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의 유곽 루파나레(Lupanare)

2017. 8. 17. 09:00이탈리아 여행기 2015/폼페이

 

폼페이는 구경거리가 무척 많습니다.

그때 모습이 그대로 6m 이상의 화산재 밑에 잠을 자다가 발굴된 곳이기에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겠어요?

그러나 무게 때문에 지붕은 대부분 사라졌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은 골목길에 보이는 가게 터로 붉은 벽돌로

벽을 쌓고 그 앞은 돌을 붙인 모습입니다.

 

 

vicolo del lupanare라는 골목길로 들어서 걷다 보니 2층으로 된 집이 보입니다.

폼페이 유적 발굴 번호는 7 지구 12구역이네요.

 

 

여기는 폼페이 유적 중 유난히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죠.

아마도 폼페이에 왔다면 이곳만큼은 빠뜨리지 않고 구경하고 갈 겁니다.
바로 루파나레( Lupanare)라는 곳입니다.

루파나레는 유곽이라는 의미라 합니다.

유곽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 들어가는 곳입니다.

 

 

루파는 암늑대라고 하는데 여기서 파생된 단어라 하네요.

당시 로마 시대에서는 창녀를 은어로 루파라고 불렀답니다.

내부는 좁고 어둡습니다.

 

 

1층 입구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그림이 위의 사진에 보입니다.

바로 에로스와는 형제지간인 프리아푸스(Priapus)로 이미 베티의 집에서 만났으니

우리와는 구면이시죠?

프리아푸스는 무화과나무를 배경으로 자신의 대물을 들고 자랑스럽게

손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실내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플래시는 금지합니다.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사랑의 여신 비너스와 농사를 관장하는 술의 신 바쿠스 사이에

태어난 임신과 출산을 주도하는 신으로 알려졌는데 여기 유곽의 개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네요.

바람잡이 호객행위라도 하려고 그랬을까요?

그럼 입구에 이 그림을 세워둔 것은 단속을 대비해 세운 것은 아니고

돈도 내지 않고 도망하는 사람을 붙잡기 위한 경비였나요?

 

 

방의 규모는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정도의 침대 형태의 돌로 만든 단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게 별이 다섯 개라는 선전하는 돌침대보다는 격이 많이 떨어져 보입니다.

아마도 저 돌침대 위에다 푹신한 매트리스라도 깔았지 싶습니다.

 

그러나 대기실과 화장실을 갖춘 형태네요.

화장실의 모습은 세상 어디나 비슷하네요.

 

 

모두 10개의 방이 있는데 1층과 2층에 각각 5개씩 있답니다.

쪽방처럼 생긴 이것만으로 이 집의 찾는 목적을 알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집을 찾는 이유는 복도 벽에 그려진 춘화로 보이는 그림이 알려줍니다.

지금도 법으로 금하고 있는 매춘을 통한 남녀상열지사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왜 이런 그림을 버젓이 이곳에 그려놓았을까요?

너무 헤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알리기 위한 것일까요?

 

 

이런 그림을 그린 이유는 누구는 배를 타고 온 외국인에게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각 방마다 그런 자세에 대한 

전문적인 여자가 대기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고 하지만...

내부 장식을 통하여 분위기를 업시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네요.

 

 

여러분께서는 그 이유를 아십니까?

저요?

제가 기원전에 그곳에 가본 일이 없어 자세히 물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행위가 단속의 대상이라고요?

당시에 이곳에는 세금을 매겼다고 하니 공인된 곳이 아니겠어요?

카리큘라 황제는 이곳에 세금을 부과했다니 당시 얼마나 번창했는지 알 수 있죠.

동서고금을 통해 돈이 있는 곳엔 언제나 세금이 있다는 말이 실감 나네요.

비록 음지에서 일을 했지만, 양지처럼 떳떳하게 세금을 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유곽이 음성적으로 존재한 게 아니라 제대로 관리된 양성적으로 존재했다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이곳에 드나든 사람은 물론 남자입니다.

그러나 주로 배를 타고 온 뱃사람이나 가난한 서민층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덜수도 이곳의 단골이었을 겁니다.

비용은 상당히 저렴하게 책정했다고 합니다.

물론, 여기도 이중 가격을 책정해 두 부류로 나누어 돈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곳은 복층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아래는 서민을 위한 저렴한 곳이었지만, 2층은 부자나 지위가 높은 분을 위해

럭셔리한 시설로 꾸몄다고 합니다.

그때도 이코노미석과 비즈니스 석을 구분했나요?

2층은 발코니가 있어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고 윙크를 하며

지나가는 남자를 홀렸을 겁니다.

위의 사진은 당시의 모습을 상상한 그림입니다.

 

 

그러나 이곳처럼 대규모 시설을 갖춘 곳과는 달리 프리랜서로 혼자 일한 사람도

폼페이에는 많았다고 하며 가게 건물 1층 구석에 작은 방 하나만 갖추고 1인 기업처럼

영업했다고도 하는데 주로 그리스나 중동지방에서 끌려온 노예들이었다고 하네요.

물론 이런 곳은 비공식으로 영업하다 보니 세금을 내지 않았지 싶습니다.

황제가 보면 탈세요, 포주가 보면 절세가 아닌가요?

 

 

어느 사람은 이곳의 수도관을 납으로 만들었기에 폼페이에 살았던 모든 사람이

납중독에 시달려 더 환락적인 삶을 살지 않았나 생각하기도 한다네요.

그래서 이런 시설이 많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외국과 해상을 통한

무역의 중심지였으니까 이런 유곽이 번창하지 않았겠어요?

 

 

폼페이는 항구도시로 번창한 곳이기에 다른 지역에 비해

성문화가 무척 개방적이었을 겁니다.

당시 유곽에는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 벽에는 단골손님의 이름도 적어두었다고 하며 어느 방에는

세금이 너무 비싸다고 적어 넣었다 하니...

 

 

그 외에도 낙서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들이 남긴 낙서는 세계문화유산이 된 셈이네요.

 

 

세금은 호환 마마처럼 정말 무서운 것이었나 봅니다.

때와 장소는 물론 시간도 가리지 않고 매겼나 봅니다.

그래도 다른 점은 진정 지금과는 다른 양지에 나온 러브호텔이 아니었을까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그럼 이런 업소를 이용하는 비용은 얼마였을까요?

이곳에 들어가려면 저렴한 와인 8병 값 정도를 내고 와인 1병을 먹어야 했다는

기록도 있으며 이는 업소를 드나드는 비용으로 저렴한 와인 한 병을 비싸게 팔아

이득을 취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어요?

물론, 바가지를 씌웠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와인 한 병을 고객에게 제공했다는 말이네요.