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와지엔키 공원(Łazienki Królewskie)

2018. 3. 7. 09:00동유럽, 발트3국, 러시아 2017/폴란드

Ujazdowskie도로가 끝나는 부근에 왼쪽으로 큰 공원이 보입니다.

이 공원이 오늘 우리의 목적지 와지엔키 공원(Łazienki Królewskie)입니다.

와지엔키란 말은 목욕탕이라는 의미라 합니다.

 

신세계 도로는 구시가지 광장인 잠코비 광장으로부터 곧장 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코페르니쿠스 동상이 보이는데 그곳에서 시작하는 도로라고 합니다.

 

이 도로는 바르샤바의 유행을 선도하는 거리라 합니다.

우리로 치면 명동 정도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늘 젊은이들이 북적거린다고 하네요.

 

공원 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호수가 보이고 저 멀리 대단히 큰 조형물이 보입니다.

첫눈에 보면 흉측스러운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더 흉측스럽네요.

 

한 사내가 앉아있는데 그렇네요.

쇼팽이 호수 건너편에 앉아 들어오는 사람을 외면하고 있어요.

그래서 쇼팽의 시선을 따라 그 방향으로 눈길을 돌려보니 관광객이 모여 단체 사진을 찍습니다.

아마도 쇼팽은 이렇게 자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이제는 유명해졌구나 하며 기뻐하겠네요.

 

그런데 조각의 모습이 난해합니다.

수양버들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태풍이라도 부는 모습으로 보이고요.

누구는 보리수나무 아래 쇼팽이 앉아있는 모습이라고도 합니다.

 

보는 사람 마음대로 하라는 말인가요?

초현실주의 작품도 아니고...

이곳에서는 공연장도 갖추고 있어 5월부터 9월 사이에는 매주 일요일 정오와 4시에

무료 피아노 콘서트가 열린답니다.

 

그런데 쇼팽이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면 조금 더 가면 나무 아래 또 하나의 흉상이

있는데 작고 초라하게 너무 대조적이네요.

황당해하는 모습으로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의 흉상이 있습니다.

국적이 달라 그런가요?

죽어서도 이렇게 차별해도 되나요?

난감해 하며 땀을 흘리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와지엔키 공원은 1766년부터 폴란드 마지막 왕인 타니스와프 아우구스트 포니아톱스키

(Poniatowski)의에 따라서 30년간이나 만들어진 공원이라 하네요.

원래 이곳은 목욕탕이 있어 왕족이나 귀족이 사냥을 마친 후

이곳에 모여 목욕을 했다고 한 곳이라네요.

 

그래서 공원 이름이 목욕탕이라는 의미인 와지엔키 공원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는 폴란드 왕국의 마지막 왕으로 몰락해가는 나라를 바라보며 자신의 무력함을

달래 보려고 이렇게 공원 가꾸는 일에 몰두했나 봅니다.

사라져 가는 나라를 보며 정말 암울한 세상을 살았지 싶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남성 편력이 화려했던 러시아의 여황제 예카테리나 2세의 젊은

연인으로서 그녀의 후광으로 왕이 된 그였기에 더 그랬을지 모릅니다.

그가 재위했을 때 주변의 강대국인 러시아, 오스트리아 그리고 프로이센 3국이 폴란드를

나누어 통치함으로 지구 상에서 폴란드라는 나라는 사라지고 마는 불운한 일을 겪었답니다.

결국,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의 삼국에 의하여 분할되는 것을 막지 못하고,

1795년 예카테리나 2세로부터 폴란드 분할 문서의 조인을 강요당한 후에 퇴위하여,

1798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자괴감을 무척 많이 느꼈을 그런 사내였나 봅니다.

 

만약, 그런 처지에 놓이면 누구나 답답한 심정을 밖으로 표현할 수 없어

어떤 일이건 몰두하지 싶기도 하네요.

