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관광의 중심 구시가지 광장(Old Town Square)에 서서

2017. 10. 30. 09:00동유럽, 발트3국, 러시아 2017/체코

 

화약탑에서 출발해 천문 시계탑이 있는 구시가지 중심광장을 지나 카를교를 거쳐

프라하성에 이르는 길은 왕의 길이라 불렀다지요?

프라하 뿐 아니라 체코에서는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길이라는 말이겠죠.

위에 보이는 탑이 화약탑으로 카를교 교탑을 기본으로 만들었기에 모양이 비슷합니다.

 

 

구시가지는 구시청사를 중심으로 프라하의 핵심이고 가장 오래된 곳 중 한 곳일 겁니다.

이곳은 구시청사는 물론, 얀 후스 군상, 틴 성당, 성 미쿨라셰 성당 등 구시가지 광장을

중심으로 모두 볼 수 있는 곳이죠.

 

 

아마도 프라하 관광의 핵심이며 출발점이자 마무리하는 곳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워낙 다양한 건물이 많기에 또 다른 말로 건축 백화점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곳이죠.

카를교와 더불어 가장 많은 여행자가 붐비는 곳이지 싶습니다.

 

 

카를 교 건너 프라하성은 권력과 정치의 중심이라면 여기는 민초의 삶이

끈적하게 스며든 삶의 현장이고 경제의 중심이라 해도 되겠지요?

위의 사진을 보니 이제는 한국 컵라면까지 파는 가게도 보입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 이곳은 트램이나 버스가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곳으로 오려면 걸어와야 하겠지요.

 

 

이곳의 특징은 광장으로 중심으로 프라하에서 가장 다양한 건축물을 구경할 수

있다는데 시대에 따른 고딕식이나 로코코식 또는 바로크식 등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이 말은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진 건물이라는 말이겠죠?

 

 

그러니 건축양식의 백화점과도 같은 곳이겠지요.

오늘은 이런 건축 양식에 따른 건물 위주로 구경하려고 합니다.

뭐 아니면 어떻습니까?

 

 

구시가지 광장은 프라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라죠?

프라하가 아니라 체코의 역사라고 해야 맞는 말이지 싶네요.

그동안 이 광장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수많은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지 싶으니 바로 체코 역사의 산실입니다.

 

 

원래 이런 광장에서 그런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간 후 자취가 남은

바로 역사의 현장이 아니겠어요?

처음 이곳은 민초들이 땀 흘리며 살아갔던 시장으로 시작되었을 겁니다.

그러다 점차 경제와 정치의 중심지로 바뀌었지 싶습니다.

세상의 시작은 바로 우리 민초들입니다.

 

 

가장 가슴 아픈 사연은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소련군 탱크가

이곳 광장 안으로 들어왔을 때였을 겁니다.

1988년 벨벳 혁명이 선포된 것도 바로 이 광장이 아니겠어요?

크고 작은 역사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 장소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체코에서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광장 중

한 곳이 여기라고 생각합니다.

낮은 낮대로 구경거리가 많지만, 밤에 볼 수 있는 야경 또한 일품이죠.

구시가지 광장은 이런 이유로 늘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입니다.

 

 

구시가지 광장에 서면 참 다양한 건물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광장 한가운데 서면 마치 중세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니 고딕식으로부터 다양한 양식의 건물이 함께 공존하니

이곳은 건축 백화점과도 같은 곳이겠죠?

 

 

광장에서 바라볼 때 가장 위압적인 건물은 틴 성당입니다.

틴 성당의 정식 이름은  틴 앞의 성모 마리아 성당(Chrám Matky Boží před Týnem)으로

두 개의 첨탑이 하늘 높은지 모르고 솟아오른 고딕식 건물이죠.

 

 

그 첨탑의 높이가 무려 80여 m라고 하니...

두 개의 첨탑은 아담과 이브라는 별칭으로 불린다네요.

한때 이 성당에 헌금하면 장사가 잘되고 여행길이 편안해진다는 소문이 돌아

엄청난 헌금이 모이기도 했다네요.

 

 

종교개혁가인 얀 후스를 추종하는 신교파가 이 성당을 근거지로 해서

구교파에 대항해 싸우기도 했다는데 적은 인원으로 십자군 등을 상태로 싸워

다섯 번이나 이기기도 했다니 역시 효험이 있나 봅니다.

그런데 십자군은 왜 패했을까요?

 

 

두 개의 첨탑 사이로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상이 보입니다.

이 성모상의 후광은 얀 후스파가 이 성당을 근거로 있을 때 만든 성배를 녹여 만들었다

하며 원래 이 자리에는 신교를 허용하고 백성을 사랑했던 이르지 왕의 조각상과

얀 후스파의 상징인 황금 성배가 있었다는데 나중에 구교였던 합스부르크가에서

이곳을 지배할 때 없애고 성모상으로 바꾸었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종교란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의 성당이 신교와 구교의 틈바구니에서 휘둘리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종교와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일까요?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본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