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리 남문 문루에 올라

2016. 12. 15. 09:00중국 여행기/윈난성 여행 2016

위의 사진은 아침에 따리 고성 남문에 올라 창산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히말라야 산맥이 휘돌아 마지막 둥지를 튼 곳...

그 끄트머리가 바로 창산이라 했나요?

오늘도 구름이 창산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2016년 10월 27일의 이야기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산책을 겸해 남문에 오릅니다.

 

예전에 왔을 때는 이곳에 오르려면 돈을 받았는데 이제는 그냥 오르내립니다.

뭣이 중헌지 중국도 알아가나요?

중국은 움직이면 돈이 든다는데...

 

지난밤은 제법 빗소리가 굵게 들리더니만, 아침 산책 때는 잠시 소강상태입니다.

남문에 올라 사방을 바라봅니다.

7년 전에 이 계절은 너무 날씨가 좋았는데...

 

이 방향은 남문에 올라 북쪽을 바라본 성안의 모습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누각이 오화루입니다.

부흥로를 따라 오화루가 정위치에 있지 않고 창산 쪽으로 약간 치우친 모습이 보입니다.

 

이 방향은 성 밖 남쪽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따리 샤관 방향이죠.

저 멀리 보이는 문이 문헌루(文献楼)라는 누각입니다.

 

위의 사진은 얼하이 호수 방향입니다.
아래 보이는 것이 성벽인데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곳이네요.
성벽을 빨리 복원해 걸어서 돌아볼 수 있도록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번에 보이는 사진은 얼하이 호수 반대편이 창산 방향입니다.
창산에는 구름이 낮게 드리워 정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방향은 성벽을 걸어볼 수 있도록 개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벽 길은 서문까지 연결되어있지 않고 중간에 끊어져 출입을 제한하더군요.

 

선 정상에는 눈이 있고 그 눈 녹은 물이 사시사철 고성으로 흘러내려

이곳에 사는 사람에게 언제나 깨끗한 물을 공급합니다.

창산은 얼하이와 더불어 따리의 모태와도 같은 곳이겠지요.

 

창산에서 흘러온 물은 따리 고성을 지나 얼하이 호수 방면으로 흘러내려가며

밭에 곡식과 채소를 자라게 하고 다시 얼하이 호수로 흘러들어 갑니다.

 

이렇게 흘러들어 간 물은 얼하이 호수에 많은 물고기를 키우고 수산물을 키웁니다.

이렇게 따리는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진 곳입니다.

 

창산의 만년설은 따리에 사는 사람을 살리는 물입니다.

식수로 사용하고...

농사에 이용하고 그리고 물고기를 키워 많은 민초를 먹여 살립니다.

 

이곳의 지형은 마치 어머니 뱃속 같은 포근한 형태입니다.

그 모태 속에 자라는 생명체를 키우는 생명의 물이 바로 창산의 물입니다.

이런 곳에 바이족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벽 트레킹을 마치고 잠시 고성 안을 구경합니다.

관제묘가 있네요.

정말 뜬금없는 시추에이션이죠?

 

관 서방은 왜 이곳에 있을까요?

맹획과 깊은 관계가 있었던 사람은 제갈공명이 아닌가요?

아마도 세상에 가장 부풀려진 인물이 관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재물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중국에서는 재물신으로 받들고 있지요?

요즈음에는 마오도 재물신으로 격상되기는 하더군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라는 청진사도 보입니다.

청진사는 두문수와도 깊은 관계가 있으니 이곳에 터를 잡았나 봅니다.

 

이번에 보이는 건물은 따리 왕부라는 건물입니다.

당시의 모습은 전혀 남아있지 않을 듯합니다.

지금은 호텔로 사용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니 옛터에 호텔을 세우며 이름을 사용하나 봅니다.

 

이렇게 잠시 고성 안을 두리번거리며 산책했네요.

이제 우리는 쐉랑이라는 호수 건너에 있는 어촌마을에 다녀오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정말 뜬금없이 관제묘가 왜 이곳에 있을까요?

아마도 재물신으로 모시기 위해 특별 초빙했나 봅니다.

사실, 관 서방은 재물과는 전혀 관계없는 인물이지만, 중국에서는 새로운 품종의 관우를 개발했네요.

자존심만 강했고 넘버 투의 자리에 있다가 공명이 등장하여 넘버 쓰리로 밀려나며 앙탈만 부리고 

똥고집으로 일관하다 삼국 통일의 꿈을 말아드신 관 서방이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