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구시청사(Staroměstská radnice)

2017. 10. 27. 09:00동유럽, 발트3국, 러시아 2017/체코

 

모든 여행자는 이곳에 오면 천문시계(Pražský orloj)에 정신을 빼앗겨

주변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천문시계가 걸린 건물까지도요.

바로 천문시계가 걸린 건물이 프라하 구시청사 건물이라 합니다.

 

 

구시청사는 1338년 완공한 것으로 준공 당시에는 프라하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합니다.

시계탑 안에는 철골로 된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그때 만든 것으로 아직도 운행하고 있다네요.

지금도 이곳에 오르면 시내 모두를 사방으로 돌아볼 수 있다 합니다.

 

 

이 건물은 카를 4세의 아버지인 얀 룩셈부르스키가 보헤미아 군주로 있을 때인

1338년에 지은 건물이라 하며 그전까지는 주민을 위한 이런 공공건물조차

변변히 없었나 봅니다.

처음에는 작은 건물로 시작해 주변 건물을 하나씩 철거하며 점차 확장하다 보니

시대에 따라 다양한 건축양식이 구시청사 건물에 함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지하는 로마네스크 양식이고 첨탑은 고딕 등으로 말입니다.

천문시계가 걸린 왼편이 시청사로 들어가는 문이랍니다.

 

 

점차 인구가 늘어나며 시청사 건물은 계속 증축하며 확장되어 갔답니다.

사실 유럽의 인구는 그리 급속도로 늘지 않지만, 이곳도 도시화 현상이 있었나 봅니다.

시계탑 뒤로 가면 공원이 있는데 그 공원도 전부 시청사 건물이 있었던 자리라 합니다.

바로 성 니콜라스 성당 앞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이곳 프라하를 점령하고 있을 때 이에 저항한 체코의

레지스탕스가 바로 지금 공원이 되어버린 시청사 건물 별관 지하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저항을 했다고 하며 지하는 미로처럼 만들어졌기에 저항하기에는

가장 좋은 장소였다 합니다.

 

 

나치는 이를 제압하려고 탱크와 자주포를 동원해 이 별관을 무차별적으로 포격함으로

건물이 거의 사라졌다고 하며 전후 이곳을 복원하자는 안이 있었으나 워낙 협소한 관계로

새로운 시청사를 짓고 이전함으로 지금은 쉬어갈 수 있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구시청사 건물 바로 곁에 30년 종교전쟁 때 희생한 사람을 위한 추모의 흔적이 보입니다.

그러니 신,구교 사이에 있었던 프라하성 창문 투척 사건으로 오스트리아의 지원을 얻은

구교 측에서 당시 저항했던 보헤미아 신교 귀족 27명을 참수하고 그들의 목을 두었던

곳으로 27개의 하얀 십자가가 1621년이라는 처형 날짜와 함께 흔적으로 남아있습니다.

이곳은 나치에 대항했고 구교에 저항했던 사람들의 희생 장소였다는 말이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지만, 슬픈 과거를 지닌 곳이기도 합니다.

 

 

구시청사 동쪽 벽에는 얀 후스를 추모하며 봉기를 이끌었던 얀 젤리브스키 신부의

흉상이 위의 사진처럼 있고(화살표 방향으로 작아서 자세히 찾아야 보입니다.) 

오른쪽에는 당시 처형되었던 27명의 보헤미아 귀족의 명단이 동판으로 남아있습니다.

바로 위로 보이는 돌출 창이 있는 곳이 예배당이라고 합니다.

 

 

광장에서 처형이 있는 날은 이곳 예배당에서 마지막 기도를 올렸지요?

특히 1621년 6월에는 보헤미아 신교도들이 일으킨 봉기로 프라하 근교의 빌라호라에서

마지막 전투로 패배한 후 대부분 다른나라로 추방당하고

27명의 지도자가 처형당해 유명한 곳이죠.

 

 

그 왼편에 보이는 건물은 무척 화려합니다.

지붕 아래로는 보헤미아 지방의 여러 문장이 보이시죠?

건물 중간에는 기둥 양식을 넣어 멋을 부렸는데 고딕 양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건물 자체는 르네상스 양식이라 합니다.

 

 

기둥 장식 위로 보이는 문장이 프라하시의 문장이죠.

그 아래 쓴 글이 프라하 시청사라는 글이라 합니다.

이곳 1층에는 여행자를 위한 안내센터가 있어 지도나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답니다.

 

 

다시 왼쪽을 보면 벽에다 멋진 장식을 한 건물이 보입니다.

돔 우 미누티(Dům U Minuty)라는 건물로 벽을 장식한 기법이 바로 스그라피토라는

긁어내기 기법의 건물이며 미누티라는 말은 작은 것이라는 말로 원래 이 집 1층에

담뱃가게가 있었는데 아주 작은 담배를 팔았기에 붙인 이름으로 적은 비용으로 화려하게

벽을 장식할 수 있는 기법이라죠?

처음부터 사진에 보는 스그라피토 장식이 있지는 않았다는데 1919년 구시청사 건물 전체를

보수하던 중 우연히 외벽이 떨어져 나가며 지금의 스그라피토 장식의 벽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 건물에는 19세기 후반까지 프란츠 카프카의 가족들이 거주했다고 하네요.

이 건물 또한 구시청사로 사용했던 곳이고요.

원래 합스부르크가에서 이곳을 지배했을 때 툭 튀어나온 이 건물을 헐고 새로 짓자고 계획했는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흐지부지해졌기에 살아남은 건물이라 합니다.

이렇게 여러 개의 독특한 양식을 지닌 건물이지만, 이 모든 건물은 구시청사 건물이었고

내부는 하나로 연결되어있다고 하니 재미있는 건물이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