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걸어보는 따리의 밤풍경

2016. 12. 14. 09:00중국 여행기/윈난성 여행 2016

중국은 어디를 가나 공원이나 넓은 공터만 있으면 모여서 춤을 추지요.

우리 눈에는 조금 어설퍼 보이지만, 이들에게는 삶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따리라고 예외는 아니더군요.

 

이게 춤을 빙자한 운동이지 싶습니다.

예전에 배를 이용해 중국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중국 단체 여행객은 배 안에서도 단체로 춤을 추더군요.

더군다나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위의 사진처럼 군인이 이렇게 총을 들고 지켜주니 안전은 더할 나위 없겠죠?

건강을 위한 이런 운동은 권장해야 하지 싶네요.

 

따리는 바이(白)족의 자치주라지요?

백족이라 하얀색 옷을 즐겨 입고 하얀 모자를 쓰고 살아간다고 하지요.

이미 당나라 때는 남조국, 송나라 때는 따리국이 이곳에 독립된 국가로 있었으며

수 백 년 이상 명맥을 유지된 곳입니다.

 

그런 곳이지만, 이제는 중국의 변방으로 관광객을 상대로 살아가는 그런 곳이 되었습니다.

7년 전에 찾았을 때보다 엄청난 여행자가 찾아드는 것을 보니

이제 이곳의 살림도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의 모습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듯하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재간둥이 제갈공명이 전성기를 누릴 때 맹획이 이곳에서 지방 맹주로 큰 획을 긋고 살았다지요?

그래서 맹획~인가?

사실 삼국지에 등장하는 곳이 정확히 이곳이라고는 할 수 없지 싶네요.

 

눈이 아릴 만큼 푸르다는 창산(蒼山)...

그러나 그 산 위로는 더 푸른 하늘이 있습니다.

오늘밤에는 하늘이 푸른지 먹구름이 끼었는지 알 수 없지요.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다운 얼하이라는 푸른 호수...

그곳을 생활터전으로 살아갔던 바이족이 아닌가요?

 

이런 푸른색과 조화를 이룬 창산의 흰 만년설과 흰구름 때문에 이들은 하얀색의 옷을 입고, 하얀 집을 짓고,

그리 살았나 봅니다.

자연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자연을 닮고 싶었나 봅니다.

 

총통병마대원수부.

이곳은 두문수라는 사람이 자신의 회족 이름인 "술탄 술라이만"의 중국식 의미로 "총통병마대원수"로

칭함에 따라 이렇게 이곳에 현판으로 흔적이 남아있네요.

 

청나라가 이곳을 지배할 때 회족을 살해하는 쿤밍 대학살 사건(1856년)이 생겼고 두문수는 회족과 바이족,

그리고 만주족인 청나라에 반감을 품던 한족의 세력을 규합하여 봉기를 일으켰고 따리를 중심으로

윈난성 일대를 장악하여 약 18 년간이나 지배했던 중국 내 유일한 이슬람 국가인 평남국(平南國)을 건국하였다네요.

그때는 아마도 늘 당했던 한을 풀었던 시기였나 봅니다.

 

결국, 청의 반격으로 지도층은 모두 살해당하고 두문수와 그의 가족들은 자살함으로 그의 50년의 짧은 생은

아침 이슬처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꿈은 구름처럼 흩어지고 말았겠지요.

중원의 입장에서는 소수민족 반란사건으로 기록하고 있겠지만....

 

오화루에서는 예전처럼 밤에 누각 담장에 영화 상영을 합니다.

많이 변하는 세상이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영화의 주제도 그때 그대로인 듯...

중국 영화발전이 더딘 이유는 바로 저런 정치적인 계몽영화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달콤 쌉쌀한 한국 영화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고요.

 

양인가에도 밤이 찾아왔네요.

이제 따리의 첫날밤이 깊어갑니다.

이제 우리도 둥지를 찾아 피곤한 몸을 뉘어야겠습니다.

오늘 먼 길을 달려오느라 피곤하여 코 하고 자야겠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따리를 다스렸던 왕 중 아홉 명이나 되는 사람이 곤룡포를 집어던지고 숭성사에 들어가 가사를 입었답니다.

곤룡포라는 게 무겁고 몸을 짓누르는 그런 옷이 아닐까요?

아마도 곤룡포를 집어 던지고 가사를 입는 순간 이미 성불의 길로 접어들었겠지요.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을 것이고요.

정녕 아름다운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