격렬하게 어떤 일에 몰두해보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랬기에 지금은 아주 멋진 공원이 되었네요.

 

일반적으로 숲과 꽃으로만 가꾸지 않고 호수도 만들고 수로도 만들었습니다.

물 위에 두둥실 떠 오른 수상 궁전도 만들었고요.

장미 정원, 식물원, 노천극장 등 다양한 모습으로 가꾸었습니다.

 

공원의 동쪽에는 귀족들이 수렵 휴식을 취하던 레스트 하우스와 위의 사진에 보이는

화이트 하우스가 있습니다.

금세기 초의 유명한 폴란드 피아니스트이자 총리였던 파데레프스키의 박물관도 이곳에

있고 또한, 남쪽에는 식물원과 함께 야외극장 등이 있어 제법 구경거리가 많습니다.

 

더 아래로 내려가면 위의 지도에서 보듯 빌라노프 궁전이 있다고 하네요.

그곳은 이슬람의 공격으로부터 유럽 문명을 지켜냈다고 하는 얀 소비에스키 3세의 여름 별궁이라

하며 그의 부인이 바로 프랑스 왕가 출신이었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베르사유 궁전을

흉내 내 화려하게 지었다네요.

시내에서는 제법 떨어져 있기에 오히려 전쟁의 화를 입지 않아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

곳이라 하고 정원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감기 기운이 심해지는 바람에

이곳은 가지 못했습니다.

 

위의 그림은 로마에 있는 바티칸 박물관 소비에스키 갤러리에 전시된 그림입니다.

당시 이슬람의 침공에 풍전등화 같은 유럽을 구한 내용을 그린 그림입니다.

폴란드 출신 화가 얀 마테이코가 그린 그림으로 1683년 폴란드 왕 얀 3세 소비에스키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맞닥뜨린 오스만 튀르크와의 전투 장면을 화폭에 옮겼다네요.

 

워낙 대작이라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당시 오스만 튀르크는 파죽지세로 유럽의 중심부를 향해 15만 대군을 이끌고 들어왔다

하는데 전쟁에 패하면 십자군 전쟁 이후 두 세력의 대결에서 이제 가톨릭은 머지않아

모슬렘의 지배 아래 있게 되는 절체절명의 시기였겠지요.

오스만 튀르크 재상 카라 무스타파 파샤가 이끄는 용맹한 이슬람군은

비엔나 가까이까지 들이닥칩니다.

 

두 세력이 대치하던 중 저녁을 틈타 선제공격을 가해 중앙을 뚫어버리니 전투 시작

한 시간 만에 튀르크 진영은 우왕좌왕...

싱겁게 적은 궤멸 하여 버림으로 이제 가톨릭은 더는 모슬렘의 시달림을 받지 않게

되었다 하며 그는 군인으로서 많은 전투에 참전해 혁혁한 성과를 거두며 국민의 인기를 얻어

결국 선거를 통해 폴란드-리투아니아 왕으로 선출된 능력도 있고

인기도 많았던 입지전적인 인물이랍니다.

 

한때 젊은 시절 오스만 제국에 대사를 지내기도 했던 그였기에 적을 너무도 잘 알았을까요?

그때 오스만 제국의 언어를 배우고 오스만 군의 군사 전술을 공부했다 합니다.

그런 경험이 나라를 구하고 기독교 세력이 모슬렘 세력의 지배를 받지 않게 하였고

결국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 왕으로까지 선출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얼마나 뛰어난 왕이었으면 적이었던 오스만 튀르크에서도

그를 레흐스탄의 사자라고 불렀을까요?
오늘 구경했던 곳의 위성지도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제 내일은 바르샤바를 떠나 리투아니아 수도인 빌뉴스로 갑니다.

원래 이번 여행을 계획할 때 여행의 목적지가 발트 삼국이었습니다.

그 발트 삼국의 첫 번째 나라인 리투아니아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