙어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사망했고 국적은 폴란드로

아주 복잡한 이력을 지닌 사실주의 화가라네요.

 

공부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독일 뮌헨 아카데미를 수료했다고 합니다.

그의 삶은 당시 그가 생존해 활동했던 시기의 혼란한 유럽 사회를

그대로 볼 수 있는 듯합니다.

 

이번에 보이는 석상은 Motiejus Valancius 주교의 모습입니다.

이곳 대성당의 신부로 재직하며 구소련이 강압적으로 리투아니아어를 금지했을 때

이에 굴하지 않고 지하 학교를 운영하며 리투아니아어를 가르쳤으며 책도 리투아니아어로

출간하며 자국 언어를 보존하는 데 앞장섰다 합니다.

 

보행자 전용 지하도가 보이는 위의 사진은 카우나스의 랜드마크인

자유로와 빌뉴스 거리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두 개의 흰 선은 여러분의 짐작대로 자전거 전용길입니다.

 

이제 자유로를 따라 다시 숙소가 있는 동쪽 끝으로 걸어갑니다.

자유로 중간쯤 비타우타스 대공의 청동상이 서 있네요.

이 사람이 바로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존경받고 있는 대공 중 한 사람이라 합니다.

 

우리는 이미 트라카이를 방문했을 때 트라카이 성주였던 

비타우타스를 만나 본 적이 있지요?

그는 리투아니아와 루테니아를 주로 포함하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지도자였지요.

그의 업적은 지금의 리투아니아가 있게 만든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리투아니아-폴란드 연합국이 독일 튜튼 기사단들과 대항해 싸운 타넨베르크 전투

(리투아니아어로 잘기리스 Žalgiris,폴란드어로는 그룬발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전투를 이끈 리투아니아 최후의 대공작 비타우타스트라카이 성에서

7일 동안 화려한 연회를 개최했다고 알려졌지요.

 

당시 전투는 막강한 독일의 튜튼 기사단에 맞서 체코와 몰다비아 군대 25.000여 명을 이끈

비타우타스와 사촌간인 폴란드 왕인 요가일라가 이끄는 폴란드, 루테니아와 타타르 군이

연합하여 그동안 약 200여 년간이나 이들을 괴롭혔던 게르만 기사단인 튜튼 기사단을

그룬발트 전투에서 궤멸시킴으로 나라가 안정되어 동방 진출이 용이해짐으로

큰 영토를 거느리는 나라가 되었다네요.

 

 리투아니아인들이 가장 추앙하는 역사적 인물인 비타우타스는

바로 트라카이 성에서 생을 마쳤답니다.

그러나 그의 동상은 이곳 카우나스에 세워졌으며 그에게 헌정하는 성당 또한 카우나스

구시가지 페루쿠니스의 집 건너편 네무나스(Nemunas) 강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어디 성당뿐인가?

그가 죽은 지 500년 기념일을 기념하여 비타우타스 마그누스 대학(Vytautas Magnus

University)이 이곳 카우나스에 설립되었답니다.

이렇게 사람의 이름을 따서 대학 이름이 정해졌다는 의미는 이들 리투아니아 사람에게

비타우스 대공이 얼마나 대단한 존경의 대상인가 알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