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의 집(Villa dei Misteri)과 폼페이 공중수도

2017. 8. 22. 09:00이탈리아 여행기 2015/폼페이

폼페이에는 현재까지 발굴한 공중목욕탕이 세 개나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대량의 물을 어떻게 공급했을까요?

물론, 여기도 수도교를 건설해 공급했지 싶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이 지대가 낮은 곳이라 지하수를 파고 물을 공급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가까운 주변 강으로부터 물을 끌어왔다고도 하고요.

이렇게 쉽게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바닷가 저지대였기 때문에 가능했지 싶네요.

그래서 폼페이를 걷다 보면 골목마다 공동 수도전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공공수도가 있다는 말은 물을 물처럼 사용한 도시였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이곳 폼페이에는 공동 상수도 시설이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 수도꼭지를 설치한 곳의 조각이 모두 다릅니다.

그 모습만 바라보고 다녀도 재미있네요.

 

당시 수도관을 설치해 물을 공급했다는 말은 이 도시가 얼마나 대단한 도시인가 알 수 있지요.

다만 당시에 수도관을 납으로 만들어 납중독이 심했다 합니다.

납의 위해성에 대해 알지 못했을 때였지 싶네요.

 

지금도 이곳에는 수도관을 통해 물이 공급되는데 먹지 못할 물도 있고 먹을 수 있는 곳도

있으니 미리 알고 먹어야 하겠네요.

먹는 물은 위의 사진처럼 마실 수 있는 물이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이렇게 상수도는 골목마다 무척 많이 설치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수도를 설치한 이유가 바로 마차가 다니는 길을

물로 청소하기 위함이기도 했답니다.

길을 보시면 사람이 길을 건널 때 징검다리처럼 만들어 도로 위로 건너가게 했다는 점이죠.

 

징검다리는 달리던 마차가 이 앞에서는 자연히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마차가 다니는 길은 늘 물이 흘렀다는 점이죠.

물을 정말로 물 쓰듯 펑펑 썼다는 말이 맞지요?

그러나 문제는 폼페이는 하수도 시설이 전혀 없어 비만 내리면

도로가 물바다가 되기 때문이겠죠?

 

마차를 끄는 말의 배설물을 물로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도로로 물을 흘려보내야만 했지

싶고 폼페이는 따로 배수시설을 설치하지 않았기에 마찻길이 하수구 역할을 겸했을

것이기에 정말 재미있는 도로 구조가 아닌가요?

 

물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고 에르콜라노 문(Porta Ercolano) 밖으로 나갑니다.

Villa delle Tombe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면 신비의 집이라고 하는

미스터리의 저택(Villa dei Misteri)이 있습니다.

에르콜라로 문은 마리나 문처럼 두 개의 문이 있어 사람이 드나드는 문과

마차나 수레가 드나드는 문으로 구분해 놓았습니다.

 

폼페이는 이렇게 성 안팎으로 연결하는 문을 인도와 차도로 구분해두었네요.

오늘 구경하는 곳의 위치입니다.

 

이곳은 이상하게도 폼페이 시내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폼페이를 찾는 많은 사람이 그냥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곳이라고 하네요.

 

여행사를 따라왔다면 당연히 개인행동을 하기 어려워 방문하지 못하겠지만,

자유 여행을 왔다면 여기는 들러볼 만한 곳이랍니다.

위의 그림은 신비의 저택 상상도입니다.

 

누구는 여기가 폼페이 유적 중 가장 구경거리가 많은 곳이고 가장 폼페이다운 곳이라고도

하지만, 그런데 집은 이상하게 폼페이 성곽 밖에 있답니다.

그러니 거리를 두고 살았다는 말이네요.

 

이 집은 기원전 3세기경부터 집을 짓기 시작해 계속 증축한 모습이 보인다 합니다.

아마도 주인이 바꾸면서 그랬는지 아니면 주인이 대대로 살며 점차 번성해 돈을 많이 벌어

집을 넓혔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좌우지간 평범한 주택이 대단한 저택으로 변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북쪽 현관은 수레가 그냥 집 안으로 들어갈 정도로 넓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하는데 원래 동양에서도 세도가들은 말을 타고 바로 대문을 통과할 수 있도록

주마문이라고 대문 지붕을 높게 만들잖아요.

 

여기는 수레를 타고 바로 들어갈 정도라 하니 주인이 무슨 일을 했는지

미스터리의 집이 맞습니다.

원래 2층 구조였으니 지금은 1층만 남아있습니다.

 

저택 안으로 들어가면 정원 회랑이 있고 크고 작은 회랑을 따라 많은 벽화가 남아있습니다.

 

벽화의 수준을 볼 때 상당한 수준의 화가가 그린 것으로 보이기에

많은 돈을 들여 집안을 장식했다고 보인답니다.

여기에 사용된 색은 바로 폼페이의 붉은색이라고 하는 신비한 물감입니다.

 

지금까지도 같은 색을 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직 그 색의 비밀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당시 폼페이에서 부자들은 다른 나라에서 물감을

특별히 주문해다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집안에는 발굴 당시 남아있던 유골과 석고 모사가 남아있어 화산 폭발 당시의

참혹한 모습을 간접적으로나 느낄 수 있네요.

이곳은 모두 60여 개의 방이 있는 대저택입니다.

그러다 보니 식솔도 제법 많았을 겁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발견된 사람의 유골은 많지 않다고 하니 그날 많은 사람이

피난길에 올랐다가 죽기도 했겠지만, 살아서 탈출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집의 주인은 이런 아름다운 저택이 화산재에 파묻히는 것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곳은 당시 살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된 곳이기에 유적 중 이런 유적도 흔치 않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흥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순간의 모습이 정지된 듯 2천 년을 그대로 보내고

지금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잖아요.

늘 화면을 통해 보거나 다른 여행자의 사진을 통해서만 보던 곳에 직접 서니 마치

그때의 폼페이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는 그런 기분이 드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