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산(苍山) 옥대운유로(玉帶云遊路)를 걸어서

2016. 12. 21. 09:00중국 여행기/윈난성 여행 2016

잠시 걷다 보니 위의 사진처럼 계곡 사이로 따리의 모습을 살짝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 뒤로 보이는 호수가 바로 부처의 귀를 닮았다는 얼하이(이해:洱海)입니다.

얼하이는 중국에서는 일곱 번째로 크고 윈난에서는 쿤밍 톈츠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호수랍니다.

 

남북으로 42.6km, 동서로는 약 8km에 이른다 하니 정말 큰 호수가 맞네요.

이런 큰 호수가 이곳에 있어 따리에 살았던 사람에게 단백질을 공급했을 것이고...

바다를 구경 못 한 사람에게 바다와 같은 풍경을 보여주었을 겁니다.

 

그러나 잠시 호수를 보여주다가 이내 다시 운무를 몰고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감추어 버립니다.

그래요.

오늘 같은 날에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욕심이었나요?

이런 곳을 지금 우리는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케이블카에서 내립니다.

도착하니 빗줄기가 제법 강하게 뿌립니다.

 

도착지점 아래 창산의 홍보대사인 커다란 장기판이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청벽계라는 계곡이 있어 폭포도 보입니다.

폭포가 보이는 곳까지 내려갔다가 걸을까 생각했지만, 비도 제법 퍼붓고 오늘 걸어야 할 길이 많기에 포기합니다.

 

잠시 위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갑니다.

트레킹 도로는 케이블카 내린 곳에서 계단을 잠시 올라가야 하네요.

 

먼저 오늘 걸어갈 길을 약도를 통해 먼저 보고 갑니다.

옥대운유로는 걸어서 올라갈 수 있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세 군데나 있습니다.

우리는 제일 왼쪽 감통사에서 올라가 오른쪽 중화사까지 걷고 중화사에서

말을 타고 오르는 길을 따라 걸어 내려왔습니다.

 

그곳에 올라 오늘 걸을 옥대운유로만 전체 거리가 11.5km라 하네요.

사진에 6시간 걸린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지 싶네요.

낮은 포복으로 기어간다면 몰라도 걸어서는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일지라도 서너 시간이면 충분했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위의 사진처럼 잘 포장된 옥대운유로(玉带云游路)라고 합니다.

옥대로니 운유로니 이런 말은 모두 구름이 늘 산 중턱에 걸쳐있다는 말이잖아요.

정말 이름도 잘 짓습니다.

길은 위의 사진처럼 돌로 포장한 아주 평탄한 길입니다.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무릎을 탁 칠 정도로 멋진 이름이 참 많습니다.

옥대 하나로 부족해 운유로라고요?

 

구름이 노니는 곳이라는 해발고도가 높다는 의미일 테고...

오늘 같은 날은 구름인지 안개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는 무아지경의 선계입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 오늘 신선이 되어볼까요?

 

오늘 같은 날은 정말 비옷 입은 신선이 되어 걷게 생겼습니다.

오리무중이라는 단어도 생각납니다.

그러나 걷는 일을 즐기니 비가 내려도 문제 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코스는 창산 허리에 만든 운유로를 북쪽으로 걸어가

중화사까지 걸은 다음 말이 오르는 길을 따라 따리 꾸청으로 내려가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비가 퍼붓기에 과연 오늘의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창산은 해발은 3.500m에서 4.100m도 정도로 제일 높은 주봉인 마룡봉이 4.122m라 합니다

그러나 옥대운유로는 길이 모두 포장되었고 높낮이도 없는 아주 평탄한 길이었습니다.

느낌으로는 운유로는 해발 2.800여 m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침은 어제처럼 죽과 만두로 골목식당에 쭈그리고 앉아 먹었습니다.

오늘 걸어야 할 길이 운유로 11.5km에 중화사에서 따리 꾸청까지 10km 정도를 걸어야 할 텐데

죽만 먹고 버텨낼 수 있을까요?

 

사실 어제저녁 쐉랑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며 따리 꾸청 안에 있는 시장에 들러

바나나와 빵과 과자를 잔뜩 사 비상식량으로 배낭에 넣어두었습니다.

산 위에 식당이 있을지 없을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죠.

 

창산이 품어준 따리국은 어느 날 단순 무식하게 창산을 넘어온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가 이끄는

몽골 기마병에 의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말았다지요?

 

바로 지금 우리가 걷는 이곳을 넘었더란 말입니까?

조용하게 살아왔던 바이족에게는 다시 생각하기도 싫었던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을 겁니다.

창산의 높이가 4천 m 가 넘는다 했습니까?

 

따리는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와도 같은 그런 지형입니다.

서쪽으로 길게 창산이 자연적으로 방어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반대인 동쪽은 얼하이라는 바다와 같은 거대한 호수가 있고 그 바깥으로 또 산이 방어막을 형성하고...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땅은 이곳 따리 주민이 먹고살 만한 만큼만 있습니다.

그러니 산에서 산짐승을 잡고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고...

그 사이에 있는 농토에서 곡식과 채소를 심어 먹도 사니 이런 곳도 흔치 않은 곳이죠.

 

열린 곳이라고는 남쪽의 샤관과 북쪽으로 샹관이라는 작은 숨구멍 같은 곳이 아닌가요?

그랬던 곳이 이웃사촌이라고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던 나시족의 길 안내를 받은 몽골 기마병이

옆구리에 해당하는 험하디 험한 창산을 넘어옴으로 따리국은 이제 더는 지탱할 수 없었나 봅니다.

김밥 옆구리 터지듯 그냥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렇게 오늘 일정은 9시 30분에 케이블카를 내려 걷기 시작해

인민로에 도착한 시각이 3시 40분이니 6시간 넘게 빗속을 걸었다는 말이고...

또 오후 내내 고성 안을 걸어 다녔으니 오늘 하루 20km는 훨씬 넘을 것 같아 많이 걸은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